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제 아이를 ㄱ,상대 아이를 ㄴ이라고 하겠습니다.
ㄱ과 ㄴ은 저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그 때는 무척 친한 편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비슷한 성격은 활달하다는 점인데 ㄱ은 외동인데 활달하면서도 마음이 여린 구석이 있고 ㄴ은 형이 있는 둘째라 다소 마초 기질이 있는 아이입니다(ㄴ의 엄마는 그런 부분을 둘째 특유의 경쟁력이라고 표현합니다)
두 아이가 고학년 들어서 다시 한 반이 되었는데 저학년 때와는 다르게 ㄴ이 ㄱ을 은근히 따돌리기 시작합니다. 둘다 성적은 비슷하게 우수한 편이고 운동도 둘 다 잘하는 편인데 다만 ㄱ이 키가 좀 작고 왜소한 체격입니다. 그리고 ㄱ은 까불거리면서도 소심한 구석이 있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 ㄱ은 말로 승부하는 편이고(말발이 있다는 건 선생님 포함 누구나 인정합니다)ㄴ은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이 팀을 이뤄 뭔가를 해야 하는데 ㄴ은 가끔 아무 이유없이 ㄱ에게 야 너 빠져, 라고 합니다. ㄱ이 왜 내가 빠져야 하냐고 하면 그냥 대꾸를 안하고 무시한다고 합니다. 계속 항의해도 대응 자체를 안한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가 빈번한데 너무 황당한 경우이면 다른 아이들이 왜 ㄱ이 빠져야 하는데? 라며 역성을 들어주면 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간답니다.
그리고 이름으로 별명을 많이 붙이는데 유독 ㄱ에게는 아무 연관없는 별명을 붙인답니다. 바바리맨, 변태, 노출마왕, 등등이요. 그런데 ㄱ은 키도 작고 왜소한 편이라 아직도 아기같은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형이나 누나가 없어 그또래의 성적인 면을 접할 기회가 없어 바바리맨 같은 별명은 무슨 뜻인지도 못알아듣는 아이입니다. 친구들이 ㄱ이 왜 변태냐고 물으면 그냥, 내 맘이야, 그런답니다. 그러면 군중심리로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웃고 ㄱ은 졸지에 웃음거리가 됩니다.
ㄴ의 행태에 아이들은 불만이 많고 뒤에서는 지가 뭔데 뭐든 지멋대로야, 라고 하지만 막상 ㄴ을 둘러싼 3~4명이 반을 주도하는 모양새가 되다보니 그 아이들 무리에서 배제될까봐 다들 눈치를 보는 형국이라고 합니다. ㄴ의 그 힘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모르겠는데 심리학에 정통하신 분이 좀 알려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ㄴ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아이로부터 낙점받는 것을 황송하게 여기고 분명히 ㄱ의 잘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ㄴ의 눈밖에 날까봐 ㄱ의 역성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아이 엄마도 비슷한 성격이라 자식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러 자기 아들은 정말 멋진 남자라고 얘기합니다. 그 앞에서 한번 ㄴ이 욕설을 잘 쓴다고 했다가 내 아들은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어디서 감히 내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하냐고 난리를 치고 그 말을 한 엄마를 왕따시켜 버린 예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술도 잘 먹고 사교성도 좋은지 늘 엄마들 불러내서 술마시고 밥먹고 모임을 주도하면서 여론을 이끌어 ㄴ의 행태에 대해 아무도 얘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ㄴ의 타겟이 되는 아이가 한 해에 1~2명이라 그 아이 엄마들 외에는 누구도 ㄴ의 행태에 대해 직접적인 불만이 없으니 굳이 타겟이 되는 아이 역성을 들어줄 엄마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안타까웠지만 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얼마전에 학교 1박2일 행사에 다녀온 ㄱ이 너무 침울해해서 자세히 물었더니 ㄴ이 아이들 다 있는 데서 야 그런데 우리 학년 전체에서 **빼고는 ㄱ이 제일 왕따 아니야? 그랬다는 겁니다. 그건 명백히 사실이 아니라서 아이들이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옆반의 대장 역할을 하는 아이가 무슨 소리야? ㄱ이 친한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 왕따야?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자 ㄴ이 그냥 꼬리를 내렸다네요. ㄴ과 그 옆반 대장 아이는 기질이 비슷해 서로 친한 사이인데도 그 아이가 ㄱ을 편들어준건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사실이라 그랬겠지요.
저는 그동안은 참아왔으나 이제 한계상황이 온 듯 합니다. 그 아이가 제 아이를 마음에 안들어해서 뭔가 같이 하기 싫어하고 같이 어울리기 싫어하는 것까지는 그 아이의 자유라고 하더라도 여러 아이들 앞에서 왕따 운운하며 왕따를 조장하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는 건 앞으로 더 심해질 소지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현실적이고 냉철한 조언이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