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 가끔 볼 수 있는 그 전형적인 .. 평소엔 너무 성실하고 좋은데
술만 마시면 싸우고 사고치고 사람 힘들게 하고 가족들한테 아픈 소리 내뱉고
그러다 술 깨면 또 자괴감에 빠져서 자기가 준 상처까지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아니.. 그런 사람이었어요 .. 라고 믿고 싶네요.
연애 시절엔 거의 두어달에 한번씩 그랬고
(정말 제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처구니 없는게 그게 나쁜건지 그러면 안되는건지
아무런 생각도 없고 판단도 할 수 없어서 제가 결혼까지 했다니까요.. )
결혼하고 애기낳고 보니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되는건데 왜 남편이고 아빠가 된 사람이 저러나 싶어서
남편 그럴 때 마다 저도 같이 뒤집어지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저 혼자 원인 파악하려고 공부도 해 보고..
그나마 결혼하고 나서는 일년에 서너번으로 줄긴 했었지만 어디 그게 횟수가 줄었다고 쉬운가요.
그러다 작년부터는 술 아예 끊고 그런일 잊고 살다가 이번에 술 제대로 마시고 또 도돌이표.. 미치죠.
남편도 미쳐 나도 미쳐 지켜보는 시댁식구들은 지쳐..
그러곤 남편과의 냉전이 한 한달 갔다가 이대로 아무 말 없이 지내면서 시간만 흐르면
이번에도 그저 시간이 지났으니 잊자.. 하면서 그냥 두리뭉실 덮어버리고 다음에 또 이럴거 같아서.
남편한테 딱 하나 부탁이 있는데, 정신과를 가든, 심리 치료사를 찾든 상담 한번 받아봐라.. 했어요.
남편도 늘 자기를 힘들게 했던 부분이라서 생각끝에 그러마고 했고.
건너 건너 아는 분이 모래놀이 치료하시는 분이 계셔서 그 교육센터에 몇번 다니며 상담을 받았어요.
결론은요..
남편의 그런 행동의 원인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칭찬을 받지 못한데 있었답니다.
저희 시댁, 크게 문제 있는 집안은 아니에요.
시어머님이 아들 낳고자 딸 넷 아래로 마흔넘으셔서 저희 남편이 태어났어요. 누님 여러명 아래 외아들이었죠.
지금까지 남편한테 듣기로는 어머니가 늘 아들아들 아들 먼저 챙기셨고,
아버님은 굳이 아들욕심은 없던 분이셨는데 늦둥이 외아들 버릇없이 자랄까봐 좀 엄하셨다고..
그 말만 들었던 제가 보기에는 지금도 똑 같이 아버님은 여전히 엄하시고 어머님이하 누님 네분은
저희 남편을 아직도 서너살 애기 다루듯이 다 뜻 받아주시고 챙기시고 그러세요.
저한테 시집살이 시켰다간 남편 심기 건드릴까봐 저한테고 어찌나 잘 해 주시는지요.
그런데요,
남편이 상담하면서 자기 어린시절 어렵게 떠올리며 우는데..
어려서 부모님께 칭찬 받아본 기억이 없대요. 잘하면 당연한거고 못하면 야단맞고 매 맞고
어머님이 속 마음은 아들아들 하면서 밥 한그릇 있으면 아들만 먼저 챙기시고 그랬지만
그 표현이 겉으로는 다정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거죠.
어린 남편은 그 밥 한그릇 보다는 엄마 손 한번 잡아보고 아빠한테 칭찬 한번 받아보기를 원했던거구요.
그 모든 세월을 어떻게 제가 알겠습니까마는.. 그게 학교생활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쭉 영향이 가서
공부를 잘 해도, 즐거워서 잘 하는게 아니라 야단 안맞으려고 잘 하고,
사회생활도 사업도 정말 성실히 하는데 칭송받으려 그러는게 아니라 비난받지 않으려고 그러는 유형이었답니다.
그래요. 그 시절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 많이들 그러셨죠.
자식 서넛은 기본이고, 삼대가 같이 사는 집도 많았고,
아빠는 가족 부양의 짐이 있으셨고 엄마는 어른들 모시랴 애들 챙기랴 .. 여유가 없었지요.
물론 그럼에도 늘 다정하고 따스운 분들도 계셨겠지만 보통은 내 맘 니가 알겠냐.. 하면서 표현 못하고 그렇게요.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나 교육방송의 부모가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보면
전문가들 조언이 거의 비슷하잖아요. (방법을 잘 골라야 하지만) 칭찬해 주시고 인정해 주세요.. 그러는거.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얻게된 모든 것들이 앞으로 살아갈 때 늘 밑받침이 된다는거.
저도 그런 방송보면서 메모하고 기억하려고 애쓰면서도 실제로 저희 아이들 대할 때도 그게 쉽지만은 않죠.
그런데 저희 남편 상담과정 지켜보고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가니까
정말 어린시절의 육아라는게.. 부모로서의 역할이라는게 중요한거라고 다시 느끼네요.
상담 후에 남편은 무척 홀가분한 모양이에요.
의식적으로 이런 저런 자기 습관들 고치려고 하는 것도 눈에 띄고.
상담사 말씀이 제가 배우자로서 해 줄 것은 조그만 변화도 알아봐주고 칭찬 해 주시라.. 그거였네요.
저도 막 정이 넘쳐 흐르는 사람이 아니라서 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데
이런 저런 상관관계를 생각해보니 저희 아이들을 위해서도 저 역시 그렇게 노력해야 겠구나 싶어요.
어찌보면 사람은 다 같잖아요.
'비난'보단 '칭찬'과 '인정'이 더 고프고 기분 좋은 일이니까요.
남편일은 저도 이제 잊고 같이 한번 노력해 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