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녀 소리 들을 지 모르겠네요.
포기하는 게 맞다, 포기해야겠다 마음 먹고 글 써요.
10년 넘은 친구가 있어요. 이성이고 자주 만나진 않지만
어느 동성친구만큼이나 말이 잘 통하고 또 잘 대해주고 그래서
따지고보면 1년에 많아봐야 서너번, 적으면 안 보거나 한 번 그러면서도
연락은 끊임없이 해왔어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서로의 연애사에 대해서도 빠삭했고요.
저는 그 친구의 아주 그냥 애간장이 녹는 몇년간에 걸친 첫사랑 스토리,
걔는 제 얼마전까지 수년간 만났던 결혼하려던 남자와의 이야기 모두 알고
그때마다 고민 들어주고, 서로 이성의 입장에서 조언도 해줘가며 응원도 해가며 그랬죠.
뭐랄까, 워낙 어릴때 만나서 처음부터 친구라고 선을 긋고 시작된 인연인데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그쪽으로는 아예 가정을 안해본체로 서로의 연애사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알게 되다보니
나중엔 어느새 친구보다는 친근하지만 연인보단 먼... 오누이? 남매? 아니 형제애 같은 게 생겼던 것 같아요.
친구는.. 기본적으로 준수하기도 하거니와 워낙 친절하고 상냥해서 주변에 여자가 아쉬운 애는 아니고요,
(재수없는 소리지만) 저도 곧잘 저 좋다는 남자들이 있어서 늘 따로따로 연애사업은 끊임없어 왔는데
제가 올해 초 오래 사귄 애인과 아주 크게 타격을 받고 헤어졌어요.
그래서 위로도 받을 겸 하소연도 할 겸 간만에 녀석을 만났는데...
한참 수다 떨고 놀다가 걔가 갑자기 저를 뭔 말 하면서 딱 쳐다봤거든요.
근데 그녀석 눈이 좀 유난히 이쁘긴 한데, 박해일 이미지랄까, 예전부터 강아지 같다 그랬거든요.
갑자기 가슴이 쿵 하더니 이후로 막 걔를 바로 못 보겠고 눈 마주치면 두근거리는 (웬일이니 -.-) 거예요.
그 후로는 막 정신이 없어서, 이게 뭐지 뭐지 그러다가
들어와선 너무 혼란스러워 이후 녀석한테 연락을 안 했어요.
정말 머리를 싸매고 생각 해봤어요.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애인이랑 헤어지고난 후라 감정적으로 고파 그러나, 걔가 하도 잘해주니까 착각을 하는 건가..
제 주변 사람들은 흔히 저희들 얘기를 들으면 '걔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냐' 소리를 하는데요.
이를테면 제가 우울하다 단 거 먹고싶다 했을때 새벽 4시에 택시 타고 와서 케이크 사주고 간 일이라든가
길거리에서 남친이랑 싸우고 혼자 남아버려서 울면서 전화했더니
자기한테 택시타고 오라고해서 같이 한강 둔치에 앉아 밤새 별 봤던 일,
헤어지고 맘에도 없는 남자들이랑 데이트하고 다니니까 정 혼자 못 있겠으면 차라리 자기 부르라고
그때마다 나와주고 곁에 있어주고 데려다주고 했던 거.
근데 전 알거든요. 따지고보면 그 모든 일들이 다 제가 걔에게 졸라서? 하소연해서? 일어난 일들이고
걔는 사실 지가 먼저는 저한테 보잔 소리도 잘 안 해요. 저에대해 여자로서 요만큼도 그런 생각 없고요,
어쩌면 이성으로서는 싫은 감정에 더 가까울지 몰라요 -.-;; 제가 앞에서 하도 추접을 떨어서.
한번은 반농담으로 '야 우리 어차피 계속 깨지는 거 그냥 우리끼리 사귀까?' 했더니
아주 시크하게 '그게 되겠냐'고 하더군요. 너무 진심이 느껴져서 더 말도 못 붙였음 -_-;;
그리고.. 언젠가 얘기한 적 있는데 자기 눈에 제가 여동생 같대요. (한 살 나이차가 있어요)
막 아무리 센척하고 까불고(?) 그래도 자기눈엔 늘 뭔가 불안정하고 많이 여려보인다고.
그래서 잘 대해주고 싶고 그렇대요.
그러니까 뭐랄까, 한마디로 전 그 애한테
뭔가 좀 안 된, 좀 귀찮은, 웃기는, 사고뭉치? 찌질이 여동생? 그런 존재 같아요.
그래서 심심하다 그러면 놀아주고 배고프다 그러면 밥 사주고. 근데 먼저 막 보고싶다거나 만나고 싶진 않고.
아무튼.. 그렇게 나름 내면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며 힘들게 지내던 중..
얼마 전 이름없는 번호가 떠서 받아보니까 (얼마나 비장했는지 번호도 지웠었어요 -_-;;)
걔더라고요. 어떻게 지내냐고. 한 반년 만에...
그냥 다른 일로 정신이 없었다, 넌 어떻게 지냈냐 대충 때웠더니
연락도 한 번 없느냐 소릴 하길래 그러는 너는 뭐 연락 했냐 대답하고.
그러다가 영화 이야기 나오고, 그러다가 같이 보기로 돼서 또 만났어요.
약속장소로 끊임없이 마인드 컨트롤.
그땐 내가 미쳤었음 이제는 괜찮음 그건 내가 잠시 외로워서 돌았던 거임 반복반복반복.
근데..
이런 젠장 만나자마자 또 쿵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미쳤나봐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더더욱 친구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서.. 아주 그냥 행님아 모드로 더더욱 남자답게 오바해주고.
그간 연애사는 좀 어땠냐, 잘 해보지 그랬냐 화이팅까지 해주시고.
걔요? 걘 저랑 있으면 아마 5분에 한번씩은 핸드폰 들여다볼거예요. 문자하고 카톡하느라.
어쩔땐 제가 막 말하고 있는데 한쪽 귀에 이어폰 꽂고 있어요. 음악 듣는다고.
아무리 종일 일 하고 퇴근한 후라지만 같이 있는 사람 김 새게 계속 하품 해대고요.
영화 끝나고 딱 나오자마자 가는대로 쭐래쭐래 쫓아갔더니, (간만에 만났으니 당연히 차 한잔 할 줄 알고)
택시 잡더라고요. 잘 들어가라고.
그래 안녕, 하고 집에 들어와 머리를 쥐뜯었습니다.
친한 언니한테 심경고백했더니 미친 거 맞다네요. 그러다 실수하겠다고 걔랑 연락 끊으래요.
그쵸...
제 마음이 이렇게 복잡하고 자꾸 사심이 들어선 우리 친구도 못 하겠죠.
그리고 지금이야 걔나 저나 애인이 없으니 그렇지만
이러다가 걔 다른 여자 만나서 사귀고 그러다 덜컥 결혼이라도 한다 그러면
저 무서워요, 어떤 마음이 될지. 근데 나이상으로 볼 때 간당간당한 거 같은데.
에혀 험한꼴 되기 전에(?) 어서 마음을 잡아야할텐데요.
이상...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마칠게요.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