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가 '어머니, 나와보세요, 불 났어요.' 소리쳐서
후다닥 나가보니 우리 집과 옆 집 사이에 난 골목에 누가 불을 질러놨어요!
종이 쓰레기 가득 찬 쌀봉투가 타들어가는 걸 초등 3, 4 학년 되어보이는 남자애 둘이 발로 밟아 끄고 있었고요.
우리 집 주차장에 수도가 있어서 엄마가 나머지 진화를 하셨고
우리 소릴 듣고 앞 골목 집들 주민들도 나오셨어요.
처음에는 누가 담뱃불을 버리고 갔나보다 했지만
앞 집 아주머니께서 불타고 있던 쓰레기가 본인 집 앞에 내놓은 거라고 하시네요.
그러니까 누군가 일부러 그걸 옆 골목에 옮겨두고 불을 낸 거예요.
타고 남은 흔적에 일회용 라이터도 있었네요.
전 애들이 의심스러웠지만 올케에게 슬쩍 물으니 화재를 목격할 때부터 같이 있었다고.... 얘들아 미안하다.
낮이니 망정이지 밤이라 발견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옆 골목 다세대 주택 1층 벽에 쓰레기를 기대놓고 불을 질렀는데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간 집이고, 빚 갚는 조건으로 집을 샀지만 빚을 안 갚았다던가...하는 소문이 있습니다.
집주인에 대한 협박인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 집 옆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당장 신고.
근처에 CCTV가 있기는 한데 제대로 찍혔을까.
골목 안 쪽은 안 보여도 누가 쓰레기를 들고 갔는지는 알 수 있을 거야.
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인간인데 내 인생에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생기다니.
아무리 바른생활을 해도 소용없어, 그러니까 앞으로도 운전면허는 따지 말자.
집 앞에서 순찰차 기다리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네요.
하지만 용의자를 찾아도 엄마랑 앞 집 아주머님이 워낙 물을 들이부으셔서 증거 같은 건 하나도 없을 것 같아요.
범죄 드라마를 그렇게 봐 놓고 증거보존 생각은 한참 뒤에 하다니. 그래서 일반인인가.
순찰차 타고 온 4명 중 한 분 인물이 참 훤했고 총각 같던데
기다리는 동안 옷이나 갈아입고 머리라도 빗을 걸, 늦잠자서 수면 바지 입고 빈둥거리다 뛰쳐나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