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만 읽어보면 여러가지 상황이 담겨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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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박태환 경기 중계에 관하여.
저는 짧게나마 스포츠취재부에서 일했었습니다. 박태환 선수 담당을 한 적도 있었고요. 스포츠취재부 선배들이 마음 속에 담고담은 말이야 훨씬 더 많겠지만 일천한 지식으로 한 번 적어봅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실격당한 선수를 그렇게 바로 붙잡고 인터뷰를 했어야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합니다. 스포츠경기장에는 flash interview 구역과 mixed zone (공동취재구역)이 있습니다. 플래시 인터뷰는 경기장에서 나가는 길목에서 이뤄지고 중계권자가 독점적 인터뷰 권리를 갖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오늘 MBC에서 한 인터뷰가 플래시 인터뷰인 것이지요. 플래시인터뷰가 끝나고 라커로 가는 길에는 믹스트존이 기다립니다. 이 곳에는 취재 ID를 발급받은 기자들이 대기하다가 추가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이는 경기 주최자와 선수, 그리고 중계권자와 기자들 사이에 미리부터 합의가 돼있는 상황입니다.
실격당한 선수를 그렇게 곧바로 붙잡고 인터뷰해야하느냐는 질책이 많았지만 조금만 더 기사를 검색해보면 믹스트존에서도 비슷한 인터뷰가 진행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MBC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들어오는 박태환 선수를 곧바로 다른 기자들도 인터뷰한 것이지요. 왜냐면 경기후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것은 선수와 기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양해가 돼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결국엔 많은 시청자들이 실격당한 박태환 선수의 심경이 어떤지 궁금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인터뷰를 하는 것이 그나마 괜찮은 일인 걸까요? 이는 다음 경기를 위한 훈련과 휴식 스케줄이 짜여져있는 선수의 시간 사이에 불쑥 찾아들어가는 행위입니다. 더구나 매체가 많은 지금 기자들이 따로따로 저런 인터뷰 요청을 한다면 선수의 스케줄은 더욱 엉망이 될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경기 직후 짧은 시간동안 한꺼번에 인터뷰를 함으로써 선수의 컨디션을 보호하고, 관련 뉴스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게 더 나은 방법 아닐까요? 덜 가혹하고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오늘의 사건이 문제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실격당한 선수의 황망함을 다독여주고, 실격에 대해 억울함은 없는지를 묻는 인터뷰가 이뤄졌다면 이렇게 비난을 듣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경기장에 파견된 분도 예상못한 상황에 당황했겠지만 말입니다.
요는 인터뷰라는 행위 자체보다 인터뷰의 내용이 본질이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MBC의 파업이 있습니다.
파업중이던 지난 5월, 전임 보도국장은 기자회에 이런 제안을 합니다. 올림픽 출장을 위해 일부 기자들이 파업을 중단하고 복귀한다면, 직을 걸고 당시 진행중이던 파업대체인력인 시용기자 채용을 최소화하도록 윗선을 설득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내용으로 기자회장 등이 국장과 면담을 했는데, 여기서 전임 보도국장은 다시 슬그머니 말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회사특보에서는 마치 기자회가 먼저 올림픽 인력으로 거래를 요청했으나 회사가 거부했다며 기자회가 집단의 이익을 위해 기자들을 도구로 사용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냐고요? 지난 주 저희가 복귀한 뒤 현장취재인력의 절반가량이 징계를 받거나 보도국 밖으로 인사가 났습니다. 재기넘치는 스포츠PD가 드라마 세트 관리하는 부서로 발령이 났습니다. 수년간 스포츠 경기를 중계해오던 아나운서들은 징계를 받고,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회사를 나간 사람들이 그 자리에 대신 슬그머니 앉았습니다. 런던올림픽에 출장을 간 사람들은 대부분 파업대체인력들이었습니다.
김재철의 MBC는 한쪽에서는 방송정상화를 위해 눈물을 억지로 삼키고 올라온 사람들을 한직으로 쫓아버리고 올림픽같은 대형 스포츠이벤트를 취재한 경험도 없을 뿐더러, 방송기자로서의 취재경험도 충분한지 의문스러운 사람들을 꾸역꾸역 저 현장으로 밀어낸 것입니다. 당황스러운 일이 언제든 일어나는 곳으로 말입니다. 그리고서는 승리의 MBC, 하나되는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오늘 일은 이런 황당한 행태의 균열이 고작 실금 정도 눈에 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대로 본 게 맞다면, 오늘 박태환 선수를 인터뷰한 사람은 그래도 꽤 오랜기간 스포츠채널에서 경기중계를 했던 아나운서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을 이렇게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적는 순간 박태환 선수의 실격이 번복되어 결승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뜨네요. 저는 새벽을 즐겁고도 서글픈 심정으로 기다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