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선 결혼을 기피한다고 들었습니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발전하고, 마음이 친밀해지는 것처럼 육체가 함께 친밀해지고, 그리고 둘 사이의 사랑의 결실로 아이가 나오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결혼관'으로 비춰지는 것은, 제 안의 보수성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이란 걸 뜨겁게 겪고, 그 사랑의 결실로서 이뤄진 결혼' 을 한 사람으로서의 체험입니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움에 '조건'이라는 것이 끼기 마련입니다. 하긴, 결혼이란 것이 이른바 정략이란 것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역사 또한 오래됐지만, 현대에는 그것이 특수한 계층들 뿐 아니라 모든 일반인에게까지 확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른바 '스펙'을 중요시하게 되는 결혼,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그리고 너도 나를 사랑하기에 이뤄지는 결합이 아니라 '네가 얼마나 가졌느냐' '나는 이만큼 가졌다' 가 기준이 되어 이뤄지는 결혼. 이것이 물론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큰 욕망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근본적인 결혼의 이유라 할 수 있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가족의 틀'로서의 결혼생활을 근본적으로 파괴합니다.
즉, 이렇게 결혼이란 것이 '사랑의 결합'이 아니라 '신분의 결합'수준까지 갈 경우, 결혼이란 생활 자체가 부익부 빈익빈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욕구중 하나인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는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고, 이를 채우기 위해 일어나는 일들이 불륜일 겁니다.
혹시 영화 '건축학 개론'을 보셨습니까? 현대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것이 성공적이지 못하고, 그것이 사랑이 배제된 결합임을 여주인공은 이 독백으로 말합니다. "다 *같아, 다 똑같아 씨바" 결혼이 쉽지 않은 사회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것이 직업간의 소득격차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일을 하던, 생활이 영위되고 재충전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죠.
직업이 그대로 신분을 규정해 버린다면 이른바 쌓은 스펙이 없는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권리도 박탈될 수 밖에 없습니다. 혹여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애정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돈 걱정에 아이도 가질 수 없는 사회가 된다는 것은 ......... 우리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한 것이 고마운 일이었다는 마음이 듭니다.
늘 그렇듯, 가족은 내 삶의 추동력이었고, 내 삶의 방향타였습니다. 가족이라는 돛이 있기에 나는 추동력을 받은 배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힘든 바람이 불 때는 항구가 되어 주었고 닻이 되어 주었습니다. 함께 살면서 부딪힐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누군가가 양보하거나 타협하면서, 내 자신을 조금씩 갈아 나가는 지혜도 배웠습니다.
그 지혜가 나올 수 있는 바탕엔 '우리가 사랑한다'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결혼이 이뤄졌다 해도, 사랑이 충분히 전제되지 않으면 가정은 쉽게 불화를 겪고 깨지게 됩니다. 아마 많은 가정들이 쉽게 깨지는 상황의 뒷면을 살펴보면, 결혼 자체부터 사랑이 아닌 조건으로서 맺어졌다는 상황이 전제되고 있을 겁니다. 그런 결혼 생활에서는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많아도, 서로에게 뭔가 주려고 하진 않습니다. 결혼 생활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지혜를 함께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