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시높이라고 합니다.
언니 화용이 세자빈이 되어 궁중에 들어간 지 10년이 넘었다. 동생 부용은
궁에 들어가 빈궁마마를 뵈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동생 부용은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 한 쪽을 비단 가리개로
가렸다. 10년이 지나 얼굴의 상처는 모두 아물었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언제나 심정을 다스렸다. 언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동생 부용은 언니 빈궁마마에게 드릴 물건을 챙겼다. 오라비 홍낙현이 전해
주라는 옥으로 만든 노리개와 청나라에서 들여온 분첩도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모란꽃을 수놓은 비단 손수건도 챙겼다. 궁궐 후원 화계에 모란꽃이 심어져있었다.
왕세자께서 모란꽃을 좋아하신다고 했다. 언니 세자빈이 왕세자를 위해서 정성스럽
게 수놓은 비단 손수건이 될 것이다. 언니는 손재주가 없었다. 동생 부용이 언니를
대신해서 수를 놓은 비단 무명이며 꽃밭에 새가 날아든 그림이며 봄날 정취를 읊은
싯구까지 대신 지어다 언니에게 주었다. 그것을 본 왕세자는 매번 감탄하며 세자빈
의 영민함을 칭찬했다.
이번에는 모란꽃을 수놓은 비단 손수건이었던 것이다. 동생 부용이 몇날며
칠 낮밤을 매달려서 수를 놓았다. 비단 손수건이 왕세자께서 쓰실 물건이라고 생각
하며 수를 놓고 있을라치면 저절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용은
자신이 왕세자를 사모한다는 사실이 발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본인의 목숨은 부지하
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족이 몰살할 것이라 생각했다. 죽어도 드러내지 말아야할
마음이었다.
언니 세자빈은 사가에서 막 들어온 동생이 가져온 물건들을 보고 흐뭇해하
고 있었다. 특히 청나라에서 새로 들여온 장신구며 화장품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
다. 이때 예정에도 없이 갑작스레 왕세자가 빈궁의 처소에 찾아왔다. 동생 부용은
황급히 몸을 피하려했지만 왕세자와 맞닥뜨리고 말았다. 왕세자를 이미 여러 번 뵌
적은 있다. 열 다섯 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으로 들어간 언니의 말동무가 되
기 위해, 때로는 아버님과 오라비의 서찰을 세자빈에게 전하기 위해 동궁 내전에
드나드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왕세자를 지근에서 뵈었었고 몇 마
디 하문에 직접 대답을 올린 적도 있다. 그럴때면 비단 가리개에 덮힌 화상 자국이
다시 불에 데인 듯 뜨거워졌다.
왕세자는 모란꽃이 수놓인 손수건을 보고 감탄하고 세자빈의 솜씨를 칭찬
했다. 세자빈이 동생 부용을 사가로 돌려보내겠다는 데에도 불구하고 왕세자는 세
자빈과 동생 부용을 데리고 궁 후원 화계로 갔다. 직접 화계에 피어있는 모란꽃과
비단에 수놓인 모란꽃을 비교하며 차라리 수놓인 꽃이 더욱 곱지 않느냐며 동생 부
용에게 동의를 구했다. 동생 부용은 고개를 조아리고 말없이 왕세자의 발끝만 바라
보았다.
왕세자 이각의 친모는 하빈 윤씨였다. 하빈 윤씨는 세자를 출산했지
만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희생자로 전락한다.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홍만필(세자빈의 아
버지) 일파는 정적인 윤씨 일파를 제거한다. 그 과정에서 윤씨 일파의 구심점인 하빈
윤씨를 폐위시키고 마침내 사약을 내려 죽음으로 내몬다. 왕세자가 어머니 하빈 윤씨
를 잃은 것은 그의 나이 네 살 때였다.
왕세자는 성인이 되면서 어머니의 죽음이 정치적인 살인이란 것을 알
게되었고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다만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본심을 숨기고 있을
작정이었다.
한편 홍만필은 윤씨 일파를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지만 하빈 윤씨가
낳은 아들이 일곱 살에 왕세자로 책봉이 되는 순간 눈 앞이 깜깜해졌다. 생사를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홍만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딸을 세
자빈으로 들여보내야 했다.
홍만필은 큰 딸 화용보다는 작은 딸 부용을 세자빈으로 들여보낼 계
획이었다. 작은 딸이 큰 딸보다 총명하고 자기 개인보다는 집안을 먼저 생각하는 마
음이 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작은딸이 얼굴에 화상을 입고 어쩔 수 없이 큰
딸이 세자빈으로 들어간다.
왕의 건강이 날로 쇠약해지면서 곧 왕위계승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
었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는 그날 복수할 것이라는 왕세자의 의중을 간파한 홍만필
일파는 왕세자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다.
홍만필의 아들 포도대장 홍낙현(세자빈의 오빠)은 독약인 비상을 구해
서 청나라에서 들여온 화장품 분통에 넣어 세자빈에게 건네준다. 홍낙현은 세자빈에
게 왕세자가 먹을 곶감에 비상을 뿌리라고 지시한다.
세자빈은 왕세자를 독살할 수 없다고 거부한다. 홍낙현은 지금 왕세
자를 죽이지 못하면 홍씨 일족은 모두 죽음을 당할 뿐아니라 세자빈도 목숨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한 세자빈이 된 이후에도 동생 부용의 도움을 받아 마치 자기가
한 것인 냥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아 왕세자의 총애를 받은 일, 왕세자
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인 궁녀는 모두 학대하고 누명 씌워 출궁시킨 일 등이 세상
에 밝혀지면 세자빈은 폐위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협박한다.
결국 세자빈은 홍낙현의 계획대로 왕세자를 독살하기로 한다. 계획이
성공해서 왕세자가 비상이 뿌려진 곶감을 먹고 죽는다면 왕세자가 먹은 곶감을 대령
한 일직 나인 2명만 문초하다가 죽이면 끝나는 일이다. 더욱이 홍만필에 반대하는 세
력은 왕세자 독살의 누명을 씌워 제거하는 일거양득의 계획이다.
드디어 그날밤. 왕세자를 독살하기로 한 그날밤. 홍만필의 집에서 부
용은 홍낙현의 독살 계획을 알게된다. 부용은 왕세자를 살려야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부용은 왕세자를 사랑했다. 한번도 그 아무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말하지 못했
던 부용의 마음이다. 왕세자를 사랑한다는 것 그 자체로도 목숨을 내놓아야할 큰 죄
였다.
부용은 가마에 올라 궁으로 향했다. 사랑하는 왕세자를 죽음으로 내
몰 수는 없었다. 그 순간 궁에서는 주안상이 준비되고 있었다. 왕세자가 좋아하는 큼
직한 곶감 접시가 상 위에 올랐다. 시상이 하얗게 내린 최상품의 곶감이었다.
부용은 가마에서 내려 궁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왕세자가 동궁 내전
에 도착하자 세자빈은 주안상을 내오라고 명한다. 부용은 창덕궁 출입문을 통과해서
동궁으로 달려간다. 숨이 차올라 가슴이 터질 것같다. 왕세자 앞으로 주안상이 들어온
다. 왕세자는 최상품의 곶감을 보고 군침을 흘린다. 세자빈은 손 씻을 물 대야를 들
여오라 한다. 부용은 동궁을 향해 달린다. 왕세자가 손을 씻는 사이 세자빈이 곶감
위에 비상을 뿌린다. 부용이 동궁 출입문을 들어선다. 왕세자가 술 한잔을 마시고 곶
감을 먹으려는 찰나 부용이 동궁 내전에 도착한다. 왕세자는 처제(부용)을 들라한다.
부용은 숨이 턱 끝까지 차서 들어온다. 부용은 전 날 왕세자가 내어
준 수수께끼를 풀어서 답을 말하러 왔다고 둘러댄다. 왕세자는 부용과 수수께끼 맞추
기로 묘한 경쟁심이 있던 터였다. 부용이 수수께끼의 정답을 맞추자 왕세자는 김이
샌다. 부용은 왕세자가 약속한 대로 답을 맞춘 상을 달라고 하며 곶감을 상으로 달라
고 한다. 세자빈은 기겁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왕세자를 독살하는 현장에 있어야하는
세자빈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겨우 가누고 있었던 참이었다. 왕세자는 흔쾌히
곶감을 상으로 내리고 먹어보라고 한다. 부용은 곶감을 먹는다. 세자빈은 동생 부용이
곶감을 먹는 것을 말릴 수 없었다. 부용은 곶감을 얻어 먹고 왕세자에게 마지막 인사
를 하고 언니 화용에게도 마지막 눈인사를 하고 동궁 내전을 나간다.
술에 취한 왕세자가 잠들자 공포에 질린 세자빈 앞으로 일직 나인이
서찰을 가지고 온다. 부용이 쓴 서찰이었다. 세자빈은 서찰을 읽어내려간다.
세자빈은 내관과 나인들에게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후원 부용지
로 향한다. 일직 나인 2명이 세자빈을 따른다.
부용지에 도착한 세자빈은 일직 나인 2명을 멀찌감치 뒤로 물리고 연
못 옆 정자인 부용정 안으로 들어간다. 부용정 안에는 부용이 있었다. 독이 온몸으로
퍼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멀찌감치서 대기하던 일직 나인 2인은 시간이 꽤 오래 경과되어 세자
빈이 있는 부용정 정자 앞으로 다가왔다. 나인 2인은 연못 위에 떠있는 세자빈의 모
습을 보고 기겁하여 허둥지둥 사건을 보고하러 뛰어간다. 부용정 기둥 뒤에 숨어있던
화용(세자빈)은 부용의 옷을 입고 있고 얼굴 가리개도 하고 있다. 부용의 모습을 한
화용은 나인 2인이 뛰어간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다.
목숨을 거두기 직전 부용은 화용이 입고 있던 세자빈 의복을 입고 부
용지 연못으로 들어갔다. 부용지에 얼굴을 묻고 떠있는 것은 세자빈이 아니라 부용이
었던 것이다.
다음날 새벽 부용지에 떠있는 세자빈으로 발견되고 왕세자가 도착해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시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비단으로 주검을 감싼 것은 부
용의 의도를 도와준 결과가 되었다.
결국 부용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사랑하는 왕세자의 생명을 구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