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쉬이 털어놓기 힘든 얘기를 82에 와서 남깁니다.
저희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속마음은 여리고 세심한데 피해의식, 열등감이 심해 사회생활이 원만치 못하시고
(다른 사람들을 다 무시하고 아래로 봄. 본인이 잘 나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질투한다고....)
엄청 이기적이고 성격이 괴팍합니다. 신경질, 짜증을 잘 내는데 그걸 말로 확 푸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을 감정적으로 학대합니다.
수입이나 모아 놓은 재산 생각하지 않고 '내가 이 나이에 이것도 못하냐'면서
혼자 좋은 음식 드시고 다니고 취미생활한다고 기타를 배웁네, 춤을 배웁네, 돈을 펑펑 쓰면서 마이너스 통장 긁고 계세요.
게다가 거의 알콜 중독 수준이라 별 것도 아닌 거에 혼자 화가 나셔서 가족들이 다 자는 밤에도 술을 엄청 마시고
술병이랑 술상을 거실에 난장판으로 해 놓고 집안 물건을 부숴놓고.....
그냥 그냥 모른 척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번에는 아빠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몇 년 전부터 느낌(눈치)은 있었는데
엄마가 알게 되신 모양이에요.
카드내역서도 딴데로 빼돌리고 핸드폰 잠그고 맨날 밖으로 돈다고,
여자도 어디서 그런 걸 사귀었는지 파산 신청을 해서 아빠가 몇백을 빌려줬다가 받았네 어쩌고...
엄마가 악에 받쳐 울면서 그러시는데 저 정말 숨막히고 딱 죽고 싶었어요.
사실 아빠도 아빠지만 저희 엄마도 참 답답해요.
저런 아빠 옆에서 한 평생 재산 모으고 불린 현명한 엄마지만..
무뚝뚝하고 퉁박스럽고 항상 '다른 남편들은 돈도 잘 벌고 인품도 훌륭하다더라'다른 집과 비교하고
사람들 앞에서 아빠 무시하고 흉보고... 엄마도 아빠한테 잘 못한다는 생각 들때도 많았어요.
(저도 성장과정에서 엄마에게 칭찬을 거의 들어본 기억이 없어요. 제가 무슨 얘길 해도 무반응.....
저희 집은 가족들이 서로 말이 없고 남보다 못해요. )
어쨌든 그건 그거지만, 아빠의 외도 사실까지 알게 되니 착잡하고 절망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암으로 병원에서 수술하고 누워있는데도 그 여자 만나러 나가서 병원엔 잘 오지도 않았던 거였어요.
밤이든 낮이든 급하게 차려입고 나가면서 대는 핑계가 제가 듣기에도 엉성하다 느꼈는데
그게 다 그 여자를 만나러 나갔던 거라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아요.
퇴원해서 엄마 집으로 모시고 오자마자 당신 배고프다고 얼른 밥차려 내라고 하던 아빠...
항상 술마시고 누워있고 집안 일은 전혀 돕지도 않고 식사고 빨래고 몸이 부서져라 하는 엄마를 하녀처럼 생각했겠죠.
저도 이제 성인이고 어쨌든 외도는 부부의 일이니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도
부끄러운 줄 아시라고, 당신 손 잡고 결혼식 못 들어가니 나중에 내 결혼식때 올 생각 말라고 난리를 쳐볼까 싶기도 하고
조용하게 내가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씀 드려볼까 싶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해요.
어떤 식으로든 알리면 아빠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 같아요.
아빠는 방귀낀 놈이 성내는 식으로 오히려 펄펄 뛰실 분이거든요.
이런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정말 한스럽습니다. 저에게는 집안,가족 자체가 컴플렉스에요.
저 나름대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눈치보고 말썽 안 부리고 자라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에 들어왔고 소위 전문직이라는 직업을 가질 예정인데요.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굉장히 훌륭한 사람, 여자로 보기도 합니다. 그치만..
저도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 많이 받고 여유있게 자란 좋은 남자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한편으론 그런 남자를 만나더라도 우리집이 볼 거 없는 막장 집안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떡하나 싶구요.
솔직히 남자를 만나도 부모님을 소개시키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인격적으로 본받고 싶은, 최소한 말이 통하는 부모님을 가진 애들은 성격도 구김없이 좋더라구요.
저도 머리크고 부모님을 인간으로 대하게 되면서 이런 저런 면은 절대 본받지 말아야지...
끊임없이 제 자신을 다스리고 항상 단도리하는데
그래도 양쪽 부모님의 면들을 어쩔 수 없이 닮은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절망스러워요.
특히나 아버지의 부정을 알게 되니...정말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 앞으로 행복하게 살고자 치열하게 할 것들..
그냥 다 의미없고 귀찮고 아득하게 느껴져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싶고 그냥 죽고 싶네요.
물론 제일 괴로우실 분은 엄마겠지만요. 속끓이면 엄마만 병든다고, 차분하게 재산 챙길 거 챙기시라고 하고
그저 얘기 들어드릴 수 밖에 없었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빠가 밉고, 아빠에 대한 모든 불만을 저한테 쏟아붓는 엄마도 싫고, 저도 싫고, 다 싫어요.
가족들과 얼굴 마주하기도 싫고 그 어색하고도 무거운 공기를 마주하기 싫어서 친구집을 전전하고 있어요.
정말 그만 살고 싶은 생각 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