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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지난. 루사 때 실제 피해를 봤었어요.

실제 피해자 조회수 : 5,315
작성일 : 2012-08-27 17:43:16
저는 지난 루사 때 실제 피해를 입었던 사람이예요.
밑에 어떤 분이 태풍 대비에 관한 글에 리플을 달려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 새글로 써요.
일단 루사는 비가 많이 온 태풍이고 현재 오고 있는 태풍은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라 양상은 좀 다를지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글씁니다.
제가 살았던 곳은 산 밑이나 해변, 강가 근처가 아닌 도시쪽이었고 아파트촌 속 약간 고지대 주택이라 비피해는 그리 없었어요. 다만 태풍 영향권일 때 무서운 줄 모르고 나갔다 빗물과 역류된 물에 휩쓸려 죽을 뻔 하다 구조되고 겨우 집까지 갔었습니다.
지금부터 쓸 얘기는 집에서 고립된 후의 일입니다.
1. 루사가 온 그날 밤
전기, 전화, 가스 모두 끊겼습니다.
전화국이 물에 잠겨 전화가 불통이 되어 친인척이나 친구들에게 연락조차 못하고
전기가 들어오질 않아 티비. 인터넷 모두 할 수 없었습니다. 밖의 상황을 모르니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밖은 폭포소리만 들리고 먼 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청에 시달렸지만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가면 죽을 것 같았거든요.
창문 틈 사이로 비가 연실 들이 닥쳐 방안에 물이 새서 자는 중간중간 걸레질을 했습니다. 사람들과 연락이 안된다는 것이 이렇게 끔찍하고 걱정되는 일일 줄 몰랐습니다.
2. 둘째날
여전히 전기, 전화, 가스는 되지 않았습니다.
빗물과 역류한 하수구물, 똥물에 빠졌던 온 몸에서 냄새가 나고 가렵기까지 합니다. 집에 구비한 물이 많지 않아 빗물이 빠진 길을 확인 후 동네슈퍼를 가니 물이나 초, 부탄가스, 라면, 참치 등은 이미 많이 빠졌습니다. 냄새나는 몸을 벅벅 긁으며 차를 끌고 나가 다른 슈퍼, 마트를 찾았습니다. 침수된 곳도 있고 물이 빠진 곳도 있었지만 순식간에 밀어닥지는 물을 간밤에 겪었기 때문에 공포심에 멀리 나가진 못합니다. 대충 살 수 있는 만큼 삽니다. 어느 슈퍼에서는 본인들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많이 못 판다며 미안해하며 판매거부를 한 곳도 있습니다만 다 이해했습니다. 그 분 표정도 공포와 슬픔. 피곤한 얼굴이 뒤죽박죽 되어 있었거든요.
그렇게 어느정도 먹을 것과 가스, 초, 라이타를 산 뒤 집에 와서 생수로 몸을 씻습니다. 언제 물이 나올지 몰라 대야에 생수를 받아놓고 최소한의 물로 씻습니다. 그 물은 버리지 않고 간밤에 입었던 옷을 빨았습니다. 그리고 차게 식은 밥과 라면으로 허기를 때우고 잡니다.
아. 전등은 켜놓은 채로 말입니다. 그래야 불이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있으니까요.

3. 셋째날.
사실 앞서 쓰지 않은 것이 있는데 저지대에 사는 친구들 몇몇이 저희 집으로 왔었습니다. 버스건 택시건 교통수단이 아무것도 되지 않으니 2-3시간을 걸어 녹초가 된 채 왔었죠. 민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살아있어줘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서로 펑펑 울었습니다. 밤새 초를 켜고 겪은 일을 얘기하며 다독이니 좀 더 살만하더군요. 하지만 중요한 건 셋째날이 되니 물이 아주 부족했던 거죠. 셋째날쯤 되니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건 어느정도 익숙해졌는데 정보를 알 수 없으니 도통 어딜 가야할지를 몰랐습니다. 물을 받으려면 동사무소로 가야하는지. 대피소는 어딘지. 지침은 어찌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였죠.
그때쯤 어느 한 친구의 핸드폰이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제 핸드폰은 불통) 잘 되는 건 아니고 감이 멀고 목소리가 뚝뚝 끊기는 그런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고성쪽은 저희쪽보단 피해가 덜해 전기와 물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디 어디 도로로 오면 될 것 같다. 이쪽으로 와서 물을 가져가라. 해서 정말 목숨 건다 생각하고 들통 몇 개 들고 씻지 못한 친구 두명과 빨래거리를 가지고 급히 갔죠. 그때도 막연한 공포심을 가지고 운전을 했습니다.
가는 길 내내 꺽인 나뭇가지와 죽은 소와 돼지가 해변가에 널려있더라구요. 오. 아멘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구요. 참 사람이 간사한게 저기 누워있는 게 그나마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더라구요. 저 동물 정말 끔찍히 좋아하는데도요. 사람이었으면 패닉에 빠졌을거예요.
그렇게 그 집에 도착해 물과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 몇가지를 챙기는 사이. 다른 친구들은 씻고 빨래를 한 뒤 해가 지기 전에 귀가를 서둘렀습니다. 밤이 되면 그날 밤처럼 돌변한 루사의 모습을 볼까 걱정되었거든요. 그 고성 그 친구가. 이젠 관찮대. 하는데도 직접 뉴스를 보질 못했으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4. 넷째날과 일주일
이미 겁을 집어먹은 우리는 한시도 이곳에 있고싶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타지역에 가서 안전을 보장받고 싶었는데 버스가 운행하지 않고 그때 제 기억으론 고속도로도 운행제안을 했었어요.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곳은 강릉터미널에 가서 그 곳에서 타지역 버스를 타고 가는 길 뿐이었죠(나중에 알고보니 강릉도 비피해가 심했더라구요. 전 강릉은 버스 운행한다길래 피해가 심하지 않은 줄 알았어요) 이때부턴 저도 오래되어 기억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아마 넷째날과 일주일째 되는 사이 전기가 복구되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은 겁이 나서 모조리 타지역으로 갔었고 그때부터 전 또 혼자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모두 나와 비피해를 입은 전자제품같은 것을 닦고 있는 모습이 인상졌이었죠. 저희 집은 아까 쓴대로 고지대라 그 정도까지의 피해는 없었지만 트라우마는 그리 쉽게 거쳐지지 않더라구요.

요번 태풍은 루사 때처럼 비가 많이 오는 것이 아닌 바람에 쎄게 부는 쪽이라고 하던데.
전기, 전화, 물이 끊기면 저런 곤란한 상황들이 벌어지더라구요.
아! 화장실도 참 곤란해서 하루 한번만 가기로 정하고 정 못 참겠으면 작은 건 마당에 하는 걸로 했었어요. 다시 물이 공급된 후. 정말 시원하게 마당 청소 했네요 ㅡㅡ
제 글이 그다지(?) 도움은 안될지라도. 이런 일도 있었다는 걸 꼭 써보고 싶었네요.

아. 그리고 그날 밤.
제가 구조되던 그 곳에서 두 분이 돌아가셨어요. 추모제도 했던 걸로 알아요.
또 전기가 들어 온 후 인터넷으로 뉴스 다시보기를 하는데
어느 허름한 주택에 사시던 90대 할아버지가. 고립되었다가 구조된 장면을 보았는데
건장한 청년 등에 엎힌 할아버지는 정말 마르고 약한 모습으로. 아기처럼 엉엉 하고 우시는 거예요. 혼자 며칠을 가둬진 채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이렇게 죽는구나 하셨대요.
저도 루사 때 부모님이 멀리 타지역에 가셔서 혼자 있었는데. 아무 소식도. 아무것도 모른 채 혼자 고립되었다 친구들을 보자 정말 눈물부터 나왔거든요. 젊은 저도 그런데 그 할아버지 심정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뉴스 장면이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이런 태풍 오면 주변에 문자나 전화 한번씩 쫙 돌리게 되더라구요.
모쪼록 피해가 없었음 좋겠네요
IP : 110.70.xxx.254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2.8.27 5:47 PM (110.70.xxx.254)

    폰으로 썼더니 오타가 심하네요. ㅡㅡ;;

  • 2.
    '12.8.27 5:51 PM (118.41.xxx.147)

    강원도쪽이셧나봐요
    저희 친정도 그쪽이라서 그때 상황을 좀 알죠
    고생하셧어요
    저는 펌글인줄알았네요

    아무탈없이 넘어가면 좋겟어요

  • 3. 쌍둥맘
    '12.8.27 5:52 PM (203.112.xxx.2)

    무섭네요. ㅠㅠ
    초와 부탄가스. 생수가 필요하군요.
    준비해야겠어요.

  • 4. ...
    '12.8.27 6:09 PM (125.134.xxx.183)

    전기와 전화는 그렇다치고 물은 왜 끊기게 되나요?
    수도물이 안 나온다는 말인가요? 강풍, 폭우와 수도물은 무슨 상관이 있는건가요?

  • 5.
    '12.8.27 6:12 PM (121.167.xxx.114)

    잘 읽었어요. 한 번도 당해보질 않아서 당췌 태풍이 와야 오나부다..하는 참이었어요. 단전 단수 끔찍한 상황이네요. 욕조에 물 좀 받아놔야 할라나 봐요.

  • 6. ..
    '12.8.27 6:18 PM (180.71.xxx.53)

    진짜 무서우셨겠어요
    복구에 시간이 좀 걸리니 대비를 해 놓는것도 좋을 것 샅아요
    단전 단수되면 정말 두렵죠...

  • 7.
    '12.8.27 6:34 PM (221.142.xxx.65) - 삭제된댓글

    우물이 아니니까
    설비가 잠겼다거나
    설비는 멀쩡해도 단전되면 가동을 못하잖아요

  • 8. 단수
    '12.8.27 7:08 PM (110.70.xxx.254)

    전화가 끊긴 건 그때 고성 사는 친구한테 전화국이 침수되었다고 들어서 알게 되었고 단전, 단수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보면 재해 후에 소방차가 와서 물공급을 하거나 생수를 나눠주는 건 봤어도 이유는 제대로 들은 적은 없네요.
    단지. 한가지, 그날 루사에 의해 제가 물에 빠진 날. 하수구가 분수대처럼 높이 역류하고 똥물과 하수구 썩은 내가 섞인 물과 온갖 시체(동물이든 뭐든)와 나뭇가지, 돌이나 쓰레기가 뒤섞인 그 물을 정화하고 청소하기 위해 단수가 되지 않았을까요? (제 짐작일 뿐)

    아 그리고 본문에 하나 빠진 것이 있는데. 둘째날 비도 안 오는데 자꾸 어디서 물이 졸졸졸 새길래 봤더니 냉장고 성애가 녹아서 물이 고였더라구요. 그거 치우는데 고생 좀 했네요;;

  • 9. 그리고
    '12.8.27 7:18 PM (110.70.xxx.254)

    벌써 십년쯤 된 이야기라 정확한 시간이나 날짜는 저도 착오가 있을 수 있으니 약간은 가만하고 보세요. 정확한 건 3일 이상 고립되었고 전기와 전화. 물은 일주일 안에 차례대로 공급되었던 거 같은데 어느 것이 먼저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네요. 다만 제가 살던 곳에서 타도시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은 일주일이 되어서야 운행되어 패닉에 빠진 친구 위로해주고 그랬어요.
    이번 태풍은 루사랑 양상이 다르지만 알고 당하는 거라 모르고 당하는 건 천지차이더라구요. 그래서 도움이 좀 될까 글 올렸습니다 ^^;

  • 10.
    '12.8.27 7:25 PM (110.70.xxx.254)

    윗님 글 보니 기억이 막 떠오르네요. 종아리까지 오던 물이 순식간에 무릎, 허벅지까지 차고. 비명도 지를 틈도 없이 떠내려가고.
    무서운 건 종아리까지 차는 물에도 그 물살이 너무 세서 몸을 가눌 수 없었단 것 ㅠㅠ 휩쓸리던 날 전 고지대에 있었는데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택시정류장이 있던 저지대로 간 거였어요. 자살행위였죠. 상상도 못했어요. 물에 순식간에 휩쓸려 아무거나 잡았는데 그게 전봇대였고 위쪽에 사람들이 안간힘을 써서 절 구한 거거든요. 겨우 중심을 잡고 일어서서 아랫쪽을 보니 분명 택시정류장이 있던 왕벅 4차선도로가 그냥 큰 강이 되어서 점점 위쪽으로 오고 있었어요. 상상도 못하던 일이 벌어진 거죠. 사람들하고 정말 도망치면서도 몇번을 넘어지고 서로 잡고 도왔는지 ... 사람들 표정은 마구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는데 빗소리와 다가오는 물소리가 너무 커서 아무소리도 안 들리더라구요. 그래서 그날 밤. 계속 비명소리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물이 여기까지 오게 될거야. 하는 공포심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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