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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전라도 시댁과 나.

말못해 조회수 : 7,072
작성일 : 2012-09-05 00:45:12

우선 특정 지역 이름을 써서 분란을 조장하는 것처럼 느껴지실까봐 걱정되네요.

저는 서울 태생이고 계속 서울에서 살다 결혼했어요.

남편이 저 만날 때 즈음, 잠깐 서울에 와 지낼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불꽃같은 연애를...ㅋㅋ

연애 시작하고 얼마 안돼 남친(현 남편)은 고향으로 내려가고 장거리 연애 8년.

그 8년 중 후반기 3년 정도는 다시 서울로 파견왔고 (부끄럽지만 제가 가장 큰 이유!!!  라고 믿고 있음ㅎㅎ)

결혼 후 (돈이 없어 ^^;) 서울엔 입성 못하고 현재는 경기 남부에서 살고 있어요.

 

저는 자라면서 '전라도가 어쩌고...'하는 말을 직접 들은 기억은 별로 없어요.

다만 연세에 비해 꽤 진보적?인 친정 아버지가 우리 현대사에서 전라도 분들이 피해를 많이 봤다는 말씀을 하신 걸

언뜻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대학 입학해서 여러 지방의 친구들 만났고, 개인 차도 있어서 그런지

지역에 대한 어떤 특징 같은 걸 느끼지는 못했어요.

 

남편을 만나고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전라도 시댁을 덤으로 얻으면서  ^^;

일가친척 모두가 서울, 혹은 경기도 언저리였던 제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문화를 가진 시댁을 만나게 됐죠.

신기한 일도 많았고, 재밌는 일도 많았어요.

어머님, 아버님과 통화할 때는 잘 못 알아듣고 그냥 맥락으로 짐작하며 네,네 대답한 적도 많고요.

 

게시판에서 전라도가 어쩌고 저쩌고 할 때마다 뭔가 하고픈 말은 있는데

오늘 마침 또 그런 얘기가 있길래, 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분석적인 생각을 조심스럽게 풀어놓습니다.

 

지역색이라는 거, 저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봐요.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가 있듯이 비슷한 지역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슷하게 갖고 있는 경향성?

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이 지역색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게 생각되는 쪽이에요.

다양성이 사라지는 거니까요.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그 경향성이라는 것이 각각 개개인의 무엇을 설명하거나 담보해주지는 못한다는 점이에요.

어떤 지역이 어떠한 문화적 경향성을 지닌다고 해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다 그렇다고 보는 건 위험하죠.

그러니 이 경향성을 가지고 개인에게 적용해서 일반화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책을 많이 읽으면 사고가 풍부해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상식화된 경향성이지만

책 많이 읽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고가 풍부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처럼요.

마찬가지로 지역색은 그냥 지역 공통의 문화적 경향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개념에 불과하지

그 지역 사람 개개인에게 함부로 대입하고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럼 제가 겪은 아주 개인적이고 비분석적인 시댁쪽 (전남 어느 지방) 분위기와 경향성을 말해볼게요.

이 분들이요, 제가 보기엔 꽤 정서적으로 풍부해요.

풍부하단 얘긴 정서적인 면에서 민감하다, 예민하다, 감각이 뛰어나다, 재주가 있다... 이 모든 걸 포함합니다.

보기에 따라서 좋은 면일 수도, 나쁜 면일 수도 있죠.

말에 위트가 있고 재치가 있는 반면, 스리슬쩍 뼈 있는 말씀도 잘 하십니다.

남도에서 발달한 소리(판소리, 민요 등의 가사)를 봐도 그런 게 느껴지잖아요.

웃기면서도 뼈 있는 소리.

언어 생활 전반에 그런 게 풍부해서, 그런 면에서 둔하거나 경험치가 떨어지는사람에게는

'웃으면서 뒤통수 치는' 걸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정도 참 많으시죠.

시댁에 내려가면 동네가 정말 친척같이, 아직 그런 문화가 남아있어요.

제 아이들을 어린 시절만이라도 그런 '살아있는 마을'에서 키우고 싶은 생각 많이 했네요.

하지만 그만큼 말도 많고, 사생활 보호 그런 면에서는 감각이 떨어져요.

단순히 동네 분들이 나이가 많으셔서는 아닌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서울과 그 주변 수도권에 비해서는 확실히 마을 공동체가 아직 건재합니다.

그래서 따뜻하기도 하지만, 개인적 생활과 공간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흥도 많고, 문화적인 재주?도 많아보였어요.

점잖은 분도 마을 잔치에서 거침없이 장구 매시더라구요. 흥이 들면 돌변(좋은 의미로 ㅎㅎ)하는 느낌?

제 남편도, 시동생들도, 시외가, 시댁 동네... 모두 공통적으로 흥이 많고 잔치를 즐길 줄 아는, 한마디로 놀 줄 아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친근함이 금방 들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느낀 전라도 문화의 또 한 가지 경향성은 '자존심'이었어요.

전반적으로 자존심이 세어 보였어요.

남에게 기대거나, 빌어먹거나 하는 것에 대해 다른 곳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여나 그런 취급을 받으면 상상 이상으로 흥분하고 화를 내는 걸 몇 번 봤네요.

또한, 무시당하거나 업신여기는 것에 대해서도 민감도가 남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물론 어느 누구도 그런 걸 좋아하진 않겠지만

이쪽 분들은 그것에 대한 민감도가 훨씬 높아서 반응도 훨씬 강하다고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싶으면, 아주 싸늘하고 냉정하며

때로는 분이 차서 꼭 응징?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 보통은 연을 끊는 것을 큰 응징으로 여기시는 듯...

이 때 가까운 사람에게, 친한 사람에게 상처난 자존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위에서 말한 '위트있게 뼈 있는 말하기' 같은 방법으로 표출되기도 하고요. 

 

남편하고 부부싸움하면 이런 부분에서 서로 코드가 안 맞아 처음엔 좀 힘들엇네요.

남편은 제게 절대 얼굴을 붉히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요.

장난도 잘 치고, 농담도 잘 해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엔 저를 즐겁게 해주죠.

그런데 둘 사이에 뭔가 의견 차이가 있거나 감정이 틀어졌을 때,

저는 정색을 하고 오목조목 따지면서 옳고 그름을 가르려고 하는데

남편은 다 듣고 끄떡끄덕 하다가 농담 한 마디 툭 하고 던지면서 저를 웃기고 논쟁을 종결시켜요.

그런데 그 툭 던지는 말이 실은 뼈가 있는 말인 경우죠.

제가 감정의 파도가 안정화되고 남편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스리슬쩍 부아가 나기도 하고, 반대로 제가 부끄러운 생각도 들고 그래요.

부아가 나는 건 (결혼 초기엔 이걸로 속 많이 끓였음)

나는 싸우자는 게 아니라 논쟁과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내 생각에) 건강한 방법을 시도하는데

남편은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문제를 회피하는 걸로 느껴졌고,

또 웃기는 말로 좋게 언쟁이 해결된 줄 알았는데 그게 실은 내게 던진 뼈 있는 말이었다는 것도 당황스럽더라구요.

하지만 요즘엔 부끄러움을 더 많이 느껴요.

제 딴엔 이성적이라고 하지만 실은 그런 상황에서 저는 굉장히 감정적이더라구요.

그래서 말은 따박따박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 같지만 꽤 흥분하고 자기중심적이죠.

반면 남편은 한 발 물러서서 제가 넘고 있는 감정의 파고를 지켜보고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맞부딪쳐 불필요한 싸움(싸움이 싸움을 낳는 나쁜 경우)를 방지하고

막판에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되, 지리한 설명이나 설득이 아니라

위트있는 한 마디로 분위기를 바꾸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이 여유와 재치는 제가 꼭 배우고 싶은 부분이에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오히려 남편이 더 애교쟁이처럼 보이고

저는 종종 싸움닭처럼 보인답니다. ^^;

남편은 남자치고 눈치도 빠르고, 감각도 뛰어난 편인데 저는 이것도 어느 정도 지역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흔히들 '전라도 사람들은 앞에서는 잘해주면서 나중에 뒤통수 친다'는 말은,

제가 나름대로 생각한 이 경향성에 대해 나쁜 면만 부각한 표현인 것 같아요.

또한, 현대사에서의 지역주의(정치권력의 의도에 맞춰 조장된)로 인한 아주 나쁜 폐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파악한 두 특징 (정과 흥이 많으나 자존심이 강한) 이 그런 선입견으로 일반화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다행히 저는 이 지역 문화와 코드가 잘 맞는 편이에요.

저희 시부모님, 배움은 길지 않으셨지만 훌륭한 인품이시고, 제 남편, 존경합니다. (여보, 사랑해. ㅋㅋ)

친정 부모님도 인정하시는 바랍니다.

시댁 친척분들, 동네분들.

아주 가끔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따뜻하고 편안하고 유쾌하기까지 합니다.

 

저는 부끄럽지만, 눈치가 없고 둔한 편이랍니다.

아주 전형적인 머리형 인간이고, 결혼하고 보니 정말 제가 서울깍쟁이란 게 그제서야 느껴졌어요.

 

제 남편과 시댁과 시댁 주변으로 인해

저는 나만이 옳다 생각했던 시야에서 벗어나 좀더 여유있고 재치있는 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쪽 문화를 사랑합니다.

제 아이들은 이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외가(제 친정)도 자랑스럽게 느꼈으면 좋겠고요.

(그래서 아이들 취학 전 이삼 년만 시댁 동네에서 살아볼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

 

어쩌면 이런 글 자체가 그 지역 분들에겐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타 지역 사람이 잠깐 보고 겪은 것 가지고 경향성이 어쩌니 저쩌니 함부로 말하는 일은 아주 기분 나쁜 일이지요.

그럼에도 용기를 내 굳이 이 글을 쓰는 건

항간에 떠도는 잘못된 선입견( 앞에서 말했듯 현대사에서 정치권력에 의해 조장, 과장, 유포된 측면까지 있는)을

지켜만 보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시댁 자랑? 겸 이렇게 밤 늦게... (아, 젖이 불어오네요. 요새 밤중수유 끊느라 초큼 고생중 ^^;)

그러니 너무 기분 나쁘게만 생각지 말아주세요.

 

저는 전라도, 경상도 문제보다는

수도권, 지방으로 나뉘는 '수도권 집중화'문제가 훨씬 심각하다고 보거든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게 느껴져요.

 

이 모든 이야기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비전문적인 잡설이었어요.

그러니 너무 분석적으로 생각하고 머리 아파하진 마세요.

저는 이만 불어버린 젖을 해결하러...  ^^;   =3=3=3

 

IP : 223.222.xxx.41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jonny
    '12.9.5 12:49 AM (121.162.xxx.205)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술술 읽었어요
    님 의견에 동감하고 갑니다

    교양 있으신 분 인듯 글쓴이님.

  • 2. 별빛 그 이름
    '12.9.5 12:58 AM (124.195.xxx.129)

    맞아요, 제가 전라도에 살아보지도 않았고 가보지도 않았고 친척이 있는것도 아니고 친구가 있는것도 아니어서 잘모르지만, 전라도는 감정이 풍부해요. 책을 보고 알았어요...^^
    그 감수성과 빛나는 언어다발들, 바로 전라도만 갖고있는겁니다.

    그래서 소설가들이나 시인들도 유독 전라도가 고향인 사람들이 많잖아요.^^
    신경숙, 은희경,공선옥, 조정래, 이청준, 양귀자,그 외에도 셀수없이 많은 시인들도 있고요.
    그래서 전 전라도가 있다는게 참 감사해요.

  • 3. 싱그러운바람
    '12.9.5 1:00 AM (121.139.xxx.73)

    원글님이
    참 예리하시네요
    전 전라도 북쪽 뇨자입니다 ㅎㅎ
    그런데
    저도 남쪽에도 살아봤는데요 같은 전라도라도 지역 특색이 참 다르더라구요

    아래 남쪽 시골마을출신 남자와 결혼한 제 친구도
    같은 전라도 여자임에도
    남편과 감정이 상할때 남편이 던지는
    슬쩍 한마디에 첨에는 참 힘들었다고 하네요 ㅋㅋ

    그리고 시댁에 가면 처음에는 말씀하시는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정겹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두어번씩 되물어야했구요(길가에서 뭐라도 사려면)

    나중에 살다보니 그립고 정겹더라구요
    지금은 떠나와 수도권에 살고있지만 그곳의 말투와 사람들의 정이 그립습니다


    또 아직 살아보지 못했지만 경상도쪽도 그런 나름의 매력있는 문화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저 또한 님처럼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과 풍습이
    그대로 간직되었으면 합니다,

    요즘 다니다 보면 음식문화가 획일화 되는것 같아 안타깝더라구요

    다른것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편견없이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 4. 공감
    '12.9.5 1:03 AM (124.197.xxx.31)

    제가 전라도 사람인데 맞는 거 같아요.
    감성이 정말 풍부하고 자존심이 정말 세고 남이 무시하는 거나 남에게 기대는 걸 정말 못견뎌해요
    그리고 언변이 좋은 편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잘 표현해요. 말에 뼈 있게도 하겠지요?
    남 설득을 잘 하는 편..
    가족애는 지극해요. 자존심 그거 하나만 건드리지 않아주면 저는 정말 잘 지낼 수 있어요 ㅠㅠ
    정도 많고 받을 거 생각 잘 안 하고 잘 퍼주는 스탈이랍니다.

  • 5. 동감 동감
    '12.9.5 1:04 AM (116.34.xxx.74)

    저도 남편이 전라도 출신,
    저도 전라도 출신은 사람들은 저희 남편, 시댁으로 처음 접했어요.

    지역색은 분명 존재한다고 봐요.
    근데 그걸 단점만 부각시켜 사용해서 문제지..
    단점을 뒤집으면 바로 장점이 되는거^^

    특히 농담처럼 하면서 뼈있는 말 하기.. 정말 와닿네요.
    저는 부산 출신이라 직설적으로 말하는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은근 그런식으로 말하는게 한번 생각하고 정리하고 말하는 법인거 같아요.
    저도 아직도 연습하고 있어요. 성격급하고 그런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요.
    그래서, 너무 적응이 되었나 친정가서 얘기하면 좀 상처받을려고 해요 ㅜㅜ
    너무 직설적이야... 갑자기 치고 들어와서... 경상도는 ㅋㅋㅋ

    겉으로는 흥도 많고 유들유들하고 실없는 소리 잘해서 감정적인거 같지만
    사실은 아주 이성적인 부분도 많은거...
    그리고 자존심 센거... 너무 공감 가요.

    그리고 싸울때 저도 옳고 그름, 누가 잘못하고 안했는지 위주로 많이 따졌는데,
    남편은 해결방법 위주로 많이 따지고, 그 결과로 누군가 더 양보했을때는 꼭 뒤에서라도
    챙겨주고 배려해주는게 있다는걸 결혼하고 6년이 지나고야 알았네요.
    그래서 서로에게 양보해줄 수도 있고 배려해줄 여유가 있는거 같아요. 분위기가...

    그런면이 좀 유들유들하고 생활력강해서 사기꾼 처럼 보인다 이런식으로 폄하하는 거 같기는 해요^^;

    아무튼 전라도 시댁과 남편을 둔 입장에서 너무 공감가는 글이었어요.

    이렇게 정리하고 쓰고 그러는게 통찰력이 상당하신 거 같아요. 부러워요~~^^

  • 6.
    '12.9.5 1:07 AM (112.153.xxx.149) - 삭제된댓글

    참 글을 너무 잘 쓰신다는 생각을 했어요.
    끄덕 끄덕하면서 읽었고요.

    저는 전라도, 경상도 문제보다는

    수도권, 지방으로 나뉘는 '수도권 집중화'문제가 훨씬 심각하다고 보거든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게 느껴져요.

    -->전 이게 제일 마음에 와 닿았어요.

  • 7. 이제 해결했어
    '12.9.5 1:08 AM (223.222.xxx.41)

    저는 그리고...
    우리 엄니의 음식들,
    저희들 내려가면 한정식이 뭐냐 싶은, 맛의 향연.
    더불어 오는 차 트렁크에 가득 실리는 보급물품들.
    이거 너무 싸랑합니다.
    오리탕, 죽순요리, 풀싹나물... 결혼하고 처음 접한 것들이지만
    무엇 하나 맛없는 게 없고
    친척집에 다녀봐도 다들 기대 이상의 음식 수준들.
    식당도 제 입맛에는 웬만한 데는 기본 이상은 되어주는 안정적인 음식 문화.
    떡볶이를 사먹어도 반찬 수준으로 곁들이 음식이 나오는 데는 문화적 충격까지...

    그러나 거꾸로 보면 아직도 여성분들은 너무 고생한다는 거.
    결혼식하고 피로연도 했는데 집에 와서 동네 잔치 또 해야한다는 거.
    어디 놀러가면 먹을 것 준비하고 싸고, 바리바리 짐 들고 다니는 게 너무 당연한 문화.
    저처럼 얻어먹는 자는 축복이지만
    그게 준비하시는 엄니는 너무 고생하시는데
    중요한 건 말리거나 대안을 제시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
    손님에겐 꼭 밥을 '제대로' 차려 대접해야하는 문화. 손님 입장에서도 때론 쪼금 부답스럽다는...=3=3=3

  • 8. 신났구나
    '12.9.5 1:18 AM (223.222.xxx.41)

    별빛 그 이름 님, 고재종을 왜 빼셨어요? ㅎㅎ
    (아, 이제 슬슬 우리 시댁 동네 드러난다...)

  • 9. 자야지
    '12.9.5 1:36 AM (223.222.xxx.41)

    음님, 소중한 경험과 느낌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계속 밝혔듯 그저 개인적인 잡설이니 그냥...

    근데 저희 엄니는 저 일 안 시키셔요.
    아무래도 자주 못 뵈니 더 그렇기도 하고
    워낙 본인이 고생하시고 남에게 베푸는 분이라 그런듯 , 저는 이젠 연차가 좀 되니 부끄럽기도...
    아직까지도 귀한 손님 대접해주셔서 무한감사.

    제 말은 여자들이 몸종이더라.. 가 아니라
    음식문화가 발달되고 수준이 높다보니 아무래도 여성들의 고생이 더 높은 편이다.. 그 얘기를 하려던 거에요.
    그 부분은 오해없으시길 바래요.

  • 10. ㅎㅎ
    '12.9.5 6:53 AM (124.52.xxx.147)

    전라도 사ㅏㅁ들이 정이 많고 처ㅡㅁ 본 사람들에게도 친절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싫은 상황에서는 안면 바꾸는거죠. 그래서 간쓸게 다 빼주고 뒤통수 친다는 소리를 듣는듯.

  • 11. 이해를 해야하나
    '12.9.5 7:02 AM (14.138.xxx.67)

    시집의 문화를 이해하고진정한
    전라도인이 되신거네요
    전 아직도 적응이안되는데
    너무 부담스럽고 낮설어요

  • 12. 민들레 하나
    '12.9.5 7:13 AM (222.239.xxx.53)

    잘 보았어요. 존경할 수 있는 시댁이 부럽네요.

  • 13. 흐흠
    '12.9.5 8:12 AM (119.70.xxx.19)

    저도 서울 사람으로 전라도로 시집 온 사람인데요
    오래 살아보니 전라도 분들 애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설적 말투도 그렇지만 정권의 비호(?) 아래 할말 다 하고 당당하게 사는 경상도 사람들에 비해
    할 말 못하며 지역적으로 곡해 받고 천대 받고 사느라 (사실이더라구요)
    직설적으로 말 못하고 꾹 눌러 참다 하는 말은 뼈있는 소리 한다로 여길 수 있다는 걸요

    제 남편도 그렇고 시댁 분들도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인데
    그동안 출신이 전라도라서 오해 받고 살았겠구나 싶어 짠 하더라구요

    서울 깍쟁이가 전라도 사람이 되었나봅니다.^^

  • 14. 그냥
    '12.9.5 9:30 AM (121.148.xxx.172)

    읽어내려가면서
    담양일것같다,,했다가
    고재종님..

    넉넉한 동네,좋은동네입니다.

  • 15. 저두
    '12.9.5 10:44 AM (118.36.xxx.154)

    서울여자입니다만 왜 저는 오히려 결혼하구나서

    그들의 문화에 질식하것만같은지....

    뭐든지 정으로 대변하는것두 그렇구 경상도 사람에대한

    피해의식 존재하구 자기가족이외에는 배타적이구

    능력없이 가부장적인거 쩔구, 서울사람에대한 (깍쟁이)라는 시각으로

    대하구 동서들끼리두3명 전라도 저서울 매사 서울사람이라그런다구

    왕따시키구...

    전선입견없었는데 지금은 아이들학교엄마 친해졌다가도 전라도라하면

    아무리 그엄마 인품좋구 선해도 제게 손해라는거 알아도 교류안해요.

    이래서 사람은 자기가 보구 들은거만 믿으려는경향이 강한가봐요.

  • 16. 큰 애 등원시키고
    '12.9.5 11:18 AM (223.222.xxx.41)

    밤새 댓글이 꽤 달렸네요. ^^
    장문의 댓글 남기셨던 음님은 지우셨나봐요. 왜 그러셨지? 음냐.

    애잔함.
    저도 그런 거 좀 느꼈어요.
    그리고 오히려 전라도 시댁을 얻고보니 전라도에 대해 차별하는 말, 함부로 하는 말들 더 많이 듣게 되었네요.
    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묻어나오는 말들.
    아마도 전에도 듣던 말인데 흘려들었던 게고, 결혼 후엔 제 더 귀에 들어왔기 때문이지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제가 느낀 특징 하나는
    언어능력이 뛰어나다는 거에요.
    말에도 멋을 섞을 수 있는 기본 재주가 있는 사람들.
    댓글에서도 그런 말씀 하신 분들 계신데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표현도 풍부하고 비유가 흘러넘치고 핵심을 치고 나가는 능력도 뛰어나더라고요.
    언어가 발달해서인지 다른 언어도 금방 배우시는 것 같았어요.
    시댁 식구들 모두 음감이 뛰어난데 남편이 중국어 배우는 거 보면 적지 않은 나이에도 발음이나 성조가
    꽤 자연스럽더라구요.
    언어를 감각으로 익히는 느낌? 그런 식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은 서울 와서 사투리 금방 고친다, 혹은 고향을 속인다'는 말들은
    그쪽 분들의 뛰어난 언어능력이 뒷받침되면서 나온 소리가 아닌가 싶어요.
    물론 사회전반적으로 자신의 고향에 대한 억울한 선입견이 팽배하니
    그로 인한 영향(빨리 사투리를 고칠 필요성)도 있을 수 있고요.

    동네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가끔씩 만담하는 느낌? 민요에서 메기고 받는 것처럼 그런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서로 흥이 나는 상황에서도,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의논을 하는 상황에서도
    이 메기고 받듯 하는 말들을 듣다보면
    그네(그 그네 아님미다. ㅠㅜ)가 왔다갔다 하는 듯한 재미가 있어요.
    오히려 연세 많이 드신 분들일수록 그런 재주?가 뛰어나시더라고요.
    언어유희도 수준급이시고...
    아, 뭐 더 말하고 싶은데 이쪽 전공이 아니라 그 풍부함과 재미를 전할 수가 없네요. 아쉽당.

    하여간
    저는 전라도 문화를 이렇게 공짜로 경험하고 배우게 돼서 영광이라 생각해요.
    물론 다른 지역들도 겪게 되면 배울 점이 많겠지요.

    그래서 아이들을 자주 시댁에 데리고 가고 싶은데 한 달에 한 번 가기도 어렵더라구요.
    어릴 때 자주 데리고 가야할텐데 말이죠.
    좀 커서 자기네끼리 여행이 가능할 때가 온다면 남도일주 같은 거 시키고 싶어요.
    서울(수도권)에서는 읽어도 알 수 없고 보아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꼭 알려주고 싶어서요.

    그나저나...
    지금 댓글 분위기는 제 시댁 동네 맞추기로 흐르는 건가요? ㅋㅋ

  • 17. 전라도 여잡니다
    '12.9.5 3:56 PM (220.71.xxx.35)

    너무나 예리하십니다!!!!!


    글로 부드럽게 잘쓰셨구요.
    문화인류학 리포트를 읽는것 같아요

    다큐작가를 하셔도 잘하시겠어요

  • 18. dd
    '12.9.5 9:20 PM (219.249.xxx.146)

    내용에 100퍼센트 동감하는 건 아니지만(저도 전라도^^)
    글 참 잘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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