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아버지로 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네요.
저로서는 충격이더군요.
이글을 쓰는 저는 30대중반입니다.
고등학교때
엄마랑 갈등이 극에 달해
손목을 그을정도로 괴로웠던적이있습니다.
원인은 엄마. 종교.
미친듯한 종교강요와 이유없이 저를 괴롭혔죠.
저는 성격이 무딘편입니다.
그런 제가 맨날 반항하고 약먹고 손목까지 살짝 그었으니 말다했죠.
하튼, 그래서...
그시절은 암흑기네요.
반향인지..... 집에있으면 괴로우니 차라리 학교 야자가 나아서 학교에 꾸준히 붙어있어서
그나마 학력에는 도움이되었습니다.
전 지방 광역시 출신인데 인서울했어요.
여자애들 흔히 그러듯 지방에서 편하게 집에서 학교다닐수 있었음에도. (국립대 법대)
그냥 엄마와 집이 싫어서 서울로 갔구요.
아버지는 그런 저를 뒷바라지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집 표면적인 갈등이구요.
내부적으로는
아버지가 장남입니다. 형제중에서 가장 잘난 장남이죠...
할머니와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모두 저희 엄마가 모셨어요.
증조할아버지는 결혼후 바로 돌아가시고
증조할머니는 저를 유치원때까지 길러주시고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때
할머니는 대학교때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일방적으로 엄마를 미워했습니다.
정말 징그럽게 미워했어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둘이 금슬도 좋으셨음에도 장남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죠.
엄마가 시집오자마자 시집살이 다 시키고
심지어 애둘 낳고 몸조리 잘못해 병이와서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아버지더러 곯은 병든여자 필요없다고 이혼하라고 날뛰셨대요.
성격도 장난아니고.
매일매일 전화붙들고 자식들에게 큰며느리 흉보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사셨죠.
쌍으로 다 아프셨는데.
할머니 본인도 엄마가 삼시세끼 차려드려야했어요.
그렇게 매일매일 세끼 받아드시고
빨래 청소 집안일 전부 엄마가 하면서도 할머니 말씀 거역한적 없이 네네 하신 고지식한 우리엄마.
매일매일 트집잡고 흉보고
거기다 하루종일 본인 방에서 전화로 엄마 흉보다가
아빠 퇴근하면 갑자기 거실에 나와서
펑펑울며 며느리가 자기에게 잘못했다고 일렀죠.
아빠는 할머니가 쇼하는 날은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엄마랑 싸우시고
집을 나가서 바람쐬다 들어오시곤 했습니다.
그외 부모님은 싸우질 않으셨어요. 싸울거리가 없었거든요. 엄마가 순종적인 성격이라서요.
저는 그런 집안 환경에서 매일매일 저런걸 보며 컸구요.
아빠와 할머니에게 순종적인 엄마는
저에게는 악마였죠.
어릴때는 별거아닌 걸로 빗자루 채가 부러지도록 맞고
맞고 또 맞고
화가 나면 저를 때리고 언어폭력을 일삼았어요.
맞죠.. 만만한 어린 딸 감정의 쓰레기통 취급하고 샌드백 취급하는 엄마요.
그게 우리엄마였네요.
고등학교는 아마... 제가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엄마가 휘두르는 밀걸레를 잡으며
이제 그만 하시죠.. 라고 말씀드려서 육체적인 폭력은 없었습니다.
언어폭력은 계속 되었죠
하튼 저는 그렇게 힘든 시기를 지났고.
대학을 가고
엄마를 안보고
마침 할머니가 대학시절에 돌아가셔서
집은 조용해지고
엄마의 언어폭력도 없어지더군요.
시간이 지나..
그시절은 지옥같습니다.
두 여자가 집에서 아귀다툼을 조용히 벌이는걸 보는거요...
그거 .. 고부갈등. 네글자로 요약되지만
정말 지옥이죠.
남편이랑 결혼할때 나는 당신어머니 못모신다. 라고 못박은 그거...
그게 제가 20년간 겪은 고부갈등의 답변이었어요.
이제 시일도 지나고 그 시절이 희미한데.
아버지가 추석 정원에서 햇살을 쪼이며 그러시더군요.
밤에 10시쯤 집에 퇴근하고 돌아오면
숨이 멎을거 같아서
11시에 집을 나와.....
국립병원 응급실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동이터오면 살거 같아서 그때서야 집에 들어가 두시간 눈붙히고 자고 출근했다고요.
그렇게 십여년을 하니 몸에 병이오더라... 하시면서요.
아버지가 10시쯤 퇴근했을때가 가장 바쁘실 시기였는데
그때가 제가 중고등학교 시기였습니다.
엄마랑 할머니랑 갈등이 극에 달했던 그 시기.
나도 아팠지만.
아버지도 많이 아팠구나..............
저희 아버지는 평소에도 말수가 적으시거든요. 하루에 한두마디가 끝인 과묵하신 분...
그런분이....
눈물이 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