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2학년쯤 되었을까?
여자 아이가 아빠와 함께 가는데, 아빠는 대낮부터 술에 취에 이사람 저사람 붙들고 횡설수설 하고 있었죠.
아이는 그런 아빠 모습이 익숙한 듯이 "아빠 빨리 와~" 하면서 아빠를 부르더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가 "저러니 여자가 못살고 도망갔지." 합니다.
며칠 전 보았던 이 한 장면이 계속 맴돕니다.
지금은 삼십대 중반이 되어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나.
남 부럽지 않은 남편과 두 딸, 탄탄한 직장.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여유있는 삶을 살고 있노라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런 나.
나의 아버지도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밥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진탕 술 마셔서 일을 못하게 되면 며칠 씩 쉬고
그러다 내키면 일하고.
안주도 없는 깡소주.
소줏잔도 아닌 글라스 잔에 가득 부어 마시던 모습.
방에 대자로 누워 전축 볼륨 만땅으로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고선 이웃이 항의하면 되려 화내던 모습.
성질나면 집안 집기들 던지고 내가 초등학교 땐가, 칼을 들고 이웃과 시비 붙던 모습도 생각나고.
술에 취해 누우면 두 남매 무릎 꿇려 앉혀놓고 했던 이야기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자신의 한쪽 팔을 내밀어 딸랑구~ 여기 누워라~ 하면 저는 아빠 팔을 베고 아빠가 잠들 때까지 조용히 누워있곤 했죠.
며칠 전 보았던 그 여자 아이와 술 취한 아빠를 보니
힘들었을텐데도 동생과 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낸 우리 엄마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던가.
엄마에게 그냥 이혼하라고 처음 이야기 했을 때
그래도 아빠는 불쌍한 사람이다.
할머니도 불쌍하다.
늬들도 불쌍하다.
....
....
지난 2월 말에,
올해 환갑을 맞이한 아빠가 간경화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미워하기도 많이 미워했고
나중에는 그냥 체념해버리기도 했지만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마음 속에 덮어 두었던 수많은 감정들이, 비로소 차분히 정리되는 듯 합니다.
그렇게 미운 아빠였어도,
자식들이 장성해서 제 밥벌이 할 때까지 살아주셨던 것도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구나.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며칠전 보았던 그 소녀는 앞으로 어떻게 자라게 될까요.
계속 눈가에 맴돕니다.
내가,
계속 마음 속으로 응원해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