삼국시대나 고려시대보다는 조선시대 특히 조선 중후기 이후로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백성들의 생활이 힘들어진게 단지 정치적인 문제때문에 그랬다는것도 잘 이해가 안됩니다만
일반적인 백성들의 생활수준이 어느정도 수준이었을까요?
하루 세끼 끼니를 모두 떼우는게 어려울 정도였나요?
그리고 백성들의 생활수준이 낮아진게 정치적인 혼란 말고 다른 이유같은것도 있을까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보다는 조선시대 특히 조선 중후기 이후로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백성들의 생활이 힘들어진게 단지 정치적인 문제때문에 그랬다는것도 잘 이해가 안됩니다만
일반적인 백성들의 생활수준이 어느정도 수준이었을까요?
하루 세끼 끼니를 모두 떼우는게 어려울 정도였나요?
그리고 백성들의 생활수준이 낮아진게 정치적인 혼란 말고 다른 이유같은것도 있을까요?
노무현때 정도요?
세금을 많이 걷고 탐관오리가 많아 차떼기처럼 매관매직이 성하니 관리들이 제 역할보다 자기 잇속차리기에 바빴죠.
정치적인거 빼고라면..교육기회가 너무나 한정되다보니 살림살이가 나아 질 수도 없었던 것 같아요.
끔찍한 세상이었군요.
결국 먹고사는 문제인데, 지금 많이 좋아진 편이데.
그런데, 지금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그 질적인 정도와 그 당시 조상님들이 느끼는 행복의 질적인 정도는 객관적인 잣대가 없으니 비교할 수는 없고...
인도네시아 정글에 사는 소년은 하루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래 딱 15분 걸려 바나나 나무위로 올라가 바나나를 따거나 해안가에서는 작살을 들고가 고기를 잡고, 하루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데, 우리 대한민국의 소년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공부를 열심히 해도 나중에 직장을 구하기 힘드니, 뭔가 잘못되었지요...
일반 백성들이 힘겨운 생활을 한건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고려시대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본적인 사회시스템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모두 대동소이 합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보면 삼국시대나 고려때도 흉년이 들어 아사자가 속출했다는 기록은 나옵니다만
조선시대때의 기록은 좀더 자세하고 구체적이죠.
그런데 역사기록을 보면 조선중기 이후 그 정도가 더 심해져서 흉작이 잦아지는데 그 원인이 소빙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그리고 제 생각으로는 신분제가 생기고 고대국가를 형성하면서 대부분의 백성들은 살기 힘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왜냐면 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백성들은 곡물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할뿐만 아니라 병역이나 건설공사등의 부역에도 동원되었거든요.
차라리 아마존밀림의 어떤 부족들처럼 신분이 구별되지 않고 채집이나 사냥을 하면서 원시적인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생활이 더 나았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업화 이전의 농경시대에는 백성들의 먹거리 문제가 기후조건에 좌지우지 되는게 일반적이죠.
현대와 과거의 농경시대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건 무리입니다.
조선만 못산게 아니라 그 이전엔 더 못살았겠죠
그래도 구황작물에 이모작 이앙법 뭐 이런거 들어왔던 시대 아니었나요?
그 이전 사람들은 굶는것도 당연,신분사회도 당연 이랬을것 같고
오래되서 기록도 온전치 못하니 모르는것같구요
아마 조선후기만 해도 신학이 들어와서 신분제에 대한 반항심도 생기고
왕조 말기라서 신권도 강해지고 하니 여러가지로 복잡했겠죠
농민이나 하위계층이 세끼 다 먹게 된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이게 아직도 박정희 박근혜가 먹히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ㅠ
농업기술이나 생산력은 그 이전시대보다 조선시대때가 더 우수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그 이전시대 수준과의 비교지, 지금의 농업기술과 비교하는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기후조건도 있고 생산된 식량의 배분이나 운용문제등 복합적으로 작용한거 같습니다.
풍년일때야 공평하게 식량을 배분한다면 모두다 안 굶주릴수 있었겠지만
흉년일때는 식량을 공평하게 배분한다고 해도 식량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어렵다고 봅니다.
양반은 전체에서 소수집단이었어요.
그리고 소빙하기까지 거론할것도 없이 가뭄한번 들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대량으로 발생하는건 특이한일도 아니었죠.
농사지어서 1/10도 자기가 갖지 못한다는건 사실이 아님.
그정도로 거둬들이면 다 먹지도 못하고 대부분의 곡물은 버려야됨.
조선시대 세금제도는 좀 복잡합니다.
세금제도등 사회적 시스템도 있었지만 불과 백년전만 하더라도 변덕스러운 기후에 대처할 능력은 없었다는 겁니다.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생활할 때 아들에게 쓴 편지를 다산 관련 인터넷사이트에서 본적이 있는데, 당시 정약용의 집은 남양주군 조안면이었어요. 따져봤더니, 정약용은 저보다 겨우 200년쯤 전에 태어났더라구요.. 아들한테 쓰기를, 너는 무슨일이 있어도 학문에 정진하여 반드시 서울에 입성해서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고요. 시골에서의 삶은 너무 가난하고 비참해서 삶이 피폐하다고. 마치 원시인들이 사는 거같다고 썻던 구절을 읽은 적이 있어요.
조선 왕조 실록엔 천하의 가장 가난한 (나라) 조선, 이라는 말이 중신들 입에서 나옵니다. 당시 동아시아국들 중에서 우리가 제일 문제였었나 봐요. 그런데 신라 시기에는 개도 금목걸이를 하고 있었다고 하고 백성들이 너무나 부유했다는 외부 기록이 있어요. 점점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잘 살게 된 역사가 아니라 부유했다가 가난해 졌다가 하는 것이 반복되었다고 봐야겠죠. 물론 날씨 탓은 아닐 거고 시스템 문제라고 봐야 하겠네요.
신라가 잘 살았다는게 일부 귀족들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두고 한 말인거 같습니다.
역사문헌을 보면 신라 성덕왕때등 가뭄이 들어 신라의 백성들이 굶어 죽는일이 빈번했다고 나오거든요.
신라에 대한 기록을 보면 백성들이 너무 부유해서 다 숯을 쓰는 바람에 저녁을 할 시간에도 굴뚝에서 연기가 안 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서라벌의 인구가 100만 이라는 인구기록등은 과장된 이야기지 않나 싶습니다.
신라가 고구려 백제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한걸 과장되게 기록한거 같습니다.
왜냐면 신라의 일반백성들이 풍요로운 생활을 했다는건 당시의 시대수준으로 봤을때 너무 비정상적이거든요.
옛날에는 농업기술의 수준도 수준이지만 대량의 물을 가두는 댐이 없었으니 가뭄이 들면 아사자가 발생하는게 당연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를 봐도 수많은 기근으로 인한 아사자의 발생은 친숙한 소재에요.
조선시대는 사회적 시스템문제도 있겠지만 근본적인건 기후변동에 따른 기술적 대처능력의 문제입니다.
근대이전 시대의 우리사회는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고려나 삼국시대에도 기후변동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멀리 갈거없어요.
일요일 아침에 방송하는 늘푸른 인생이라고
뽀빠이가 진행하는 프로보심 됩니다.
거기 출연자분들이 70-90대들이신데 99프로 못먹고 못입고
남편은 거의 다 술주정에 바람피고 도박에...그 프로보면
정말 오래전 얘기같은데 같은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부모세대랍니다.
구한말 카톨릭 선교사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 놀란것중에 하나가 밥의 양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양의 세배정도 된다고 해요.
그 당시 밥그릇의 크기를 보면 아마 놀랄겁니다.
이러한 폭식은 양반과 평민,천민을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밥을 먹을때도 허겁지겁 먹어서 선교사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여졌나 봐요.
그런데 이렇게 과식을 하는 이유는 먹을게 풍부해서 그랬던게 아니라 언제 굶어죽을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 많아서
먹을게 생기면 무조건 잔뜩 먹어두는 습관이 베여있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흉년등 기근때는 소나무껍질을 벗겨서 삶아 먹는경우는 잘 알려져 있죠.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고려나 삼국시대때도 기근이 들면 굶어죽는 백성들이 많았다고 하니까 먹을게 없었으면
소나무껍질이라도 벗겨 먹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고대시대를 기록한 역사문헌자료는 풍부하지 않아서 자세하게 알수는 없겠지만 소빙하기의 영향도 있고
조선 중후기때의 굶주림의 그정도가 가장 심했던거 같습니다.
바로 윗글님...
그 사진의 반찬을 보셨나요...
그 정도 밥을 먹어도 지금의 밥상의 반찬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높은 칼로리가 아닙니다.
더욱이 그 당시 모든 일들은 인간의 노동으로 이루어지던 시절이었지요.
그래서 그렇게 밥을 많이 먹어도 비만이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진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군요...
어떤 사진을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ebs 방송에서 봤는데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밥그릇의 그 거대한 크기를 보고 놀란적이 있어서요.
그리고 기후의 차이인지 아니면 밀농사와 쌀농사에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어쨋거나..
제가 지금까지 접해온 책을 보면 서양보다는 동양의 역사에서 기근과 굶어죽는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접하게 되더라구요.
제가 알고 있는 서양에서의 기근은 영국의 의도적인 방치로 인해서 아일랜드인 2백만명이 굶어 죽은 사건 말고는 아는게 없는데요.
동양의 역사를 보면 기근과 굶주림은 아주 빈번했던거 같습니다.
일본의 에도시대만 해도 자잘한 흉년을 제끼고 보통 수십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기근이 스무차례나 발생했었죠.
같은 시대 조선의 굶주림은 최악이었던거 같고,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기근과 굶주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경우에는 조선과 동시대인 청대에 중국인들이
기근으로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접해보지는 못했네요.
먹는 걸로만 본다면 동서양을 떠나 지금이 제일 잘 먹고 살 때가 아닌가 싶어요.
드라마 추노를 보니 정말 저렇게 낡고 더러운 옷을 입고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선후기 실학이 발달하여 농기구도 개발이 되고
생산량이 늘어났는데 딱 한가지 개발하지 않은것이 있었으니
'탈곡기'라고 추수할 때 썼던거요.
추수를 완벽하게 해봤자 이놈 저놈이 이런 저런 명목으로
다 빼앗았기 때문이랍니다.
이방,형방 이런 사람들은 월급이라는게 아예 없었다는군요.
그러니 뭘 먹고 살았겠어요.삥을 뜯을 수 밖에.
우리나라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먹는 문제로 굶어죽는 사태는 어느정도 면한거 같아요.
20세기에 들어서서도 보릿고개는 있었지만 과거의 끔찍한 대기근과는 비교가 안될거 같습니다.
Korea and her neighbors
이사벨라 비숍이 쓰ㄴ 책으로
구한말의 사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ㅇㅕ성 초ㅣ초 여ㅇ국 지리힉회 호ㅣ원
비숍 여사가 썼지요.
ㅇㅣ상하게 글자들이 깨지는군요. ㅜ.ㅜ
제 시어머님이요 제 시아버님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하셨어요
헐이시죠 시어머님 시집왔더니 제대로 된 직장은
시아버님뿐이고 어린 시동생들 투성이에 굶고 사셨다고 한이 맺히셨네요 그래봐야 환갑넘은지 얼마안되세요
제 친정엄마도 연배가 몇년 어리신데 그때도 굶고
산 사람이 있냐고 놀라셨어요 그래서 저희 시어머님 그래서 음식 보관하는 집착이 있으세요
밥은 고봉으로 주세요
탈곡기는 동력기관 아닌가요?
조선후기에 실학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탈곡기를 발명 하는건 불가능 한게 정상적으로 보입니다만..
많이 달랐다 하더군요.
후기에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이런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남정네들은 군인에 끌려가서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그러니 노동력은 부족하고..
게다가 양반들은 세금을 내지않았대요. 그러니 농민들은 죽어라 농사지어 세금내기에도 허덕허덕..
정말 힘든 시대였을 것 같아요..
조선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나라가 밥 두끼 겨우 먹던 시절이죠
점심은 출근하는 직장 개념이 생기면서 근세에 겨우 생긴거
농업혁명이후 그나마 궁기를 면한거죠
아프리카야 여전하고
아일랜드 기근은 민족 대이동을 낳았구요
지금은 역사이래 최고의 부흥기
조선이라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천하는 커녕 중국 일본도 못 가봤을거에요
정약용 유배지가 전라도 산골인데
강진 보길도 이런데는 80년 후반에도 푸세식화장실에 시발택시 있더구만요 뭐
세금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도 평민에게만 부과되었던 제도입니다.
세금뿐만 아니라 병역이나 각종 부역도 평민에게만 해당됩니다.
세금을 화폐로 낸게 아니라 평민들이 곡물로 세금을 상납했고,
귀족들의 직업은 농민이 아니라 관리였고 귀족들은 왕으로부터 곡물이나 옺감등의 녹봉을 하사받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공무원의 월급에 원천징수개념으로 세금을 상납할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조세제도 기준으로 보면 농민에 대한 착취에 가까워요.
조선시대때는 그 정도가 심해졌다고 할수 있습니다.
다만 고려시대때는 토지 소유자인 평민에게 그 토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일부를 징발하기 위해
왕이 수조권(토지에 대한 일부 생산물을 징수하는 권리)을 귀족들에게 일임 했죠.
어떻게 보면 그 땅의 원래 주인은 자영농인 평민이 아니라 왕이고 평민은 단지 경작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조선의 세금제도는 복잡해서 저도 헥갈립니다만..
조선시대에 관리의 부패가 심했고 세금제도가 가혹했다 하더라도 그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한번 가뭄이 들면 손을 쓸수가 없었고 인간이 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저 하늘만 쳐다볼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문제가 그 시대에는 천재지변이었어요.
말씀드리자면 조선시대에도 흉작이 아닌 해에는 평민이나 천민들도 굶주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전근대시대에는 왕이나 귀족이 아닌 대부분의 백성들은 어느시대나 살기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때 배운바에 의하면 귀족은 어느시대나 세금과 부역 그리고 병역에서 면제되었어요.
조선시대만 그랬던게 아닙니다.
...님께 한가지 지적하자면 양반의 관직과 평민의 부역은 같은 개념이라고 할수 없어요.
양반의 관직은 엄연히 직업이고 평민들이 부담하는 부역은 세금의 일종입니다.
부역을 한다고 해서 따로 보수를 받는게 아니에요.
...님이 박사학위 소지자라는건 확인이 안되는거구요.
저도 드릴 말씀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