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의 진실2 - 쌀, 그 서러운 투쟁의 아이콘(2)
맹렬한 더위입니다. 작년에는 여름 내내 비가 너무 와서 애를 태웠는데 올해는 비를 볼 수 없어 애를 태웁니다. 혹독한 가뭄 끝에, 장마라 하기에도 뭣한 짧은 우기가 끝나자 폭염이 온 나라를 푹푹 쪄내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사람이지만 거두는 것은 하늘이라는 이치가 새삼 다시 새겨지는 날들입니다.
지난 번에 중단한 쌀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요?
제3라운드는 녹색혁명에서 시작됩니다. 녹색혁명이요? 참 말은 잘 만듭니다. 마치 녹색으로 출렁거리는 풍요로운 들판을 떠올리게 만들지요. 하지만 본질을 그대로 반영하여 정직하게 이름 짓자면 녹색이 아니라 ‘흑색혁명’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바로 먹을거리에 석유를 쳐바르는 짓이었으니까요.
녹색혁명이란 1944년 말 록펠러 재단의 기획으로 준비되어, 6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간 식량생산의 획기적 증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 기간 동안 세계적 범위에서 식량생산은 분명히 증가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전후 늘어난 세계인구를 먹여살렸다고 아직도 착각하고 있지요. 그러나 4~5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수많은 사례와 연구들에 의해 녹색혁명의 본질이 드러났습니다. 그에 따르면 녹색혁명이란 결국 식량생산을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하게 만든 화학혁명이고, 세계농업을 소수의 거대기업이 장악하게 만들어 전통적인 농부들을 땅에서 몰아내고 생물다양성을 돌이킬 수 없게 훼손시킨 일련의 파괴적인 과정이었습니다. 녹색혁명으로 천문학적인 이득을 챙긴 것도 농부들이 아니라 석유메이저들이었다는 사실이 그 내막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녹색혁명은 스탠더드오일과 같은 석유산업체와 몬산토, 듀폰, 다우케미컬과 같은 화학산업체, 그리고 카길, 콘티넨탈그레인, 번지, ADM과 같은 거대곡물무역산업체의 합작품으로서 세계 식량생산을 독점 통제하기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녹색혁명을 떠받치는 것은 세 개의 축이었습니다. 비료와 농약, 제초제로 이름붙여진 화학약품, 대형 농기계와 대규모 관개시설, 그리고 특수하게 교배된 교잡종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화학약품과 기계화라는 두 개의 축이 남겨놓은 것은 석유에 종속된 단일경작의 확산과 토양의 황폐화, 화학물질로 오염된 식품, 소농의 파탄과 이농으로 인한 도시의 슬럼화, 그리고 농민들의 농약중독과 빚에 몰린 자살입니다. 전 세계에서 벌어졌던 일이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녹색혁명은 세계적인 기아문제 해결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수확량의 증가는 얼마 가지 못해 끝나고 굶주림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굶주림의 원인은 수확량의 부족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정치구조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한마디로 사기를 친 겁니다.
자 그렇다면 나머지 한 개의 축, ‘특수하게 교배된 교잡종자’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서부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실상 앞의 두 가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치명적인 일들이 ‘종자’를 둘러싸고 진행되었습니다.
교잡종자란 흔히 F1종자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1930년대 중반 미국에서 경이로운 수확량의 중가를 가져온 교배종 옥수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잡종강세를 목표로 근친교배, 복교배 등 복잡한 육종과정을 거쳐 탄생하였지요. 이것은 수 천년 동안 농부들이 작물을 키우며 정보를 교환하고 종자를 나누면서 수행해왔던 품종개량과는 달리 실습장에서 과학자, 식물학자라 불리는 육종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종자들이 갖고있는 공통적인 특성은 재파종이 안된다는 것, 그리고 각종 화학약품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농부들은 씨앗을 뿌리고 거두면 가장 좋은 열매들을 다음 해에 파종할 종자로 갈무리했습니다. 교잡종자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단 한 해만 다수확을 안겨주고 다음 해에는 엉망으로 나오는 것이지요. 녹색혁명과 더불어 퍼져나간 이러한 종자들로 인해 이제 농부들에게 씨앗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씨앗을 잃어버린 농부가 된 것이지요.
이러한 교잡의 특성은 의도된 것입니다. 교잡의 목표는 ‘종자의 소유와 상품화’입니다. 교잡종자는 다수확성, 내병충해성, 이라는 유혹적인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지만 그 이면에는 ‘재생불가능성’, ‘화학약품의존성’이라는 상품화의 목표가 관철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해에 항상 재생된다는 자연의 경이로운 선물을 씨앗에서 제거해버린 것이 바로 교잡종자인 것입니다. 씨앗에 대한 난폭한 침략이지요. 바로 그 종자들이 화학약품, 대형농기계들과 함께 패키지로 전 세계에 퍼져나간 것이 녹색혁명입니다.
하지만 교잡종자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천 년간 농부들의 땀이 배어있는 세계 각 지역의 토착종자들이 없다면 결코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교잡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모체 종자들을 항상 필요로 하고, 다양한 특질을 가진 토착종자들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한 과정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일찍부터 알게 된 미국정부는 1956년 국내에 국립종자저장실험실(NSSL)을 설립하여 전 세계 생식질을 수집함과 동시에 60년대에 록펠러 재단과 미국정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로 구성된 기부 컨소시엄의 자금으로 제3세계에 ‘국제농업연구센터’들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녹색혁명을 세계적 차원에서 확대 유지할 기관으로, 록펠러와 포드 재단의 주도하에 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CGIAR) 을 마침내 창립합니다.
이들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정녕 세상에 알려진 대로 세계 기아문제 해결을 위하여 농업을 과학화하고 기적의 품종들을 헌신적으로 만들어내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등불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의 말일뿐입니다. 사기는 항상 미사여구를 동반하지요.
국제농업연구센터들은 이중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들의 간판에는 인류를 위한 다수확 품종 연구라는 녹색글자가 선명하지만, 간판 밑에서는 제3세계 농업을 자본주의화하고 제3세계 식물유전자원들을 효율적으로 추출하여 북미, 유럽, 일본의 유전자은행으로 이전시키는 해적질에 몰두합니다. 그래서 이 CGIAR의 연구센터들이 자리잡은 곳은 풍부한 유전자원들을 갖고 있는 바빌로프 유전다양성의 중심지들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생긴 기관이 국제옥수수밀 개량센터(CIMMYT)로 멕시코에, 그 다음이 국제벼연구소(IRRI)로 필리핀에, 그리고 국제열대농업센터(CIAT)-콜롬비아, 국제열대농업연구소(IITA)-나이지리아, 국제감자센터(CIP)-페루, 국제반건조열대작물연구소(ICRISAT)-인도, 국제건조지역농업연구센터(ICARDA)-시리아, 서아프리카벼개발연합(WARDA)-라이베리아 가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식민지에서 제국주의 열강들로 식물유전정보를 가져오는 파이프 역할을 했던 18~19세기 식물원들의 뒤를 이은 오늘날의 계승자들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제3세계의 식물유전정보를 수집하여 이를 산업화된 자본가들에게 전달해주는 녹색혁명의 제도적 과학적 네트워크였던 것이지요. 여기서 저는 필리핀의 국제벼연구소(IRRI)에 주목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관입니다. 우리 쌀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기관이지요.
이제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봅시다. 우리나라에서 녹색혁명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네 바로 쌀입니다. 전편에서 말했듯이 항상 부족했던 쌀을 자급하게 된 것이 바로 녹색혁명의 과정을 통해서입니다. 1976년 이룩한 쌀자급은 박정희 정부 최고의 치적으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지요. 중년 이상의 세대들은 ‘정부미’라는 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바로 기적의 다수확품종이라고 일컬어졌던 통일벼에서 나온 쌀이지요. 사람들이 기피하는 ‘밥맛없는 쌀’의 상징으로, 나쁜 품질을 양으로 때우려는 물건이나 사람의 대명사로 패러디되었던 쌀입니다.
통일벼가 만들어진 곳이 바로 필리핀의 국제벼연구소입니다. 통일벼는 다수확일 뿐 병충해에 약하고 볏짚이 짧고 맥살이 없어 새끼나 가마니를 짤 수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맛이 없으니 농민들이 기피한 건 당연하지요. 바로 교잡종자가 갖는 특성을 고스란히 가진 품종이었습니다. 농민들이 기피하는 통일벼 재배면적을 늘리기 위해 박정희정부는 강압적으로 농민들을 몰아부쳐 76년 쌀자급을 이룩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세 개의 함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76년의 쌀자급은 교잡종자의 개발과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증가, 그리고 거의 폭력적인 절미정책과 쌀의 천시 정책이 맞물려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석유에 의존하는 농사의 본격적인 시작이었지요.
두 번째는 그것이 식량자급률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입니다. 쌀자급이란 밀 우상화와 소비확대에 맞물린 것이었고, 밀수입 증가에 따라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쌀자급을 이룬 가운데서도 계속 줄어들어 60년대 94%에 이르던 것이 70년대 80%, 80년대 40%. 90년대 30%를 하향 돌파하여 지금은 25%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요.
마지막은 통일벼가 종자종속의 시작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박정희정부가 반강제적으로 정착시킨 관행으로서, 종자를 스스로 보관하고 자유롭게 교환해왔던 농부들의 권리는 사라지고 해마다 새로 종자를 사서 쓰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오늘날 볍씨를 보관하지 않고 해마다 농촌지도소에서 추천하는 품종의 벼를 구입하여 파종합니다. 또한 가치없는 쭉정이 교잡종자를 얻는 대가로 필리핀 국제벼연구소에 갖다바친 우리의 금싸래기같은 토종종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것이 결국 우리 농부들을 파산으로 내모는 미국쌀이 되어 돌아오고있는 건 아닐까요?
결국 통일벼로 상징되는 쌀자급이란 허울좋은 사기에 불과했습니다. 쌀자급이 아니라 종자종속이었고, 수 천년 쌀을 중심으로 이룩되어온 떡과 술 등 우리 고유의 음식들의 종말이었으며, 쌀을 코에 걸고 밀, 콩 등 식량이 되어줄 우리곡식생산을 파탄시켜버린 파렴치한 행위였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 WTO를 거치면서 위축되어온 우리 농업에서 마지막까지 지켜왔던 쌀도 이제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미 쌀개방 유예에 따른 의무수입제로 가공용뿐 아니라 주곡용 쌀까지 엄청난 양이 밀려들어와 풀리고 있습니다. 전량 수매제도였던 추곡수매제는 선택 수매방식의 공공비축제로 전환되고, 정부는 쌀농사를 폐지하라고 농부들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미디어들마다 우리 농민들은 쌀 하나에 너무 목을 매달고 있다는 둥, 생산품목을 다변화하고 경쟁력있는 고부가가치 농산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둥 떠들어대지만 쌀농사는 식량자급을 애초에 포기한 정부에 의해 끊임없이 확장되는 값싼 수입농산물에 밀리고 밀리면서 마지막까지 잡고있었던 지푸라기였을 뿐이지요. FTA는 몇십년에 걸쳐 진행된 일련의 농업파탄정책의 화룡점정입니다.
그렇다고 농부들이 씨앗을 뿌리는 걸 포기할까요? 아닙니다. 진정한 농부는 그 어떤 순간에도 씨뿌리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투쟁의 제3라운드는 녹색혁명에서 비롯된 모든 잘못들을 바로잡을 오염되지 않은 쌀을 지키기 위한 투쟁, 그리고 우리 종자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갑니다.
오염되지 않은 쌀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유기농업의 태동과 확산입니다. 유기농업은 녹색혁명이 정착시킨 관행농업의 폐해에 대한 철학적 생태적 반성에서 출발했습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은 작물을 키우는 사람을 병들게 하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건강을 좀먹고, 끝내는 토양의 생산력을 파괴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석유에 의존한 농사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진실을 자각한 농부들, 투입물에 의존하는 고비용 농사의 결과가 빈곤의 대물림이라는 것을 깨우친 농부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 유기농입니다. 그것은 아주 소수에서 시작된 어렵고 험난한 길이었지만 느닷없이 불어닥친 웰빙열풍에 힘입어 이제는 독자적인 시장을 가질 만큼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유기농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누적되어온 유기농의 문제점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바로 우리의 자주재배, 자연재배입니다.
우리 종자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길은 더욱 험난합니다. 농부들에 의해 이루어져왔던 품종개량은 막을 내리고 자유로운 씨앗의 교환도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녹색혁명을 통하여 종자교환은 종자산업이 되었고, 세계 종자산업은 농식품산업체계를 통째로 장악한 몇 안되는 거대 기업들에 의해 독점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규모의 4대 종묘회사도 지난 97년 IMF사태 때 이 거대기업군으로 이미 넘어갔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공짜로 수집한 토착종자들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교잡종자들이 그들의 소유가 되었고, 유전자조작이라는 독점의 마지막 완성을 향하여 박차를 가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쌀이 거센 파고 위에 뜬 일엽편주가 되면서 오히려 쌀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합니다. 소위 말하는 기능성 쌀입니다. 유색미, 버섯쌀, 씻어나온 쌀, 영양강화 쌀, 식이섬유강화 쌀, 키크는 쌀 등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런 쌀들은, 쌀 수입자유화에 직면하여 위기에 처한 국내 쌀산업을 구해내기 위한 경쟁력있는 상품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연구비를 투입하여 만들어집니다. 주로 농촌진흥청에서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그 외에 대학연구소, ‘바이오’와 ‘테크’자가 붙은 회사들에서도 개발됩니다. 그러나 과연 이 쌀들이 우리 쌀을, 우리 농업을 구해낼 수 있을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이 기능성이라 이름붙여진 쌀에는 두 가지의 함정이 놓여있습니다. 아주 깊은, 돌이킬 수 없는 함정이지요.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제가 무슨 함정전문탐사대원 같습니다. 아무튼 하나는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방식입니다. 그 요술 같은 기능들은 어떻게 쌀에 달라붙는 것일까요? 그러한 기능들을 부가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육종(품종개량), 두 번째는 특수한 재배농법, 세 번째는 코팅입니다. 말은 그럴 듯하고 결과도 있는 것처럼 광고되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결국 화학처리입니다. 화학처리를 통하지 않고 그런 기능을 자연 속에 만들어내는 길은 없지요. 우리는 먹을거리에 대한 모든 화학처리를 반대해야 합니다. 화학처리가 사람의 몸에 건강을 가져오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어떠한 장미빛 유혹에도 넘어가지 마시고 잡숫지 마세요.
하지만 제가 심각하게 주목하는 방법은 첫 번째, 육종에 의한 기능성 부가입니다. 이것은 또 세가지로 나눠지는데 전통적인 선발육종과 교잡에 의한 육종 그리고 유전자조작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함정이 나타납니다. 바로 기능성이라는 명목 아래 유전자조작이라는 치명적인 육종방법이 슬그머니 올라타는 것입니다. 기능성이라는 말에 가리워 그 본질을 망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일반적인 사람들은 특정 기능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놈 신통하네’ 할 뿐이지 ‘어떻게 만들어졌나’ 하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합니다.
유전자조작만이 아니라 교잡에 의한 육종도 만만치 않습니다. 요즘의 교잡은 원하는 특정성분이나 기능을 빠른 시간에 얻기 위해 방사선처리와 화학처리를 통해 돌연변이를 만들어냅니다. 방사선과 화학약품을 이용하여 식물 전체 수준에서 유전자 변형을 얻어내는 것이지요. 분자수준에서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삽입, 제거하고 이종간 이동을 실행하는 유전자조작과는 다르지만, 이것 역시 충격적인 방법을 통해 자연에서 얻어질 수 없는 형질을 만들어내는 방법입니다. 일본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도 재배면적이 확대되고 있고, 심지어는 유기농 농가에서까지 재배되는 ‘밀키퀸’이라는 쌀종자가 바로 이런 방법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맛있다고 아무리 꼬셔도 넘어가지 마시고 잡숫지 마세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유전자조작 작물의 상업재배가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연구가 막바지에 와있고 민간기업과 합작하여 유전자 조작 쌀의 상업재배를 합법화하려는 시도가 일반 사람들은 모르게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능성이라고 이름붙여진 쌀들이 결국은 유전자조작 작물을 통해 세계농업을 장악 독점하려는 거대기업들이 거침없이 질주할 8차선 도로를 닦고있는 것이지요. 참 농부들의 손에서 종자를 빼앗아 자신들의 소유로 하기 위해 벼라별 짓을 다 합니다. 과학이 발전하긴 했나 봅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과학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 모든 일들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왜 이렇게 멋져 보이는 일들에 반대하고 우리 손에서 우리종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애쓰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답하자면 그것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교잡이나 유전자조작의 궁극적 목표는 기아의 해결도, 건강의 증진도, 그들이 내세우는 모든 달콤한 주장들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라면 할 일이 따로 있지요. 그들의 목표는 종자의 소유입니다. 현대인이 똑똑하다고들 하지만 그 똑똑한 현대인들을 노예로 만드는 일은 아주아주 간단합니다. 도시인들에게는 빚으로 아파트를 사게 하고, 농부들에게는 씨앗을 사게 하면 됩니다.
씨앗은 참으로 오묘한 것입니다. 기적과도 같은 재생력을 가졌지만 까다롭기도 합니다. 씨앗은 갖고 있다고 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뿌려져야만 지켜집니다. 올해 내 씨앗을 밀어놓고 종자상에서 사온 씨앗을 뿌린다면 내 씨앗은 사라집니다. 다시 만들 방법은? 미안하지만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개마고원의 신기네집 주인장인 정운오 농부는 우리 토종밀을 10년이 넘도록 한 푼 남는 것도 없이 매 해 파종하여 거두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뚝심에 의해 우리 손에 남아있는 보물 같은 종자이지요. 이제 그 토종밀을 나누어 받아 파종하는 농가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씨앗은 그렇게 지켜지는 것입니다.
우리 회원님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씨앗을 지키는 싸움에 동참하는 방법은 아주아주 간단합니다. 먹으면 되지요. 행복한 싸움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우리들의 투쟁은 씨앗을 뿌리고 결실을 거두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싸움입니다. 함께 하면 그 행복함과 아름다움이 바람을 한껏 안은 돛처럼 부풀어나지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쌀이 최고의 쌀입니다. 그것은 수 천년 동안 이어지며 선조들에 의해 검증되고 선택되어진 것이니까요. 강화니 첨가니 조절이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모든 작물들의 안전성은 한 번도 오랜 실험을 거치며 검증된 적이 없습니다. 동물들 대상으로는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것은 자연에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낯선 물건들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쌀을 먹는 일은 자신의 하나뿐인 몸을 실험대상으로 내던지는 일입니다.
쌀은 우리의 운명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실체, 우리가 제 운명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가장 우선적인 종자, 그것이 바로 쌀입니다.
2012년 8월 개마고원에서
//출처 :자주재배 농부들의 둥지 개마고원 원문보기▶ 글쓴이 : 개마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