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사귀던 남친.
자취를 했었죠.
처음 집에 갔을 때 방에서 바퀴벌레 두마리가 벽을 기어 다니더군요.
화장실에는 다리가 많이 달린 벌레가 기어다녔어요.
아... 하지만 그때는 만난지 얼마 안 됐고 눈에 콩깍지. 참았어요.
그리고 그는 이사를 갔답니다.
제가 더 뛸듯이 기뻐했어요.
좀 더 좋은 집으로 갔거든요. 새 집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깔끔깔끔...
하지만...하지만...
저는 청소기도 사줬어요.
스팀청소기도 사줬어요.
빌라였어요.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한 곳에 놔요. 아파트랑 다르더라구요.
겨울엔 괜찮아요. 여름엔 초파리가 생겨요.
그래서 음식물쓰레기건조기를 사줬어요.
쓰는거 같더니만 안 써요.
초파리는 약과예요.
음식물쓰레기 봉투에서 구더기가 생겨 기어나와 싱크대 위를 돌아다니고
옆에 세워놓은 도마 위를 기어 올라가요.
화장실은 이사하고 단 한번도 청소하지 않아 물때부터 장난이 아니예요.
머리카락이며 모인거 갈 때마다 치워주고... 주방도 그렇고...
어느날은 도저히 안 되겠더라구요.
락스랑 세제 사오라해서 집에서도 안 하던 청소를 했습니다. 웩웩거리며 주방과 화장실 청소했죠.
해놓고 나니 원래 이런 색깔이였냐며 신기하다며... 좋아했던 남친.
구더기가 기어다니던 도마를 꺼내 수박을 썰어주겠다던 남친... 덕분에
뭘 먹어도 식중독 따위는 걸리지 않는 면역은 생겼네요. 그건 진짠거 같애요.
같은 음식 먹고 다른 사람들 토하는데 저만 멀쩡한 적 있었어요.
냉장고에서 이주일씩 묵힌 김치찌개도 먹고 그랬으니까요.
가끔 그 베란다가 생각납니다.
그 집주인은 얼마나 놀랐을 건인가...
집은 과연 빠졌을까...
아우... 그 현관문을 열었을 때 퀘퀘한 냄새.
아, 그것을 모두 견뎌냈던 사랑의 힘.
파워 오브 러브.
이제 다시는 그러지 못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