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청엄마와 둘이서 넝쿨당을 보다가 한 이야기 인데요.
윤여정이 휴가 가면서 시어머니 식사에 대해 계속 언급하고 큰딸은 외출하기 전에 밥상 차리고 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엄마, 저 할머니 거동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밥통에 밥 있겠다 냉장고에 반찬 있겠다 자기 손으로 한끼 차려먹으면
안되는거야? 며느리한테 30년 넘게 세끼 봉양 모두 받으면서 살았을 텐데 지금이야 80넘은 노인이지만
며느리 첨 봤을때는 50도 안됐을꺼아냐.. 그러면 완전 팽팽했겠구만.. 며늘 넘 부려먹는다.."
근데 엄마 말씀이 "느이 할머니는 더 심했어. 근데 그때는 다 그러고 사는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쉰살이 완전 젊은
나이인데 " 하시더군요.
친정엄마 올해 환갑입니다.
스물네살에 칠남매 장남에게 시집오셔더랬죠. 결혼할 때 막내고모가 국민학교 5학년.
못사는 집도 아니었고 일하는 식모도 있었지만 엄마가 결혼하고 들어가니 식모는 내보냈다고..T_T
고모 4명, 삼촌 2명, 지방에서 올라온 사촌에, 삼촌 친구(형편이 어려운 친구였는데 같이 살고 학비도 다 대주셨다네요.)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에 국민학생까지 줄줄줄.
그 많은 식구 살림을 엄마 혼자 다 하셨데요. 울 할머니는 손하나 까딱 안하심..
그때 할머니 나이 48세... 헉!
아침에 일어나 도시락 10개도 넘게 싸고 아침상 차리고 치우고 빨래하고 점심상 차리고 청소하고 장봐와서 저녁상 차리고
치우고.. 끝도 없이 일만 하신거죠.
그러다 엄마가 절 임신하고 외할머니가 임신한 딸 보러 오셨는데 고생을 바가지로 하고 있는걸 보고 너무 속상하셔서
집에 가자 하시더래요. 외갓집에 가서 잠 푹자고 저녁까지 거하게 먹고 밤늦게 돌아왔는데 집은 완전 초토화.
뭘 해먹었는지 주방은 엉망이고 밥상엔 반찬 뚜껑도 열려진 채로 그대로.. 빨래는 산더미.. 울면서 다 치웠다고..
밥상에 관련된 또 한가지 일화.
제 남동생이 돌 무렵이었는데 아기가 감기기운이 있고 너무 울고 보채서 방에 데리고 들어가 재운다는게 엄마도 같이
깜박 잠이 들었데요. 그러다 와장창 하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 나와보니 할머니가 씩씩거리며 서있고 마당에 밥상과
그릇들이 뒹굴고 있었다네요. 점심때가 됐는데 며늘이 낮잠 자느라 상을 안차리니 손수 상을 차리긴 했는데 부아가 나서
그대로 마당에 내던지신거죠.
울엄마 너무 서러워서 남동생 들쳐업고 제 손을 붙잡고 무작정 집을 나오셨데요.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멍하니 앉아서
종점까지 갔는데 거기가 세검정이었다고.. 갈데가 없었다 하시네요. 남의 집 대문앞에서 2시간정도 앉아있다가
그 버스 다시 타고 돌아와서 저녁준비 하셨데요.
반전이야기 하나.
세월이 흘러 셋째 고모가 시집을 갔는데 신랑이 손아래 시누이가 3명 있는 장남이었어요. 할머니가 딸보러 다녀오시더니
엄마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셨데요. 자기 딸 너무 불쌍하다고.. 시집을 잘 못 갔다고 하시면서요.
고모가 부엌에서 종종거리며 식사준비하고 있는데 시어머니나 시누이들이 하나도 않도와 주더라며 망할년들이라고
쌍욕을... 울엄마 고모한테는 미안했지만 속으로 웃으셨다고.
우리집은 제가 유치원 들어가면서 분가했고 지금 할머니는 안계십니다.
사실 전 대가족 속에서 엄청 사랑받고 컸어요. 첫 조카에 같이 살았으니 고모 삼촌들의 사랑은 말도 못했죠.
어렸을때 서로 데리고 나가려고 해서 당구장과 다방을 전전했던 기억이..^^
자라면서도 예쁜 옷, 워크맨, 고가의 청바지, 학용품 등 많은 것을 받았고 아직도 저를 우리공주라고 불러주십니다.
엄마는 항상 말씀하시죠. 넌 받은게 많은 아이이니 잊지말고 고모 삼촌들에게 잘해야 한다고요.
근데 전 그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그들에게 했던 모든 것들이 다시 제게 돌아오는 거겠죠.
지금도 싫다는 소리 잘 못하는 착한 우리엄마.
본인은 스스로를 바보같다 하시지만 아니야 엄마.. 아니야..
난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