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많이 먹는 사람이 조금 먹는 사람보다 오래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고혈압이 염분을 많이 섭취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이미 잘 밝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자연의학 어쩌고 하는 것들을 주장하는 돌팔이와 사이비들이 아무 근거도 대지 못하면서 소금을 많이 먹으라고 부추기고 고혈압과 염분 섭취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그런 주장이 많이 실리니, 돌팔이와 사이비들의 그럴듯한 말에 현혹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이 근거를 들면서 그런 주장에 반박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그런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가 현대의학으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소금과 혈압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밝혀져 있어서 더 이상 연구의 대상이 되는 일도 드물 뿐 아니라',' 돌팔이와 사이비들이 하는 주장이라는 것이 워낙 허황되기 때문에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금과 혈압에 대한 엉터리 주장들이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집니다. 고혈압과 염분 섭취의 관계에 대하여 연구 결과를 몇 가지 소개하여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소위 자연의학 어쩌고 하는 돌팔이나 사이비들이 하는 주장 중에는 '사람은 본래 소금을 많이 먹었다'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렵고, 거짓이라고 반박하기도 어려운 주장입니다. 물론 돌팔이나 사이비들이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근거를 대는 법은 없으니 그 근거가 옳은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장에서 말하는 '본래'라는 것이 언제부터를 뜻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인류가 아프리카의 평원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인류는 그때 수렵과 채취 생활을 했습니다. 그 때를 '본래'라고 한다면 '사람은 본래 소금을 많이 먹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인류가 처음 모습을 나타낸 아프리카 평원은 내륙지방에 있습니다. 그곳에는 소금이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염분을 섭취하는 방법은 음식에 자연적으로 들어있는 것을 섭취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며 그 양은 현대인이 섭취하는 염분의 양에 비하면 훨씬 적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최근까지 원시적인 수렵채집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부족들의 식생활을 분석하여 밝혀낸 사실입니다.
소금은 주로 나트륨과 염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에 나트륨이 혈압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섭취하는 나트륨의 거의 전부를 소금을 통하여 섭취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나트륨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역학적 근거들
1) 원시생활을 하는 종족 중에서 나트륨을 섭취하지 않는 사람들은 살고 있는 지역과 관계없이 고혈압을 앓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트륨 섭취가 많은 다른 지역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혈압이 높아지는데',' 나트륨을 섭취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혈압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 북부에 사는 야노마노 인디언은 하루에 1 밀리몰 정도의 나트륨만을 배설합니다. (나트륨 배설량으로 섭취량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나트륨 배설량이 적다는 것은 섭취량도 적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하루 나트륨 배설량은 184 - 283 밀리몰 정도됩니다.) 이들 중 40대의 평균 혈압은 남자 107/67 mmHg, 여자 98/62 mmHg입니다.
2) 이들에게 고혈압이 없는 것은 나트륨 섭취 외의 다른 생활방식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슷한 환경에 사는 집단을 비교해보면 나트륨 섭취량과 혈압 사이에 가장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고혈압이 전혀 없는 이 사람들이 나트륨 섭취가 많은 현대적인 생활방식을 택하게 되면 혈압이 올라가고 고혈압이 나타납니다.
3) 대단위의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면 소금 섭취량과 혈압, 그리고 고혈압의 빈도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뚜렷한 자료는 세계 각국의 52개 연구기관에서 20세에서 59세 사이의 남자와 여자 10,079명을 대상으로 24시간 동안 소변으로 배설되는 전해질의 양과 혈압을 측정한 국제적 연구인 Intersalt 연구입니다. 52 개 연구기관에서 모두 나트륨의 배설량과 수축기 및 이완기 혈압 사이에는 정비례 관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혈압이 높아지는 정도와 나트륨 배설량 사이에는 더욱 뚜렷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혈압에 영향을 미치는 하한선으로 생각되는 나트륨의 하루 섭취량은 50 밀리몰에서 100 밀리몰 사이인데 이 연구에서는 이 정도의 나트륨을 섭취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50 밀리몰의 나트륨을 섭취하는 사람들은 혈압이 높지 않고 나이가 들면서 혈압이 높아지지도 않아, 혈압에 영향을 미치는 나트륨 섭취량에는 하한이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사람은 원래 소금을 많이 먹었다'는 주장으로 되돌아가 볼까요?
사람들이 지금처럼 나트륨을 많이 섭취하고 칼륨은 조금 섭취하게 된 것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최근의 일이어서 몇백 년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는 나트륨 섭취는 늘리고 칼륨 섭취는 줄이는 현대의 식품가공방법에 의하여 더욱 심해졌습니다.
현대인의 몸은 구석기 시대의 우리 조상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구석기 시대에 채식을 하던 인류의 조상은 하루에 10 밀리몰, 육식을 하던 조상은 30 밀리몰의 나트륨을 섭취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몸은 나트륨을 적게 섭취하고 칼륨을 많이 섭취하는 환경에 적합하게 진화되어, 요즈음의 고 나트륨, 저 칼륨 식이에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 중에는 너무 많이 섭취한 나트륨을 처리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이들에서 고혈압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2. 실험적 증거들
1) 고혈압 환자들이 나트륨 섭취를 크게 줄이면 혈압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나트륨 섭취를 하루에 75 - 100 밀리몰 정도로 느슨하게 제한하면 혈압이 떨어지는 정도가 덜합니다.
2) 혈압이 정상인 사람이 짧은 기간 동안 소금 섭취를 늘리면 일부에서는 혈압이 올라가고 일부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인은 소금 섭취가 워낙 많으므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소금 섭취를 늘리면 혈압이 올라간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뚜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침팬지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나트륨을 추가하지 않은 보통의 음식을 먹게 하고 다른 한 집단은 나트륨을 추가하여 먹였습니다. 89 주의 실험기간 동안 나트륨을 추가한 침팬지의 혈압은 평균 33/10 mmHg 올라갔습니다. 나트륨을 추가로 먹인 침팬지들의 음식을 원래대로 되돌리자 20 주 후에는 본래의 혈압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실험에서 나트륨을 추가한 침팬지 10 마리 중 7 마리에서만 혈압이 올라갔습니다.
3) 유아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나트륨 섭취를 제한하면 혈압이 떨어지는지, 나트륨을 많이 섭취하면 혈압이 올라가는지 오랜 기간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6 개월 동안 500 명 가까운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있습니다. 이 중 절반에게 나트륨 섭취를 50 %로 줄였더니 6 개월 후에는 나트륨 섭취를 줄이지 않은 아이들보다 수축기 혈압이 2.1 mmHg 떨어졌습니다. 이 아이들 중 35 %를 15년 후에 조사할 수 있었는데, 연구 기간 동안에 나트륨 섭취를 줄였던 아이들은 연구가 끝난 후에는 나트륨 섭취량을 제한하지 않았지만 나트륨 섭취를 줄이지 않았던 아이들보다 혈압이 3.6/2.2 mmHg 낮았습니다.
또한 혈압이 정상이긴 하지만 고혈압에 가까운 사람들(그대로 두면 이 사람들은 혈압이 더 높아져 고혈압을 앓는 경우가 많습니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30 개월 동안 염분 섭취를 제한했더니 제한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고혈압이 덜 생겼습니다.
3. 치료효과에 의한 증거
혈압이 높은 사람들이 나트륨 섭취를 줄이면 혈압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100 가지 이상 발표되었습니다. 이들 연구에 의하면 고혈압 환자가 나트륨 섭취를 하루에 100 밀리몰 정도로 줄이면 혈압이 5/2 mmHg 떨어집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사람은 본래 소금을 많이 먹도록 되어있다거나 소금섭취와 고혈압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거나 소금을 많이 먹을수록 좋다는 사이비와 돌팔이들의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