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야 뻔한 이야기죠...
..
새벽 5시 53분,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는데 자꾸 틀립니다.
다른 사람이 집을 잘못 찾아와 그러나 싶어 일어나려는데 문을 쾅쾅 두드리네요.
남편이 자는 문간방을 보니 어제 밤 제가 잠들 때 이부자리 펴 놓은 그대로에요.
오랜만에 아는 사람 좀 만나고 일찍 오겠다던 남편이 밤을 새고 이제 들어오나 봅니다.
저는 네살 두살 애들 뒤치닥거리가 힘들어서 새벽 12시 - 1시 쯤 잠들면 아침까지 꼼짝못하고 잠이 들어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아이들도 깨고 선잠이 깬 둘째아이는 소리에 놀랬는지 막 울어요. 이 녀석.. 어제 돌이었어요.
날은 밝았지만 이른 새벽이라 다른 집도 시끄러울까봐 서둘러 문을 열어주니 남편이 우락부락 열이 받아 들어오네요.
그때는 많이 취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밤새 거나하게 마신게 어느 정도 깨어가는 시간이었겠죠.. 그 시간은..
실은 작년까지 남편이 술만 마시면 큰 사고를 쳤던지라 작년 딱 이맘 때 나냐 술이냐 단판지어 술을 끊은 사람이에요.
아니.. 끊었던 사람이죠. 이런 고민글 올라오면 그 버릇 못고친다 이혼해라.. 댓글 많이 올라와요.
이혼이 쉽나요. 사람을 좀 고쳐서 살아야죠. 그 생각으로 남편 술을 끊게 했고 .. 남편은 정말 한방울 입에 안댔고..
그랬는데 요즘 하는 사업이 잘 되고 사람들을 자주 만나더니 좀 해이해져가는 분위기이긴 했어요.
결국엔 어제 저녁에 만난 분과 이야기 끝에 즐겁게 어울려 얼싸덜싸 주점에 놀러가고 술 마시고
이야기 하다 보니 날은 밝았고.. 암튼 일년만에 마신 술에 얼마나 취했을지.. 상상이 가지요.
그렇게 그냥 들어왔으면 절반은 갔을텐데.
집에 들어오는 입구에서 경비아저씨가 그 전에 누군가가 아파트 문을 부셔둔걸
저희 남편이 휘청휘청 들어오니 남편이 술김에 한 짓이라 생각하고 말을 붙이고 시비를 가리다 싸움이 난거죠.
집에 들어오기 전의 상황은 저는 몰랐고 남편은 흥분해서 제게 설명할 분위기가 아니었고 그런 상황에서,
경비아저씨가 저희 집까지 올라왔어요. 아마 남편이 막말을 했거나 인상을 쓰거나 하고 집으로 오니 따라온 모양입니다.
옷을 갈아입다가 속옷 차림으로 현관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경비아저씨랑 싸우다가
경비아저씨가 그냥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니 남편도 그 차림 그대로 아파트 마당까지 쫓아가서 싸우더군요.
이미 이 새끼 저 새끼 욕이란 욕은 다 나왔고.. 그러다 남편이 집으로 다시 올라와서 옷을 걸치려는데
이번엔 경찰이 와서 문을 두드립니다. 경비아저씨가 기물파손죄로 고소를 했다구요.
남편은 오냐 잘잘못 가리자하고 또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엘리베이터 타고 경찰차 타고 갔어요.
저는 그 사이에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남편이 왜 경찰차 타고 가는지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구요.
잠시 후에 시누이가 전화를 하셔서 알게 됐지요. (애들 고모부가 경찰청에 계셔서 남편이 누님댁에 전화를 했답니다.)
결국은 무혐의가 되서 경찰서에서 나와 집으로 왔고 저는 그 사이에 남편이 밤새 뭘 했는지 알 도리가 없어서
남편 핸드폰이며 지갑이며 살펴보니 웬 주점에서 찍은 영수증에 여자이름 적히고 핸드폰 번호 적혀있고.
그래서 저도 홧김에 그 핸드폰으로 전화해 보니 술집 종업원이네요. 저희 남편이 번호 적어달라 한것도 기억하고
누구랑 몇시 쯤에 와서 몇시 쯤에 갔는지도 기억하구요. 노래주점같은 곳인데 아가씨 불러다 놀았다고 합니다.
저는.................. 남편이 술김에 싸움나서 경찰서 간 것도 다 상관없어요.
남들과 어울려서 술집에 가서 아가씨 불러 놀았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제가 못 참겠는건 남편이 술을 마셨고 취했고 집 비밀번호를 못 누를만큼 정신이 없었다.. 그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다 괜찮다. 당신이 기물 파손한거 아니라고 하면 나는 믿는다,
당신이 설령 죄를 지어 경찰서에 갔든, 교도소에 갔든 당신이 아니라고 하면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약속해 놓고 술을 또 마셨다는건 용서가 안된다, 그게 너무 화난다.
술 마시면서, 아가씨 술 받아마시면서 애들 생각했냐, 어제가 애 돌날이었고 오늘 돌잔친거 생각은 했냐..
제가 아무리 말한들 뒤집을 사안은 아니지만 제 할 말 다 했더니.
남편이 애들 보니까 조용히 해라, 그만해라, 미안하다. 그럽니다.
애들이 보니까요? 애들 자는데 문 두드려 깨운 사람이요,
속옷차림으로 경비 아저씨랑 싸우는 모습 보인 사람이요,
큰애가 경찰한테 문 열어주게 만든 사람이요, 그 와중에 저한테 욕하고 나간 사람이요.
그러면서 못 참겠으면 헤어지잡니다. 레파토리에요. 이런 상황에 늘 먼저 헤어지자 말 꺼내는 사람이죠.
차 옮기러 나간다고 나갔는데 아직 문 앞에 있을 때 큰애가 국을 가지고 장난쳐서 엎질렀어요.
저도 기분이 그런데 애가 그렇게 사고를 치니 제가 꽥 소리를 질렀죠. 애 우는 소리에 남편이 다시 들어오더니
전에 없이 다정한 아빠가 되서 애를 달래고 안아주고 토닥이면서 저한테..
"너는 엄마 자질도 없어. 그냥 집 나가버려" 그럽니다.
내가 누구 좋으라고 집 나가냐, 오냐 말 잘했다, 월요일에 법원가자, 애들은 어쩔까 하니
처음엔 애들 시어머니께 데려다 주겠다고 하더니 나중엔 또 저한테 맘대로 하랍니다.
이렇게 살기 싫으니 저 맘대로 하고 애들 데리고 가려면 가랍니다.
항상 집안 궂은 일 도맡아 하시는 시누님이 통화끝에 어떤 상황인지 알고 저희 집까지 와서
남편 혼내고 저 달래고 한참 우시다가 가시고 남편은 자기 누나한테 미안하다 말하고 수그리더니 다시 잡니다.
저는.. 지겹습니다. 또 술 때문에 이런 죽을 맛을 보는게 지겹습니다.
애들이 무슨 죄냐고, 애들 데리고 어찌해 볼 생각은 못하겠고
그저 나 하나 죽으면 다 끝나리.. 그런 생각만 듭니다.
내가 죽으면 다 어찌되겠지 그 생각만 듭니다.
어제가 작은애 돌이었죠.
오늘은 가족사진을 찍고 시댁식구들 모여 조촐하게 돌잔치 하려고
애기 한복도 예쁜걸로 골라뒀어요. 어제 저녁에 입혀보니 너무 깜찍하고 예쁘더군요.
그 순간들이 다 그냥 지나간 꿈 같고 이 순간은 깨어진 현실같고..
큰애는 아침부터 불안정한 마음일텐데 혼자서 이런 저런 놀잇감 찾아서 놀며 다니네요.
이 모든 인생의 하루하루가 .. 정말 버겁습니다 ..
다 내려놓고 그냥 쉬자.. 그냥 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