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남편이 제게 우울하진 않지? 라고 물었죠.

참모르는구나 조회수 : 1,098
작성일 : 2012-05-25 12:56:46

보름 전에 남편이 술을 마시고 사고를 쳤죠.

사고도 사고지만 입에 대지 않겠다고 아버지 애들까지 들먹이며 약속한 사람이

결국 또 술을 마셨다는 사실에 저는 더 화가 났죠.

 

결혼하고 일년에 서너번 그러다가 술 마시고 그러는데 질려서

제가 난리 난리 친 이후로는 일년에 한번 그래요. 네, 일년에 딱 한번이네요.

큰애만 있을 땐 그래 이렇게 사느니 이혼하자, 쉽게 생각했지만

둘째까지 있으니 그게 생각마저도 쉽지 않아요.

늘 이혼 얘기는 남편이 술김에 먼저 꺼내놓고 정신 차린 후에 제가 이혼하러 가자 하면

잘못했다 다시는 안그러겠다 싹싹 비는 남편이라 제가 이혼하자고 한들 하네마네 실랑이 벌일 힘도 없구요.

 

이번엔.. 화가 나지는 않고 그냥 마냥 슬프더라구요. 지금도 그냥 슬퍼요.

이 상황을 어쩔 수 없다는게 슬프고, 이 상황을 끝내려면 내 마음만 다잡으면 된다는 생각에 슬프고,

천진한 큰애 웃음소리 들으면 슬프고, 제 언니에 치이고 엄마 감정에 치여 제대로 보살핌 못 받는 둘째 생각에 슬프고.

 

남편은 원래 점심먹고 나가서 일하고 밤에 들어오는 사람인데

보름 전에 그렇게 사고를 친 이후로는 아침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네요.

자기 사무실이 있으니 일찍 나가 있다가 밤에 일 끝나면 pc방 가서 게임하고 오던가 그럴거에요

 

저는 아침에 큰애 등원시키고 남편이 일찍 나가고 나면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둘째랑

종일 있다가 큰애 하원하면 애 둘 뒤치닥거리하고 밥 먹이고 씻기고 해 지면 재우고.

애들이 자면 제 시간도 그대로 멈춰버리죠. 캄캄한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있기도 하고

하릴없이 블로깅하면서 다른 사람들 사는 모습 보기도 하고 쓸데없는 인터넷 쇼핑을 하기도 해요.

그러다 12시가 되면 저도 애들 옆에 가서 눕고.. 한시간 쯤 후엔 남편이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들리면 저도 그대로 잠이 들어요.

 

제가 지친만큼 남편도 지쳤겠죠.

남편 말로는 그렇게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는게.

자기가 있으면 제가 불편할테니 그런다고는 하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 그럼으로써 자기도 불편한 순간은 피할 수 있는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남편도 저도 대화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고 지난 일을 잊고.. 하는 그 모든 과정들에 쏟을 기운이 없나봅니다.

 

그랬는데 어젠가 그제 아침엔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자기는 우울하거나 그렇진 않지?' 그러네요.

최근에 직장 동료 한분이 우울증이 있어서 퇴사까지 했거든요. 남편 생각엔 우울증이 그렇게 무서운거구나 싶었나봐요.

 

이 사람아,

우울증이 뭔지나 알고 그렇게 묻니..

우울하다는게 뭔지나 알고 그렇게 묻는거니.

내가 지금 우울하지 않으면 어떤 기분이겠니.

하루 종일 일반 성인과는 말 한마디 섞을 기회도 없이 애들 돌보다 보면 어느새 아무도 없는 밤이 되어 버리는데.

컴컴한 집에서 나 혼자 무슨 생각을 할거같니. 애들 잠자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어떤 눈물을 흘리는거 같니.

아빠 엄마 아이들이 다정하게 유모차밀고 자전거 타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어떤 기분일거 같니.

 

내가 우울하지 않냐고 물었지.

내 우울의 근원이 당신이라는건 모르겠지.

그걸 알면 당신은 또 당신 나름대로 슬퍼지겠지.

 

우리는 그냥 이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이렇게 말 없이 사는게 더 나을지도 몰라.

저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슬픔이 결코 우리 서로에게 닿지는 않겠지.

 

IP : 121.147.xxx.25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2.5.25 1:10 PM (125.61.xxx.2)

    토닥토닥....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코칭이나 단기해결중심 상담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한번 검색해보시고 책도 사서 보시고..하시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글 읽는 나도 슬퍼지네요 . 아기들을 위해서라도 엄마행복을 챙겨주세요

  • 2. ,,,,,,,
    '12.5.25 10:20 PM (180.70.xxx.31)

    무슨수를 써서라도 행복해지세요 아이들을 위해서
    자기만의시간을 갖는게 중요해요
    유모차 밀며지나가는 가족들도 행복하기만 하진 않읅꺼잖아요
    얼굴맞대고 으르렁대느니 마주치지 않는게 좋을수도 있어요
    그시간엔 온전히 내편이 되어줄수있는 사람 찾아 속풀이도 하시구요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구요 남편쯤 내 인생 의 메인자리 내어주지 말구 디저트쯤으로 생각해요
    꼭 내이야기같아서 답글달아요
    지금은 좀 살만해졌지만 어떻게버텼을까 끔찍했던 시절이었죠 꼭 힘내요

  • 3. 에혀~~
    '12.5.26 10:48 AM (110.47.xxx.79)

    술먹는 남편땜에 돌아버린 여자 여기 한사람 추가요~~
    님남편은 일년에 한번
    우리집은 한달에 한번.....ㅠㅠ
    주말부부라서 얼굴안보고 사니 차라리 낫네요.
    님의 심정에 백프로 공감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16276 부추를 넣어 김밥을 싸야 합니다. 부추를 어떡해야 하죠?? (컴.. 20 부추김밥 2012/06/07 6,280
116275 지은지 20-30년된 아파트는 언제 재건축하나요? 5 아파트 2012/06/07 8,020
116274 남자에게 집밥은 어떤 의미일까요? 18 밥이란? 2012/06/07 8,593
116273 대구에 아동심리 상담 센터 추천 부탁 드립니다. 2 대구 2012/06/07 7,057
116272 운전연수 강사 추천 4 겁많은 이 2012/06/07 2,840
116271 왜 초등교사중에 남자선생님은 별로 안계실까요? 16 초등 2012/06/07 9,100
116270 흥선군이 원래 망나니였나요??? 11 흥선군 2012/06/07 2,913
116269 교정 끝난지3년 인데 치아가 약간 틀어졌어요. 6 질문 2012/06/07 2,740
116268 MBC최일구아나운서가 광화문광장에서 1인시위나선이유 7 기린 2012/06/07 1,960
116267 와우~ 인현왕후의남자 감독판dvd 발매 확정됐네요 2 붕도선비흠모.. 2012/06/07 1,277
116266 파마 너무 빠글한데 낼 머리감을까요? 3 셋팅펌 2012/06/07 3,202
116265 아이두 아이두 남자 주인공요... 14 그 사람 별.. 2012/06/07 2,854
116264 국민연금 누가 가져야 맞는가요? 17 ... 2012/06/07 3,446
116263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요.. 7 여쭤볼 일이.. 2012/06/07 1,855
116262 아이폰에서 스케줄 관리하기 좋은 앱 추천해주세요 2 달력 2012/06/07 1,006
116261 밀폐 유리병 추천해주세요. 3 몰까요? 2012/06/07 1,527
116260 올케언니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47 ,. 2012/06/07 13,295
116259 메리츠화재 2 온라인보험 2012/06/07 1,026
116258 이런 조건의 아파트는 사지말라? 4 아파트 2012/06/07 2,451
116257 대기업 아파트 명의만 빌려주고 구입하는거요 3 bibi 2012/06/07 1,501
116256 암튼 디아나하러 가야겠어요. 1 돌이킬수없는.. 2012/06/07 795
116255 가사 도우미 둘이 같이 다니는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2 .... 2012/06/07 2,072
116254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성분들... 1 돌이킬수없는.. 2012/06/07 1,344
116253 에너지라곤 없는 무기력증서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4 .. 2012/06/07 2,648
116252 친정엄마가 딸한테 반찬값 받는 경우도 있나요? 46 2012/06/07 15,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