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여 건 정도의 사건을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는 약식재판이었거든요.
법을 잘 모르고 억지 부리는 사람에게도, 권위로 누르는 대신,
살짝 띄워 주면서도 그 페이스에 말리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을 하는 거예요. 표정은 무표정인데.
그분은, 판사가 휘두르는 힘에 억울함이나 모멸감을 최대한 느끼지 않게 하는 기술이 무척 뛰어났어요.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멘트를 재치있게 하는데도, 판사의 권위가 실추되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감정 소모나 과열을 막을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재판진행이 참 매끈했고요.
제가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말이 유려하게 안 나오는 스타일인데,
다른 사람 직전에 재판 볼 때 속으로 감탄하고 웃어서
제 사건에 대해 진술할 때는 굉장히 편안하게 논점을 잘 전달할 수 있었고요.
각자 스타일도 다르고, 판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기땜에, 모든 판사에게 그런 유연함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하여간 그 젊은 판사는 저에게 굉장히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전혀 억울함을 남기지 않는 판사로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