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비가 그쳤지만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죠.
집에 있을 땐 비 내리는 것 참 좋아하는데 빗소리가 연상시키는 여러가지 기억 중에
오늘은 화가 나는 일을 여기에 털어놓아보아요.
때는 2001년, 입주 1년이 채 안되는 신축대단지브랜드 아파트였고 - 서울 요지의 비싼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저는 첫 애를 낳은지 100일도 안된 새댁-.-이었습니다.
전 섬처럼 고립되어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없이 오로지 혼자서 아이를 키웠어요.
오죽했으면 생후 1개월 예방접종 때에도 혼자 가느라 신생아를 아기띠에 매달고 갔지요.
택시를 대절하면 싸개로 안고서 갈 수도 있었는데 그럴 융통성이 없었는지, 아님 모자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될 것 같아서 한 달된 애를 아기띠에 얹어서 지하철 타고 병원엘 갔다왔더랬죠.
그러니 100일 다되도록 어디 바깥 바람이나 쐴 수 있었을까요? 어느날 퇴근한 남편이 아기 보는 동안
단지 내 상가로 뭘 사러가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구요. 군인의 외박이 이런 기분일까,
장기 복역한 모범수에게 주어진 휴가가 이런 느낌일까 싶게 그 짧은 외출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날도 남편이 있어 수퍼 가는 길이었을 거예요.
비가 오늘, 아니 어제처럼 많이 내리던 여름날이었고 가는 길에 쓰레기도 버려야겠다 싶어
종량제 봉투에 잘 채운 쓰레기를 들고 우산을 받치고 룰라랄라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그 아파트는 두,세동 마다 공동 집하장이 있었는데요, 저희 동이 쓰는 집하장은 수퍼가는 길과 반대편이라
좀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날은 비도 오고해서 수퍼 가는 길에 있는 다른 동 쓰레기장에 버리고 가려고
가까운 쓰레기 수거함에 봉투를 내던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가를 향해 가려는데
어디선가 50대 쯤 되어보이는 아주머니 세 분이 나타나 저를 불러세우더니
왜 여기 동에 살지도 않으면서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냐고 해요.
저는 동선을 줄이는 지혜를 자랑이라도 하는냥 이만저만해서 가는 길에 버리려고 했다고
웃음을 띠며 순순히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왜 남의 구역 쓰레기통에 버리느냐고, 도로 가지고 가서 우리 동 구역에 버리래요.
일반쓰레기 수거함은 아주 커서 뚜껑이 열리는 윗부분 말고도 옆에 조그맣게 만든 문이 있었어요.
거기로 들어가서 제가 버렸던 쓰레기 봉투를 다시 가지고 나오라는 거예요.
저는 진짜로 그러라는 걸까 싶어 잠깐 멍해져 있는데
그 아주머니들이 우산을 쓴 채 제가 거기로 기어 들어가는지 안들어가는지 지켜보는 서슬이 어찌나 퍼렇던지
저는 찍소리 못하고 수거함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차마 - 여름날 쓰레기 수거함 상태, 어떨지 충분히 상상이 가시죠? 하물며 비까지 내리는데...
- 도저히 들어갈 수 없어서 아주머니들 쪽으로 다시 가서 몰라서 그랬다고 죄송하다고 다음부턴 안그러겠다고
사과, 아니 빌고나서야 그냥 가는 걸 허락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하도 황당해서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설사 그게 잘못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라는 걸 깨닫고서는 되게 속상하고 분하더라구요.
제가 다른 단지 사람도 아니었고,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무단투기도 아니었는데
같은 종량제 봉투 쓰는 같은 아파트 단지 주민이
단지 다른 구역 수거함에 쓰레기를 버렸다고해서 잘못될 것이 뭐가 있나요?
이미 종량제 봉투를 사용함으로 해서 비용을 지불했으므로
그쪽 수거함에 버린다고 그 동 사람들이 관리비를 더 내는 것도 아니며,
쓰레기 마다 동 호수 적어서 검사해서 지정된 수거함에만 버려야 한다는 안내문이나 지시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는데 말이죠.
도대체 그 아주머니들이 그 비오는 날 어리버리한 새댁 하나를 왜그렇게 몰아부쳤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정말 애낳고 키우다 보니 세상에 두렵고 창피한 것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만약 어제 같은 날 그런일이 벌어졌으면
나이 막론하고 맞장 뜨고 따져 물었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