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훌리건이 등장하게 된 시점은 2000년 무렵부터 시작된다. 이시기는 인터넷이 광범위 하게
유통되기 바로 직전으로써 아직 네이버. 디씨 같은 포탈이 활발해 지기 이전 시점이다.
이때 최초로 훌리건이라 불리울 자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런 훌리건들이 등장하게 되는 까닭은
최초로 종이배치표가 아닌, 진학사 게시판에 1990~2000년대의 입결이 실시간으로 비교 대조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훌리건들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비해 자유자재로 자신들의 대학과 타대학의
입결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입결을 중심으로 대학 서열이 오르내리게 된다.
이 당시의 입결 기준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외대-한양-중앙-경희 순으로 나오게 된다.
이 당시는 아직 인터넷 보급과 데이터베이스 부족으로 인하여 아웃풋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입결로 순위를 먹이고 있던 시점이다.
이때 등장하는 대표적인 훌리건으로서 성균관대와 한양대 훌리건들이 등장하게 된다.
성균관대는 봉명재단에서 삼성으로 재단이 바뀌게 되면서 입결이 점차 상승 추세로 가게 되었었고
한양대는 사법시험 합격인원 1000명대에 접어들면서 사시 합격자가 이전에 비해 대폭상승하게 되면서
한법을 중심으로 문과 인풋을 비교하는 수준으로 가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강대나 외대 중앙대 경희대 훌리건들은 보기 힘들었으며
성균관대와 한양대는 훌리건 사관학교라는 별칭을 들으며 맹활약 하기 시작한다.
2. 훌리건의 전성기
수많은 성균, 한양 훌리건들의 활약으로 인해 진학사 게시판은 마침내 훌리건들을 차단하기 시작했으며,
갈 곳을 잃은 훌리건들은 드디어 아주 대놓고 훌리거닝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원하게 된다.
이때 탄생한 곳이 대배토(대학배치표토론) 유니드림이라는 사이트 였으며, 이 때부터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아웃풋이라는 요건이 대학 서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대배토 유니드림은 익명게시판이라는 단점에 의하 관리가 매우 힘이 들었으며 그러한 결과로
최초로 훌리건 천국이라는 사이트가 드디어 탄생이 되며 대학 서열이 본격적으로 먹여지게 된다.
이 무렵이 2002년 무렵이었으며 이곳에서 드디어 현재 유통되고 있는 서열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당시의 훌리건들의 상황을 검토해 보면
성균관대가 삼성의 지원으로 인하여 집요하게 서강대를 공격하고 있었으며, 한양대는 한법과 한공을 이용하여
성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외대는 전통적인 입결의 강세로 인하여 한양대를 공격하였으며
성대를 간간히 견제하고 있었으나 성대에게는 한 수 접어주는 분위기 였다.
이 때 특이한 곳이 중앙대와 경희대 였는데, 중앙대는 입결이 계속하여 부진하게 나오자 특단의 대책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경영,정경을 제외한 언사외 전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대는 서열 싸움에 참여해봤자 계속해서 얻어터지게 되었고, 외곽에서 단지 한양대와 외대를
깔 뿐이었다.
경희대는 우연찮게 유출된 동아일보 SK 입사표로 인하여 충격을 받게되고, 당시에 같은 비교군에 있었던
동경홍건단 서열에 의하여 엄청나게 까이고 있었다.
이때 또 하나의 특이한 사항이 시립대의 등장인데 시립대는 인지도가 젬병이었으나, 98년 IMF 크리로 인하여
등록금의 메리트로 인하여 그 입결의 놀라움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전설적인 훌리 한명이 등장하게 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되는데
그가 바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경희 훌리 워렌을 넘어서이다.
그는 당시 동경홍건단으로 묶여 있는 것 자체가 수치라고 생각하여 누구도 생각 못했던 대범한 발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서성한 중경외시 이다.
그가 아무런 근거도 논리도 없이 외친 서성한 중경외시라는 말은 초반에는 웃음거리가 되었으나
점차로 세력을 확보하게 되는데, 그것은 각 대학의 손익을 비교할 때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먼저 서성한 - 당시 서강대는 훌리건 자체가 적었고, 성균의 전방위적 공격에 당황하고 있을 때 였다.
한양은 서강대는 건드릴 생각조차 없었고, 오직 외대와 중앙대를 떨어뜨리고 싶을 때 였고
성균관대를 어떻게 한번 공격하고 싶은 시절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성한이라는 새로운 서열은 성균관대는 서강대와 묶이는 메리트로 인하여
성균 훌리들의 만족감을 사게되었지만, 한양대가 엮이는 것에 살짜쿵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매우 만족스러운 서열이었다. 한양대는 외대 중대를 아예 밑으로 떨구는 복덩어리 서열을
가지게 됨으로써 만족감을 표시하게 되며 전폭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그리고 중경외시 - 중경외시의 손익은 비교할 것도 없이 외대의 엄청난 손해로 마감되게 된다. 그 이전의 입결에서도
항상 외대에 비해 부족했고, 특히 언사외 전형으로 인하여 서열 논쟁에서 밀리고 있던 그 시절에
중앙대를 중경외시의 첫머리로 놓는 서열은 그야말로 중앙대에게 축복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중앙대는 너무나 만족스러워 하며 이 서열을 그대로 외치기 시작했고
경희대는 말 할 것도 없이 좋아 했다.
특이한 것은 시립대인데, 시립대는 이 당시 엄청난 인풋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족한 인지도 덕분에
이름 자체가 인구에 회자되지 않은 관계로, 어찌되었든 간에 중경외시로 엮이면서 인지도를
올리는 것 자체로 떨떠름하지만 이 서열을 받아들이게 된다.
끝까지 거부했던건 당연히 외대겠지만 그들에게는 쪽수가 부족했으며, 특히 중앙대 경희대 뿐만이 아닌
성균관, 한양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이 서열은 그대로 인식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