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부터, 저는 사소한 질문들이 많았어요.
여름이 끝나가고 이제 막 감나무잎들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무렵, 9살의 저는 마당에서 바윗돌보다도 더 딱딱하게 굳은 빨랫비누로 빨래를 빠는 엄마에게 큰소리로 물어봤어요.
"엄마, 수도세는 어떻게 값이 측정되어서 나와?"
"저기 계량기가 달려있잖아."
"아, 그 계랑기속에 누가 지켜보고있다가 수도물 쓰나,안쓰나 보는거야?"
"봉창뜯는 소리 하고있네."
언젠가는 또
"단무지는 어째서 노란색깔인거야?"
"그럼 당근은 누가 주황색으로 태어나라고 했디? 허구헌날 봉창뜯는소리만 해~!"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국민학교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논에서 일만 하다가 난봉꾼같은 남편을 만나 대신 험한일도 가리지않고 이일저일을 하면서 살아오셨기때문에 글자를 모르고 사셨어요.
그래서 은행에 갈일도 없었지만 자신의 이름석자만 쓰는일만 알고 사셨기때문에 어디선가 연필쥐고 쓸일이 있으면 급히 자리를 피하거나, 우리들을 내세워 글을 쓰게 했었어요.
언젠가는, 10살무렵에 급격히 눈이 나빠져서 엄마랑 함께 안경원을 찾았는데 주소를 묻더라구요.
둘이 서로, 쭈빗거리다가 돌아오는길, 사방팔방으로 뚫린 횡단보도를 이리저리 건너다가 끝내는 밤이 이슥해져서 동네버스를 하나 잡아타고 오니 기진맥진해서 그대로 잠이 들어렸는데 다음날 아침부터 엄마가 하는 말이 넌 뭐했길래 여태가지 주소도 하나 모르고 살았느냐고 하는거에요.
걸핏하면 큰딸인 내게 눈알 굴리면서 화내고, 갈퀴같은 손으로 머리채 잡아흔들더니, 안경원을 다녀온 다음날엔 주소를 대지못한게 엄마로썬 펄펄 뛰고 싶을정도로 화가 났던거죠.
자신도 몰랐으면서, 그런 모든일들은 다 우리들이 스스로 알아야 했던 거에요.
한번은 봉창뜯는 소리가 뭐냐고 물어보았는데 저로썬 굉장히 진지했어요.
그 봉창의 뜻이 창문을 이르는 말이냐, 아니면 주머니를 뜻하느냐.
그럼 자다가 봉창을 뜯는다는 말은 어떤 의미이고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
그랬더니 아무말도 못하더라구요.
그런데 웃긴건요.
제가 이십대말에 아기를 낳았는데 정말 아기가 밤에 자면서 갑자기 발로 방의 미닫이창문을 툭툭 건드리면서 자는거에요.
지금도 사소하고 궁금한 질문들이 많은데..
이런 질문들을 끝없이 끌어안고 살면서, 저는 이상하게 외로움이 인생의 두레박이 깊어지는 만큼 더 깊어집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보는 제 나이또래 언저리에 닿은 엄마들을 보면 , 제동생도 그렇지만 굉장히 다들 건조하고 시니컬하고
그냥 그런가보지,하는 식으로 바람빠진 풍선처럼 말해버려요.
왜 그렇게 건조한건지,??
그런건가보지,뭐...
저는 그 질문들이 다 궁금한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