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사랑 받는다고, 사랑한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너무 행복해서 누군가 시기할까봐 내색도 덜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네. 있었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은 나는데,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침 출근길이었던가.. 아, 너무 평온하고 행복해.. 라고 생각하며 운전을 하던 기억이 나요.
추운 겨울날이었고, 그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녹아내린 도로위로 비취던 햇빛도 기억나요.
그게 신혼 때 였죠. 그 후로 임신을 하고, 애를 낳고 키우고, 또 임신을 하고 낳고 키우고.
그 동안에 남편과 싸우고 울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또 싸우고 울고 화내고 실망하고,
점점 더 강도는 세어져 가서 화내고 싸우고 울고 증오하고. 그렇게 됐네요.
제가 남편한테,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우리 서로의 자리가 필요해서 같이 사는거 아니냐. 지친다. 했더니
남편은 제가 '사랑하느냐?'고 물은 그 자체가 답답하답니다.
자기는 저를 사랑한다.. 그거죠.
제 생각엔 그게 사랑이 아니라 그저 서로한테 익숙한거 같은데요.
익숙한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제가 화내고 욕하고 뒤엎는 남편에게 익숙해져 있지만, 그게 좋진 않거든요.
문득, 나는 이렇게 타성에 젖어 익숙해져 버렸는데, 아직 어린 아이들이 제 아빠의 그런 모습에
이러다가 저처럼 익숙해져서 아빠가 화내고 뒤엎으면 좀 놀래고 울다가 며칠 잠잠했다가
아빠가 또 미안하니 전에없이 잘해줄테고 그 달콤함에 익숙해 질테고..
이렇게 살면 저희 아이들도 저처럼 되어버릴 것 같아서. 지금.. 끝을 생각중이에요.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내가 사랑받는다는 느낌만 있더라도 어떻게 버텨볼텐데.
그 느낌을 기억이라도 한다면 어떻게 참아볼텐데.
그걸 모르겠는거에요.
얼마전에 제 생일이었죠. 친정엄마가 미역국을 끓여다 주셨어요.
제 생일날 아침인데 큰애가 엄마 배고파요~ 소리에 밥을 차리려다가
에이.. 오늘 같은 날은 엄마도 아빠가 차려주는 상 받고싶다.. 그러니까
큰애가 또 조르르 제 아빠한테 달려가서 아빠, 오늘 엄마 생일이니까 아빠가 상 좀 차려 주세요 - 그랬어요.
마지못해 부엌으로 온 남편이 달랑 미역국 한 대접 식탁위에 퍼서 올려놓고,
수저도 밥도 김치도 없이, 달랑 그 한그릇이요. 그래놓고는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요.
저는 그게 그렇게 속상하더라구요. 밥솥에 밥, 냉장고에 김치, 다른 땐 잘도 꺼내면서 보란듯이 국 한그릇.
왜 하필, 다른 날도 아니고 내 생일인거 알면서 그랬을까..
남자들이 원래 그런거 잘 못한다니 넘어가야겠지만
저희 남편이 좀 세심한 편이라 상차리는거, 선물 고르는거 무척 잘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 기억이 남아서 이번 생일날 아침이 더 극명하게 대비되나 봅니다.
그냥 한 예에요. 떠듬떠듬 기억을 떠올리고 싶은데..
되짚어보자니 제 마음이 너무 아프고, 머리가 아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주먹밥 입안에 밀어넣고 그냥 꾹 참아봅니다.
자기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겠죠.
내가 사랑받는다, 나를 소중히 여겨준다, 나를 배려해 주는구나. 하는거요.
저는 그 어떤 느낌도 가질 수가 없네요.
말하자니 너무 길어요.. 그냥 먹먹하고 답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