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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결혼 출산 육아..여자로 살기..

ㅇㄹㅇㅎ 조회수 : 2,370
작성일 : 2012-11-17 00:46:53

   애들은  자고, 남편은  스크린 골프치러 나가고.

   누군가와 수다가 떨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데 대신 자판을 치기로 했어요.

 

    저는 20대때 부모님이 어찌 직장생활을 할까  싶을 정도의

    퍽퍽 화내고 저혼자 똑똑한 척 할말 내밷고

    신입때도 선배알기를 우습게 보고, 일못하면 무시하고 그랬어요.

    집에서는 정말  심했고  직장가서도 뭐 그 성격 감추어지지는 못했겠지요.

 

    어찌어찌 죽자사자 제게 목매다는 남자 만나서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게되었어요.

    남자에게 별 관심도 없었고,친구들은 노처녀로 가장 오래 남아있을 아이로 저를 내심 지목했다가,

    다들 놀랐나봐요. 뭐 친구관계도 그리 폭 넓지않구요.

     사실 친구사귀는 것도 관심밖이라 애들한테 잘해주거나 챙겨야한다는 인식이 없었어요.

     친구관계가 초등때부터 30대말까지 지속되고 있는거 보면  제 친구들이 진짜 고맙네요.

     상견례자리에서 아버지가 시부모님에게 그랬어요. 부족한 아이 잘 거두어 달라는 식으로.

   

    결혼초..엄청난 시련이었어요.

    시부모님 여기 자게기준으로 보자면 이세상에 없을 훌륭한 까지는 아니나 좋은  분들이세요.

    경제적으로 부담주시지도 않고, 사는 거 간섭하시거나, 전화안한다고 채근하시지도 않으시지요.

    그러니 그분들 만나서 힘든 건 아닌데,

    갑자기 늘어난 역할 며느리,아내, 동서,새언니, 큰엄마, 형수 자체에 눌리고,

    처음 해보는 온갖 종류의 노동들을 눈치껏 하느라 녹초가 되었어요.

    왜 남의집에 가서 한번도 안해본 과일깎고 설겆이하고, 커피타드리고.

    만두빚고, 전 부치고, 못한다 소리 한번 못내고 꼼짝없이 다 해야하는 건지.

     그것도 조신하게..  그런데 왜 남편은 그냥 대자로 자도 되는지..

    이런 부조리한 말도 안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여자에게 정말 결혼은 미친짓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딸은 고아나, 국제결혼을 시켜야한다고 막 열받아했어요.

    하는 것 없이 스트레스 받았는지 "사이버머니" 를 읽은데 시아버지어머니로 읽히는 거예요.

 

    게다가 집안 살림은요.

     걸레 비틀어짜기, 청소기 영차영차 돌리기, 냉장고 청소, 잡다구리 영수증 정리

     남은 반찬 처리... 해도 해도 끝없는 집안일.

     이러거 하면서 남은 평생을 사는 거야. 계속 이렇게. 언제까지..언제까지..절망이었지요.

    

     가끔씩 시부모님이 출근하고 난 빈집에 오셔서 청소 싹 해놓고,

     냉장고에 김치랑 여러가지 반찬을 가득 채워놓고 가시곤 하셨어요. 

     퇴근하고서 우렁각시처럼 왔다가신 시부모님덕분에 며칠 잘 먹고 감사했더랬지요. 

     어른들입장에서는 음식도 못해,과일도 제대로 못깍기도 하고 제대로 된 과일을 살줄도 몰라,

     설겆이조차도 빨리 못해..청소도,정리도,다림질도 못해.

     할 줄 아는 건 회사가서 일하는 거..한가지. 

    저런 모자란  며느리랑 평생 살게 될 아들이 부모님 입장에서는 무척 걱정되셨을 거예요.

    

     남편이나 저나 늦은 나이에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키스도 처음이었어요.     

     방금 이사람이 내게 뭘한거지 하면서 손으로  입술훔치고 타액을 밷어냈어요.

     제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영화에서 보는 생애 첫키스가 자연스럽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봐요.

     성 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처음 같이 발을 딛었고,

     초반에 이 세계에서 좀 헤맸지만, 결국 일년만에 임신테스트기에  두줄이 짝 나오는 아침을 맞았어요.

     무척 기쁘데요. 친정엄마에게 전화했어요. " 엄마! 할머니됐어"

    

     제 인생은 임신이전과 그 이후로  반전이 시작되요.

     최초로 내가 아닌 뱃속에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어요.

     순수한 이타적인 마음이 생긴 건데, 임신기간이 제게는 하늘이 아기를 위해서 엄마를 준비시키고 연습시키는

     기간이라 여겨질 정도로 아이에게 안좋은 상황은 되도록 피하게되고 가려먹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 했어요. 유기농,현미밥 먹게되구요.험한 장면나올까 뉴스도 안봤어요.

     억지로 한다기 보다는 저절로 되는 거 같고 힘들다기 보다는 기꺼이 되어지고 편안한 거예요.

      배불뚝이로 다니지만 표정이 밝고 성격도 부드러워져서 주변에서는 너는 임신이 체질이다는 말을 하더군요.

     산부인과도 결혼식장이나 사는 집보다 더 신중하게 선택했었어요.

     입덧도 없었고, 정상체중의 딸아이가 예정일 하루전에 진통도 오래 주지않고 태어났어요.

     그리고,

     제 우주의 중심은 아이가 되었어요. 세계평화도 아이를 위해서 꼭 이루어져야하고,

    남북통일도 아이가 성인이 되기전에 되어야할 거같고, 아이가 자라날 환경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되고요.

    그러니 당연히 먹거리는 신중하게 선택해서 제 손으로 다 해먹이고, 뭘 더 해줘야하나 공부하고 적용하고 했었어요.

     아무것도 못 할 거 같던 아내가 며느리가 아이키우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 열심이고 헌신하는 걸 보고 의외의 모습이라고 부모님이 보셨고,  찬밥신세가 된 남편은 한때 우울해졌어요.

    

     이렇게 조금씩 근본적으로 제가 바뀌어 온걸 몇년 지나고 나니 많이 바뀐 걸 자타가 다 알게되었어요.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제 가족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

      살고있는 지역이나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환경이 되어지기를 원해서 정치나 사회에도 관심을 갖게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여유를 갖고 대하게 되고 제 스스로에 대해서도 닦달하지않게 되었어요.

      친정부모님께도 우리 키우느라 힘들었겠다 싶고 잘 하게 되네요. 

      저절로 태교가 되어진 건지 아이는 친구관계도 좋고 어른들한테도 여느 아이와 다르다고 좋은 평을 들어요.

      저와는 달리 나이 어린데도 집안일도 자연스레 잘하고요.

     20대때보다 더 살찌고 부시시해지고 못나졌지만, 이렇게 살아온 게 고맙고 만나온 사람들도 고맙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게  그냥 감사해요. 20대때 만났던 제가 못되게 굴었던 사람들 얼굴 가끔 생각나고

     사과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소소한 걱정거리는 많아요.

     아이 학업도, 사오정을 향해가는 남편도, 웃풍있는 낡은 집 손봐야야지..노후자금은 넉넉하던가. 싶고,

    

    한참 수다 떤거 같네요. 아직 잠이 안오는 데 낮에 커피를 많이 마셨나봐요.

    그럼 편히 주무세요.

    

 

 

     

 

IP : 220.75.xxx.16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많은부분
    '12.11.17 1:02 AM (115.139.xxx.41)

    많은부분 내 얘기 같아 공감이 가네요. 한편으론 원글님 결론은 매우긍정적인데 전 지금상황과 변한 내모습이 답답하고 난 결혼하지말았어야했나 싶습니다. 물론 겉으로보기엔 아이하나 잘키우며 착한 남편에 열심히 맞벌이하며 사는 단란한 가족입니다만.. 아이 나이를 추측할때 저보다 연배가 위일거같은데 저도 몇년지나면 마음이 편해지려나요

  • 2. 많은부분님께..
    '12.11.17 1:21 AM (220.75.xxx.16)

    저도 30대 초중반 너무너무 힘들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내는 듯한 시기가 있었네요.
    아이는 손이 아직은 많이 갈때고, 직장일도 만만하지는 않고, 어른들 도움은 정말 긴급하지않으면 도움 청하지않고 아이를 키울 때 였어요. 다시 그리 살라면, 그렇게 열심히 살아내지못했을 거 같네요.
    녹초가 되서 매순간 쓰러질 거 같았지요.

  • 3. 많은부분
    '12.11.17 1:35 AM (115.139.xxx.41)

    네.. 이 시절도 지나고나서는 그렇게 치열하게살았던 마지악 젊었던 때..아이도 엄마밖에 모르던시절 아쉬워하며 추억할거같기도해요. 한번씩 울컥했다가 평소엔 그런생각할겨를도없이 바쁘게살다가 가끔은 행복했다가 그러면서 나이먹어가는거겠죠. 어서 잠이나청해야겠네요

  • 4. ...
    '12.11.17 1:45 AM (175.194.xxx.113)

    어쩌면 원글님 성격이 변했다기보다 원글님의 내면에 존재했지만,
    겉으로 잘 드러날 기회가 없었던 부드럽고 따뜻한 면이 표면에 드러나게 된 건지도 몰라요.

    물론 아이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확실히 세상 모든 것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고, 사소한 것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지만
    20대 시절 원글님 스스로가 까칠했다고 느꼈던 건
    상처받기 쉬운 여린 내면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방어기제가 강하게 작동했던 건지도......

  • 5. 감사
    '12.11.17 6:36 AM (77.96.xxx.90)

    정말 공감가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6. 40이되면
    '12.11.17 5:26 PM (211.63.xxx.199)

    저도 많이 공감가네요.
    여자나이 30대가 인생에 젤 힘들어요. 대신 40대로 넘어가면 엄청 편해집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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