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쯤 남편과 다퉜습니다.
아니. 다퉜다기 보다는 남편이 화를 낸건가.. 암튼 집안에 큰 소리가 났죠.
살림 부수고, 애들 울고. 남편 집 나가고. 저는 남아서 애들 달래고 집 치우고.
그 주말이 지난 후, 월요일 아침이 밝자마자 큰애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법원에 가서 합의이혼 서류를 잔뜩 챙겨왔어요.
늘 이런식이거든요. 결혼 7년 째.
남편은 화내고, 저는 정리하고, 남편이 사과하고, 저는 지쳐서 그냥 넘어가고.
특별한 사유랄 것도 없어요. 결혼하면서부터 쌓인 서로간의 자잘한 감정이랄까..
그런 것들이 깊이 자리잡고 있어서 사소한 부딪힘에도 큰 소리가 나는거에요.
남편은 저에게 끝없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본인도 인정했어요.
저희 친정이 더 잘 살고, 저희 친정 식구들이 저 공부를 많이 했고, 사회적으로 더 잘 나간다.. 그게 가장 커요.
제가 뭐라 말하지 않고 그걸 내세워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남편은 그저 그게 싫은겁니다. 저더러 어쩌라구요..
그래서 제가 뭐라도 잠깐 본인에게 소홀히 대하면 그 모든 실타래를 끊임없이 꼬고 또 꼬고 엉키게 만들어요.
제가 자기 밥을 좀 부실하게 차려줘도 자기를 무시하는 거고.
애가 아파서 밤새 제가 잠을 못 자고 간호하면 자기 아플 땐 그렇게 안 해줬음에 분노하고.. 그렇죠.
아이들도 커 가고 눈치도 있고 저도 점점 더 우울해져 갑니다.
그래서 이참에, 그래 끝내자, 하고 법원에 가서 서류를 챙겨왔어요.
그런데 남편에게 보란듯이, 이거 작성해달라.. 그 말을 못하고 일주일 째 제 서랍에 모셔놓고 있네요.
하루, 또 하루, 제 마음을 진정시키며 생각해 봤어요. 이게 옳은걸까, 이게 최선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제 마음이 차분해 졌는데도, 이게 가장 옳구나. 최선은 아니지만 이렇게 사는 최악은 피하겠구나..
그 동안 남편은 저를 피해요. 제가 무슨 무서운 말을 할까봐 피하는거죠.
이런 일이 있을 때 마다 저희 부부는,
아침에 제가 먼저 일어납니다. 아이들이 새벽같이 깨거든요.
애들 아침 먹이고, 큰애 챙겨서 어린이집 보내고, 작은애 문화센터라도 다녀오면 오전 11시 쯤..
그렇게 제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그제서야 남편은 일어나서 씻고 나가요. 원래 오후에 일을 시작하거든요.
평소같으면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가지만 제가 들어오니 남편은 나가는겁니다.
그러면 저는 낮동안 아이들과 평소처럼 지내요. 작은애 먹이고 재우고, 큰애 오면 같이 놀고
저녁이 되면 애들 씻기고 재우고.. 제 시간이 찾아와요. 남편은 밤 11시쯤 들어옵니다.
그러면 저는 안방으로 들어가요. 남편은 그 시간부터 새벽녘까지 거실이며 부엌을 오가면서 자기 시간을 보내구요.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또 제가 먼저 일어나고..
그야말로 한 공간에서 숨을 쉬다 뿐.. 서로 안보이는거 처럼 그렇게 지내는 것도 점점 더 이골이 나네요.
오늘 밤에는 남편에게 서류를 내밀겁니다. 나는 많이 생각했고, 더 좋게 변할 것도 없고. 이 길 뿐인것 같다구요..
오늘도 남편은 제가 오전에 나갔다 들어오자 그대로 바람처럼 빠져나갔어요.
어떤 사과도 어떤 액션도 없이 그저 제 기분이 풀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테지요.
저도 이 길의 끝에 뭐가 있을지 암담하고 두렵지만.. 이대로 사는건 정말 아닌거 같아.. 결정을 내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