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40여 년간의 문재인 변호사
- 그는 한결같이 신뢰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공식 발표 시,
30년을 알아왔던 지기를 보내면서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입니다…”로
서두를 시작한 문재인 변호사의, 굳었으나 담담했던 표정을 기억한다.
또한 영결식에서 일어난 백원우 의원의 고함에 대하여
대신 사과하던 그의 절제된 모습 또한 잊지 못한다.
최근 힐링 캠프를 보면서 느꼈던 그의 인간적인 겸손함과 소탈한 매력,
그리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 청약통장을 해약하게 만든 일화는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변호사를 이야기할 때 그의 장점으로 거론하는
진정성, 절제, 겸손함, 배려, 원칙주의자 등의 좋은 소재감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성품들이 언론 등에 의해서 외부로 부각된
상징적 모습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문재인 변호사는
40여 년 전 처음 만났던 대학시절의 모습에서 변한 것이 없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때나, 술을 마시며 토론 할 때나, 운동을 할 때에도
그는 항상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그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한결같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문재인 변호사의 경희대 법대 72학번 동기로
졸업 후 경찰에 입문하여 30여 년 동안 재직하면서
제주청장, 충북청장을 역임하고, 경찰종합학교장을 끝으로
2009년 2월 치안정감으로 명예 퇴직하였다.
비교적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그를 지켜본 나의 입장에서 문재인 변호사는
풋풋했던 대학시절이나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지금이나 변함없이
배려, 겸손함, 진정성, 도덕성,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집념과 용기,
친구에게도 예외 없이 원칙을 고수하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늘 한결같은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장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뚝 솟아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하나 드러나 있었던 것이며
그런 면에서 최근 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나날이 높아지는 것은
MB정부의 거짓말, 부패, 무능, 말 바꾸기, 부도덕성과
기성 정치권의 무원칙한 모습에 지친 국민들이
서서히 원래 있던 그대로의 모습인 문재인 변호사의 장점을
재발견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부터의 친구이자 존경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문재인 변호사를
내가 경험했던 몇 가지 작은 사례들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문재인 변호사는 정말 부잣집 아들인줄 알았다
대학생활의 첫해인 1972년은 10월 유신독재로 인한
암울한 시대적 환경으로 인해 공부보다는 휴교(강)하는 일이 많았고
학교주변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셔가며 토론하는 일이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그런 우리들에게는 무척이나 인기가 많은 친구였다.
그는 그런 자리에서 정말 술값을 잘 내는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 안 되는 막걸리 값이었지만,
학생의 입장이 다들 비슷한지라 문재인 변호사가 자주 술값을 계산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술값은 의례 그가 계산할 줄로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토론에 강하고, 술에도 강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술에 취한 다른 친구들의 뒷감당도 문재인 변호사의 몫이었다.
결국 다음날 아침,
문재인 변호사의 하숙집 아줌마 신세를 지는 것으로 끝이 나기도 했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나는 그가 부산의 돈 많은 부잣집 아들로 생각했으며
그 생각은 내가 1974년 문재인 변호사의 집을 방문할 때까지 이어졌다.
대학교 3학년 시절인 그해 여름날
당시 그의 집이 있었던 부산 영도구 영선동 산동네의 입구에서
설마 여기가 그의 집일까라고 생각했었다.
부잣집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문재인 변호사의 집은
놀랍게도 단칸방에 마루 하나였으며
손님을 재울 마땅한 공간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날은 집 가까운 여인숙에서 잠을 잤었다.
산동네 마을의 형편이 대부분 그러다 보니 그 여인숙은
주인들이 손님들에게 잘 공간을 제공하는 일종의 영빈관이었다.
문재인 변호사는 특유의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의 태도는 당당했다. 나는 그때의 문재인을 잊지 못한다.
부잣집 아들로 착각할 정도로 그가 우리들을 위해 자주 내었던 술값은
자신을 위해 쓸 돈을 아낀 것이었다.
돈이 없어도 주눅 들지 않고
본인이 손해 봐도 묵묵히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이가 바로 문재인 변호사이다.
2. 지금 몇 시냐? 잠 안자니?
78년 어느 여름 어느 날, 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나는 휴가를 나와
문재인 변호사를 만나러 전남의 대흥사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특전사를 제대하고 고시 공부를 위해
어느 선배의 소개로 대흥사에서 머물던 중이었다.
그날 오후 5시경 대흥사 아래 구멍가게에서 문재인 변호사와 나는
그간의 회포를 푸느라 두부김치를 안주로 무려 한 바케쓰 남짓의 막걸리를 마셨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술기운에 길도 아물아물하고
달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 가로등도 없는 산골이라
불붙인 초를 신문지로 말아 들고 더듬더듬
그가 공부하던 대흥사를 간신히 찾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목이 말라 문득 눈을 떠 옆을 보니 그 많은 술을 같이 마셨던
문재인 변호사는 책상에 앉아 불을 켜고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취중에 “몇 시냐?”고 물었더니 “새벽 4시 30분”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나는 다시 잠에 빠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위해 그렇게 많은 술을 먹고도
그날 해야 할 공부를 다 하기 위해 밤을 새웠던 것이다.
옷을 갈아입을 때 그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져보니
곰팡이가 생긴 모양으로 딱딱하게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의 공부가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것을 보고
다들 수재라고 말들 하지만, 내가 본 그는 정말 자신이 세운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밤을 새워서라도 다 해내고 마는 집념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3. 문재인 변호사는 눌변? 하지만 진정성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선거 때마다 대부분의 출마자들이
선동적이고 수사적인 표현이나 말투로 대중을 선동하고
매끄러운 언어로 거짓을 진실처럼 말하는 것을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경우 그런 사람들을 당선시킨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또한 나중에 어떻게 되건 간에 헛공약을 남발하고
표와 관계된다면 원칙보다는 실리를 따라가기도 하는 것 또한 지금까지의 현실이었지만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수사적인 언어와 구호가 아니라 진정성이다.
내가 본 그는 늘 스스로 행동하는 용기와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1975년 봄 개학이 되자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학생가의 분위기는
점점 격앙되어 갔으며 이에 따라 더욱 강경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열기가
거의 모든 대학교를 휩싸고 있었다.
그해 4월 어느 날, 시위를 주도하기로 한 총학생회장이 불참하는 바람에
당시 학생회 총무부장이었던 문 변호사가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문재인 변호사의 어법은 소박하다.
화려한 수식어도 이성을 마비시키는 언어적 현란함도
그와는 사뭇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변호사는 그날 참가자들에게
우리가 왜 시위를 해야 하는지,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진정성에서 우러난 가슴으로 이야기 하였으며
그의 이야기는 참석한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진정성과 용기 있는 행동으로 사람들을 설득시켰으며
그날 시위에는 무려 4,000여명의 대학생들이 동참하여
당시 경희대 역사상 가장 참가자가 많았던 대단한 규모였다.
결국 총학생회장을 대신해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고 학교에서도 제적되었지만
문재인 변호사의 진정성과 용기 있는 행동이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사건이었다.
그러한 그의 진정성은 세월이 지나고 그가 새로운 소명을 부여받아도 한결 같았다.
4. 내 친구라고 봐줄 것 없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번은 한 경찰 인사권자가
오랫동안 친구로 지낸 나의 인사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문재인 변호사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때 그의 대답은,
“오랜 친구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친구라고 하여 봐줄 것은 전혀 없다.”였다고 한다.
한때 서운하기도 했으나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그가 내 친구임을,
그리고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친구임을 자랑스러워한다.
5. 문재인은 항상 현재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취재기자들이 문재인 변호사의 장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본인이 직접 전화를 잘 받는 친절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기자들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친구 등 주변인들에게도 늘 한결같았다.
그는 정말로 바쁘고 중요한 직책인 수석시절, 비서실장시절에도
가능하면 본인이 직접 전화를 받았으며,
불가능 할 때는 나중에라도 전화를 하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이를 반드시 실천 하였다.
언제 어느 자리에서라도 늘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고,
언제나 누구 하고나 소통하려 하는 문재인 변호사의 모습이
우리가 늘 생각하는 진실됨이며, 내가 그를 믿는 이유이다.
6.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인은?
지도자의 모습은 그 사람의 삶이 하나하나 모여 형성되는 것이고
그러한 일관됨이 진정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또한, 각종 거짓말과 말 바꿈, 서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일방적 의사전달,
시류에 영합하는 무원칙은 어떤 용어와 논리로 무장해도
결코 지친 국민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
문재인 변호사, 그는 항상 남을 배려하고 겸손하였으며
모든 일에 진정성을 갖고 임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집념과 용기를 가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4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항상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어두운 산속을 지쳐 걷다가 문득 발견한 민가의 호롱불처럼,
MB정권의 거짓말, 부패, 고소영 인사, 남북문제 파탄 등으로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이 새롭게 발견한 문재인이란 사람.
그를 알아 가면 갈수록 그것은 결코 일회성의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쭈욱 계속될 수많은 희망의 증거를 발견하는 과정 가운데
그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박종환 전 경찰종합학교장 [치안정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