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그러지 말자 하면서도 섭섭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우린 지방에서 초등, 중등, 고등 한 학교를 나왔고 대학은 서로 갈렸지만
고향 친구이고 집도 아파트 같은 단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대학을 다니면서도 직장을 다니면서도 명절이나 무슨 날일 때 고향 내려갈 때마다 봐온 친구였어요.
서로 캠퍼스에 놀러도 가고 남친도 소개시켜주고 이십대초반엔 1년에 한두번씩 함께 여행도 가고.
제 결혼식 때 부케를 받은 친구였고.
한마디로 가장 친한 단짝 친구였고 제 십대를 통째로 함께 한 친구였지요.
그럼에도 아무래도 대학과 직장 생활권역이 다르다보니 생활에서 마주하는 친구로는 거리가 생겼어요.
대학 다니면서 저도 대학 단짝이 있었고 그 친구와의 깊이는 이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비슷하게 지냈고.
그런데 지금은 정말 얼굴 보기가 쉽지 않네요.
저희 친정이 옆 지역으로 이사를 가니 명절에도 보기 힘들어졌고
사는 지역이 3시간 넘게 걸리다보니 선뜻 가지지도 않고
이런 시간이 몇 년 흐르니 점점 연락도 뜸해지고 그래요.
오랜만의 전화통화로는 서로 속마음을 알 길도 없고
그래서 제가 1년에 한두번은 손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저는 일상에서 마주하지 못해도 마음 속 의지가 되는 친구가 있다는 게 늘 감사했는데
그 친구가 변한 건지 제가 기대가 큰 건지 마음이 허하네요.
결혼은 제가 먼저했지만 저는 출산계획을 미뤄왔고 이번년도 가을쯤이라고 늘 말했거든요.
친구는 작년말에 결혼했는데 출산 3주차예요.
출산 다다음날 아침 6시에 문자가 왔더라구요.
아기 사진과 함께 출산했노라고.
자다가 정말 깜짝 놀랐던 것이 저는 친구 임신 소식도 모르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속도위반이라지만 그게 요즘 세상에 딱히 흠될 것도 없고 더더욱 우리 사이에.
결혼할 때도 제가 신랑이랑 가서
축의금과 제가 만든 장바구니, 바늘꽂이, 손수건, 머리핀 같은 것들과 손편지를 써서 축하해줬는데.
이후에도 신혼생활 어떠냐 전화도 몇번 했었고 그런데 아무말이 없었다는 게 서운했어요.
내가 미리 알았다면 챙겨줄 수 있는 부분도 있었을 텐데 그냥 이렇게 모르는 사람 소식 듣듯이 갑자기.
어쨌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전화통화하고 문자도 보내고 그렇게 지내다가
근로자의 날에 신랑과 함께 자차로 친구 조리원을 방문했어요.
주위에 물었더니 출산 첫주는 몸이 힘들고 조리원 첫주는 정신없고 조리원 둘째주가 몸도 회복되고 여유있다고
그러고 집에가면 또 정신없으니 조리원 둘째주가 적기라고 해서 그렇게 맞췄어요.
아가방에서 이것저것 선물들 사서 저도 손편지 쓰고 남편도 요가책까지 사서 책 안에 인사글도 적고.
전날 미리 방문한다고 알렸고 오후 시간대 약속 잡아서 갔고 그렇게 2시간 정도 함께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저는 첫 캠퍼스커플과 결혼한 케이스인지라 친구가 저희 신랑과도 친한지라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아가방 쇼핑백을 보더니 그러더라구요,
난 니가 직접 뭘 만들어서 보내줄 줄 알았다고.
직접 올 줄은 생각못했다고.
나도 너 출산 때 조리원으로 찾아갈께 그러면서.
저는 아가도 보고 싶었지만 아가는 면회시간이 있어서 못본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친구 피곤할 것 같아서 그 정도 시간 나누고 먼길을 다시 돌아왔어요.
신랑이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사하고.
다 좋았는데 말이지요,
그 친구는 왜 아직 잘 갔느냐는 문자 한통이 없을까요?
신랑은 근로자의 날에도 쉬는 직업이 아니어서 하루 내서 함께 발걸음한 건데
저녁 무렵 나섰는데 전화는 몰라도
잘 갔는지 혹은 와줘서 고맙다 라든지 딱 그 정도의 멘트가 담긴 문자 한통이면 다 되는데.
저는 어딜 다니든 그게 서로 예의라 생각하고 잘 도착했다 혹은 잘 갔느냐 먼저 챙기는데.
그 친구도 그 정도는 배려할 수 있는 친구인데.
보통 때 같으면 제가 먼저 잘 도착했다 전화를 해주는데
그날은 왠지 섭섭해 먼저 전화를 안했더니 아직도 문자 한통이 없네요.
친구는 저희와 이야기하는 중에도 친구남편과 몇 통의 문자를 주고 받았는데.
신랑이 보기에도 제가 풀이 죽어 보였는지
원래 사람이 다 자기마음 같지 않아, 그러더라구요.
정말 생활에서 부딪치지 않으니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인지.
돌이켜 보면 늘 제가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던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뭔가 만들어 주는 것을 좋아해서 학창시절때부터 그래왔어요.
그 친구에게도 제가 단짝이었던 것은 확실하나 이제 과거형이 되버린 것 같아 서글프네요.
저도 떨어져 있으니 그 친구 마음을 확인받고 싶어하고.
몇 번 물어 본 적이 있어요,
너는 지금도 내가 너의 절친이냐고 농담조로 물으면
대학친구들 있어도 다 너 같지 않다 그러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제 와서 학창시절 친구 자체가 무의미해져버린 게 아닌가 싶은.
저 또한 예전엔 내가 친구에게 어떤 성의를 건넸을 때 그 자체로 기뻤는데
이제는 내가 이런 성의를 보였는데 너는 문자 한통의 마음도 안쓰는구나 싶은.
정말 별 것 아닌데 어제 오늘 계속 마음이 착 가라앉아요.
철 없던 시절 결혼하지 말고 우리 둘 같이 살자 그러던 때가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결혼하고 생활권역이 멀어지고 이렇게 해마다 이만큼씩 밀려나는 기분 서운한 기분.
친구 결혼식 때 저는 신부쪽 가장 뒷줄에서 사진 찍었어요.
친구 신랑을 소개시켜 준 게 대학동창이다보니 그 동창이 부케를 받게됐고
그 옆에는 대학친구들 두셋이 자리잡게 됐고
그 옆자리가 비어 고향친구들이 저를 그 옆에 서라고 했지만 정작 신부는 관심을 쓰지 않아서
그냥 뒷자리에 서다보니 어찌어찌 밀려 맨 뒷자리에 발뒤꿈치를 들고 사진을 찍게 됐네요.
저는 제 결혼식 때 이 친구가 부케를 받는 것은 물론 제 대학단짝 친구도 옆자리로 불러 챙겼거든요.
그렇지만 이런 건 정신없을 때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다 넘어갔는데 이제와서 더불어 서운하네요.
학창시절 단짝친구, 결혼 후 멀리 살아도 그 마음들 그대로 유지되시나요?
제가 마음을 비우는 게 맞을까요?
저는 특별한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마음 속 네편내편인 친구인데 우린 점점 비밀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서로에게.
저 출산 때 안오고 선물도 없고 축하편지만 보내줘도 섭섭하진 않을 것 같은데
참 이놈의 문자 한통이 제 마음을 어지럽게 하네요.
친구야, 지금이라도 문자 한통만 보내주라.
아니면 난 임신출산 다 안알려줄거야 잠수탈거야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