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중고등 영수학원을 운영합니다.
요즘 시험기간이죠. 동네학원이라 시험 결과 한번에 많은게 좌우되긴 해요.
그런데 시험기간 앞두고 영어선생님 한분이 좀 상식밖의 일을 하셔서 해고하고
학생들 영어성적은 말할 것도 없이 중간고사에 비해 뚝 떨어졌고,,
새로 강사를 구해야 하는데 강사 구하기도 어렵고.. 심난하긴 하죠.
남편은 수학 강의를 하면서 학원을 운영하는데 내일은 아이들 수학시험날이구요.
학원 경영한지 3년 넘어가지만 여전히 시험기간엔 같이 긴장하고 그래요.
영어를 그렇게 망쳐놨으니 수학이라도 점수를 올려놔야 하는 상황이고 그게 말처럼 쉬운것도 아니고..
네. 그래서 남편이 지금 아주 심경이 심란복잡할거라는거 잘 알아요.
그런데 말이죠.
남편이 오늘은 점심도 안먹고 일찍 나간다면서
나가기 전에 이OO하고 전화나 한번 해야겠다.. 하더니 통화를 시작합니다.
이OO 선생님은 남편이 학원 차리기 전에 근무했던 대형학원에서 같이 일한 동료선생님이자,
남편이 학원 차린 후로 이선생님이 몇달 있다 그 대형학원 그만두면서 남편 학원으로 영입한 선생님이었죠.
2년 쯤 남편 학원에서 수업을 했고 작년에 결혼하면서 그 분 남편 근무처따라서 다른 지방으로 가느라 그만뒀어요.
하지만 간간히 카톡으로 전화로 안부 주고받고 하는건 저도 잘 알고 있고, 제가 아는걸 남편도 알구요.
남편이 그 이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그간 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주우우욱 늘어놓기 시작했어요.
최근에 이선생님이 친정에 왔다가 학원에 들렀었기에 아주 오래전부터의 이야기는 아니고 최근의 이야기들이었죠.
거의 하소연조로 남편이 이야기하고 이선생님은 맞장구 치면서 같이 수다떠는 분위기로 한참 통화를 하더군요.
저요? 저는 옆에서 집치우고 작은애 기저귀 갈고 점심 준비하면서 왔다갔다 하구요.
그런데 남편이 '자기'가 가르칠 땐 애들이 안그랬잖아, '자기'있을 때랑 다르다니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네요.
그러고도 한~참을 전화로 수다떨다 방금 나갔어요. 그새 둘째는 잠들었고.. 둘째 먹이면서 나도 좀 먹을까 했던
점심 밥상은 식어가는데 제 기분이 와구와구 밥이 넘어갈 기분이 아니라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이선생님한테 남편이 무슨 다른 감정이 있다거나 그런건 아니에요.
그저 친한 사람이고 학원일을 같이 했으니 학원 사정도 잘 알고 있어서 대화가 잘 통하겠죠.
그럼 저는요? 저도 큰애 출산 전까지 학원에서 강의를 했었기에 웬만한 파악은 되지요.
남편이 저한테도 다 한 말들이에요. 하지만 제게는 과정과 결과만 전달하는 식으로 말했다면
이선생님한테는 자기 감정도 다 넣어서 더 세세하게 구구절절 잘도 말하더군요.
남편 입장도 이해하고, 이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만,
다 떠나서, 아내인 내가 버젓이 옆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이라고 해도 '자기'라고 운운하며 통화를 그렇게 다정하게 하다니.
입장 바꿔 내가 남편이 한번도 본 적은 없고 이름만 알고 있는 누군가와 그렇게 통화했다면 남편은 어떨까..
다다다다다 따지고 싶었지만 오늘 남편 심경을 잘 알기에 그냥 잘 다녀오라, 뭐라도 먹을 거 좀 챙겨먹으라..
그렇게 출근하는거 보냈네요. 하지만 남겨진 저는 기분.. 나빠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