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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우리 동네 이웃들과 반려견들.

패랭이꽃 조회수 : 1,701
작성일 : 2012-06-26 06:06:59
나는 이방인이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리 말을 잘해도 얼굴이 노란 나는 '중국여자'로 대체로 알려져 있다.
좀 더 확장해서 들어가보면 "검은 색깔의 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중국여자''
좀 더 확장하면 아키타 종 같기도 하고 챠우챠우 종 같기도 한 정체불명 종자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중년 나이의
중국여자로 성질 급하며 이 나라 말을 잘 하는 여자.

단골 야채가게에 가끔은 외상을 지고 다음날 가서 갚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주인이 외상공책을 부산스럽게 찾길래 살짝 들여다보니
'껌정 개를 데리고 다니는 중국여자 얼마 외상''으로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새로 들어온 종업원이 그렇게 적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중국여자가 아니고 한국여자로 이름은 무엇이며
이 껌정 개 이름은 @@라고 정정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또 다시 외상, 이번에는 그 종업원이 부랴 부랴 공책을 뒤지더니 다른 종업원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레이스, 여기 '하치'네 외상값이 어디 적혔지?''

우리 개 이름은 하치가 아닌데 주인은 일본영화 '하치코모노가타리(하치 이야기)'의 미국판 영화를 보고
우리 개가 그 영화에 나왔던 일본 개 아키타 종이라고 여겼던 듯 하다.
우리 개 이름을 여러 번 가르쳐줬지만 한국어라 어려워 기억을 못하고 '하치'로 적었단다.
그러나 진돗개 피를 이어받은 우리 개가 그 소리를 들었더라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왠만한 개들하고는 엉덩이 인사를 하며 친해졌지만 울 곰돌씨가 죽어도 친해지지 못하는 이웃개가 딱 한 마리, 아니
두 마리가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 다음 블럭에 사는 아키타 견이며 다른 하나는 가끔 공원에 출몰하는 로트와일러다.
로트와일러하고는 주인을 보호한답시고 서로 한 판 뜬 적이 있어 서로 그닥 좋은 감정일 수 없는게 당연하지만
아키타하고는 왜 그런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양 주인들은 고개를 흔들고 있다.
이 아키타가 지나가면 아파트 베란다에서 죽일 듯이 으르렁 거리며 짖어 댄다.
둘이 숫놈이면 그것도 아니다. 아키타는 암컷, 곰돌씨는 숫컷이다.
남편은 개들 사이에 한일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며 주인에게서 곰돌씨에게 전해진 민족감정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같은 동네에 오래 살다보니 소소히 이웃이 생겼는데 가장 이해관계가 적으면서도 친근감을 느끼는 이웃이
개로 인해 친구가 된 사이이다. 개로 인해 친해지다보면 인종차별도 없고 언어의 경계도 허물어지며
계층의 경계도 허물어진다. 멋진 해안가 리조트에서 만난 리트리버의 주인들이나 거리 잡종견과 함께 추운 겨울
노숙을 함께 하는 노숙자들하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을. 어느 날은 교회에서 햄버거를 만들었는데
나는 동네 공원에서 줄곧 노숙을 했던 한 노숙자와 그 개가 기억이 났다. 그에게서 자주 공책도 연필도 사곤했는데
그날은 그들과 음식을 나누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그날부터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더 좋은 은신처를 찾은 것일까? 비가 들이치지 않고 바람이 덜 부는 안락한 그들만의 공간을?
노숙자라 해도 그는 나름대로 삶을 관리하고 개를 사랑하고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입성은 깔끔했고 가난하나마 그의 개는 겨울에도 옷을 입었고 다쳤을 때는 병원에서 수술도 시켜줬다.
잘 먹였는지 늘 털이 반질반질했다. 거리에서 노숙하다가 똑 같이 거리에서 노숙하며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개를
만나 동반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 이후 이 둘은 늘 같이 다녔다. 개와 노숙자의 얼굴은 늘 밝고 행복했다.

우리 개와 앙숙사이이지만 로트와일러 견주의 주인에게만큼은 지극한 애교장이인 로트와일러. 
쥔장 얼굴도 험악하기 그지없다. 그 정도 카리스마 있게 생긴만큼 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개를 고른 것인지
그 둘이 지나가면 마치 홍해처럼 길이 갈라진다. 이들도 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루트를 산책한다.
조폭 얼굴의 그와 나는 서로의 산책길을 겹치지 않도록 협의를 해 놓았다.
이 남자는 생긴 것은 험악하지만 개를 키우거나 대하는데 있어서는 그만한 신사가 없다.
몸집이 우리 개의 두 배인 로트와일러가 싸움을 거는 것을 대단히 양아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작은 개들하고 잘 어울리도록 교육 시켜놓았다.

진돗개의 사나운 성깔을 이어받아 개춘기 시절 늘 쌈질을 일삼았던 우리 개를 멋지게 봐준 이웃들에게 감사한다.
IP : 190.48.xxx.108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2.6.26 6:55 AM (108.6.xxx.158)

    아아~~~ 재미있는 글이에요. ^^
    타국에서 '하치'로 불리우는 굴욕을 당한 진돗개 핏줄의 원글님 개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저희 강아지도 희한하게 사이 안 좋은 이웃개가 있고 (한 블럭 밖에서 만나도 알아채고 난리를 쳐요. 가서 한바탕 혼내 줘야 한다고요.) 서로 애틋해 못사는 강아지가 있어요. 이 강아지랑은 철망을 사이에 두고 여명의 눈동자를 찍어요, 아주. 간신히 떼어놓으면 애절한 끼잉~ 끼잉~ 소리를 내죠. ^^
    @@야,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타국에서 건강하게 잘 살아~~~

  • 2. ..
    '12.6.26 7:54 AM (180.64.xxx.231)

    로트바일러도 곰돌이도 막 상상이 되서 너무 이뻐요.
    곰돌이 화이팅.

  • 3. 맞아요.
    '12.6.26 10:38 AM (211.253.xxx.34)

    ㅎㅎㅎㅎ 육성으로 막 웃었어요. 검정개를 데리고 다니는 중국여자 하치네...ㅋㅋㅋㅋ
    희안하게 개들 사이에도 상성이 맞는 애가 있고 안 맞는 애가 있긴 한가봐요.
    우리 아이도 산책 나가면 옆집 개하곤 여명의 눈동자를 한편 찍지만
    앞집 개하곤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듯 개지x을 보여줘요.ㅠ.ㅠ
    덩치도 있는 게(풍산개 암놈) 꼬꼬마들 만나면 친하게 놀자고 얼마나 꼬리를 치는지,
    갸들은 경기를 일으키거나 말거나 저만 좋다고 막 따라가고요.ㅋㅋㅋ
    제가 원래 같은 동네에서도 일년 열두달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내는데
    개를 키운뒤론 개들만 보이면 낯선 사람을 막 따라가서 말을 붙이고 있어요. 허엉..
    얘는 몇 살이에요~?부터 시작해서 사람 얼굴은 모르는데 동네 지나가는 개 얼굴은 다 익히고
    가끔은 제가 제가 아닌 것 같을 때가 있거든요.
    암만 봐도 우리 개가 절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 4. 수필..
    '12.6.26 1:05 PM (218.234.xxx.25)

    킬킬 거리며 웃었어요. 개들 사이에 한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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