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연수는 20년을 넘겼지만 아이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
낮시간은 거의 혼자,밤시간은 묵묵히 둘이 밥을 먹고 각자 티비를 보다 잡니다.
남편은 끊임없이 리모콘을 돌리고 시청 볼륨을 너무 크게 들어서 가물에 콩나듯 같은 프로그램을 보아도
전 방에 있는 티비로 작은 볼륨으로 보아야 해요.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큰소리에 편두통이 오기 쉽거든요.
가끔 금요일이면 남편은 퇴근전에 카톡이나 문자를 보내옵니다.
오늘 영화볼까?
나와서 저녁 먹을래?
주말에 어디 갈까?
그런데 어떤 영화를 볼지 뭘 먹을지 어디를 갈지에 대해선 전적으로 no idea란 겁니다.
제가 폭풍 검색해 고른 영화나 맛집이 마음에 들면 다행이지만 가끔 잘못 고를 때가 있지요.
그래도 복불복이란 생각으로 보는데 옆자리에서 꼭 속삭여요, "넌 재밌냐?"
어디 가자고 해서 어디 가고 싶은데 반문하면 글쎄..?하다가 하루가 다 가고..
사실 전 가고 싶은 곳이 많아요,
화성 성벽길도 걷고 싶고 모란미술관에 사진 찍으러도 가고 싶고 삼청동도 좋아하고
전주한옥마을도 가고 싶어요.
그런데 화성은 출퇴근도 차로 하는 데다 걷는 건 회사에서 점심먹으러 갈 때뿐인 남편에겐 넘사벽이고, 가끔 직원이나 지인들 만나보면 "*장님이 무척 가정적이신가봐요,사모님이랑 맨날 영화보시고 어디 가고 그러신다고~"하는 소리 들을 때 제일 뿌듯해 하는 남편은 어딘가 찍고 온게 중요하지 화성 성벽 흙길을 어떻게 느끼고 걸었는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저는 성벽길을 걷다가도 구석진 돌계단 아래 이끼긴 돌문이 보이면 거길 내려갔다 와봐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조각에도 사진에도 관심없는 남편이 모란미술관 같은 데서 할일이 있을리 만무하고 전 뒷짐지고 기다리는 사람 세워두고 맘편히 촬영거리를 찾아볼 수가 없어요.
삼청동,남편도 가끔 가자고 하는데 차 안 끌고는 절대 안가요.저는 그 비싼 주차료와,차 세워둔 데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동선의 한계로 그 동네 산책이 맘편하지 않고요. 저는 외국여행을 가도 명소보다도 길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선 길 닿는 데까지,갈라진 모든 길들을 거닐어 보는 타입이거든요.
전주한옥마을..남편은 전라도 가고 싶지 않대요(지역감정의 문제지만 이건 좀 배제해 주세요).니네는 전주 이씨면서 왜 진짜 조상님 보러 가자는데 싫으냐고 하면 제 말이 틀리대요.
기차나 고속버스 여행 하는 동안 창밖도 보고 이어폰으로 음악도 듣는 여유 전혀 이해 못하는 남편은 <편하게> 차로 가자고 하고 운전 내내 이웃 차선의 "ㅁㅊㄴ들""저따구로 운전하는 ㅅㄲ"을 쉬임없이 지적하고 중얼댑니다.차라리 창문열고 욕하거나 갓길로 세워 따져라,당신이 백날 궁시렁거려봐야 저런 사람 못 고친다고 말해도 소용 없어요.그저 웬만하면 남편하고 같이 차 탈일을 안 만들지요.. 자동차를 몰고 여행지로 떠나는 시간,옆자리에 자기가 같이 가잔 마누라 있고 요새 차 좋아서 각종 음향 빵빵한데 뭔 불만이 그리 많은가요 길에만 나서면.
남편이 어디 가자고 할 때는 대비해서 혼자 또는 친구들하고 미리미리 가봅니다.차 대기 좋고 조금 걷다가도 바로 돌아올 수 있고 내가 두번째 가도 지겹지 않은 곳으로요.
아,**가고 싶다 하고 말하면 왜 그런지 설명 안해도 딱 캐치해 주는 남편들,혹시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