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이 시기에 다시읽어보는 김여진씨의 칼럼

성주참외 조회수 : 694
작성일 : 2012-04-16 13:18:41
나는 모른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다. 보통사람이 농사를 지으면 남들이 하는 방식대로 남들이 하는 만큼 열심히 지으며 남들보다 더 많은 수확을 얻기를 바란다. 현명한 사람은 남들보다 좀더 연구를 하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서 대부분의 경우 남들보다 많은 수확을 얻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도 분명 있다. 날씨 때문일 수도 있고 운 때문일 수도 있다. 실망스럽고 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더 열심히 노력한다.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농사를 이렇게도 지어 보고 저렇게도 지어 본다. 여러 경우를 관찰하고 문제점을 알아내고 기발한 방법을 시도해 본다. 여태 누구도 해보지 않은 방법이라 사람들은 안 될 거라고 말한다. 많은 경우 실패해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러다 정말 획기적인 새로운 농법을 발견한다. 많은 수확을 얻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방법도, 수확물도 미련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줘 버린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의심하고 조롱한다. 사기꾼이라고도 하고 바보라고도 한다. 이 사람은 또다른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한다. 농사를 짓고, 연구하고, 모험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즐거움을 누렸기 때문이다. 결과물이야 누가 쓰든 크게 관심이 없다. 보통사람들은 그를 모른다. 성자라 치켜세우든 바보라 놀려대든 정확히 그가 누리는 그 기쁨의 실체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다. 그가 하는 모험이 성공할 경우 존경하고 실패할 경우 손가락질할 뿐이다.

최근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안철수라는 사람에 대해 나는 모른다. 서너 번 직접 보았을 뿐이다. 함께 청춘콘서트를 했고 그의 말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질문에든 명쾌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답”이라고 단언하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얼버무려 말하는 법도 없었다. 부드럽고 쉽게 말한다. 그 사람이 살아온 행적에 대해 들었다. 의사라는 직업을 툭 버리고 컴퓨터를 치료하는 백신을 만들고 회사를 경영했다. 어느 날 가지고 있던 60억원의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다시 과학자의 길을 간다. 학교의 행정을 맡는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돈이나 권력, 명예가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의미가 있는 일, 자신이 잘 “쓰일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선다. 몰두한다. 거기서 기쁨을 얻는다.

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고심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 역시 깜짝 놀랐다. 나를 더 깜짝 놀라게 한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본인의 입에서 그 어떤 얘기도 나오기 전, 단 2~3일 동안의 그 소동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한 번이라도 그의 생각을 듣거나 읽어본 사람은 할 수 없는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를 모를수록, 그와 가장 먼 얘기들을 가장 확신에 찬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단 이틀을 기다리지 못해 그를 적으로 만들고야 마는 조급함에 어리둥절했다.

기존의 틀, 흔히 말하는 ‘진보와 보수’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의 구도를 말했던 그는 하루아침에 ‘새로운 보수’라는 전혀 새롭지 않은 틀 속에 억지로 끼워맞춰지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연 뒤에는 정확히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잘 모르겠다. 기다려보자”라고만 했어도 그리 섣불리 상처 입히고 우스워지는 일은 없었을 거다. 우리는 그를 모른다. 기존의 틀로 현실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재단하고 확신하는 거야말로 ‘진보’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 태도다. 모르면, 가만히 지켜보면 된다. 오랜 관찰이야말로 모든 ‘과학적 진보’의 시작이다. 섣불리 소리 높여 예단하려 하는 건 “거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라고 우쭐대고 싶은 마음이다. 일의 성패를 빨리 알고 싶어하는 욕심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많은, 실패를 즐기는 모험가를 잃어왔을 거다.



안철수씨 본인 스스로 밝히기 전까지는 우리 조중동에 놀아나지 맙시당..

IP : 211.243.xxx.104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99036 애들꺼라고 다 순한게 아닌가요?(바나나보트썬크림) 1 썬크림 2012/04/19 6,199
    99035 인터넷 하다보면 이런 사람 꼭 있다 ..... 2012/04/19 676
    99034 저는 이제서야 하나 하나 버리려구요. 3 2012/04/19 1,302
    99033 봉하마을,부엉이바위 근처 바위안에 불상 보셨어요?? 2 시골여인 2012/04/19 1,048
    99032 대전공고 부근 숙박할 만한 곳 버섯돌이 2012/04/19 522
    99031 박원순 겁 없네요.사랑의 교회 만만하지 않는데...(펌) 10 ... 2012/04/19 3,317
    99030 딸기가 채소라네요,,, 12 시골여인 2012/04/19 2,804
    99029 앞니 살짝 벌어진거요. 4학년임에도 그러면 교정해야하나요 7 치아 2012/04/19 1,194
    99028 씨티그룹 비밀문서...미국은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다?? 2 ..... 2012/04/19 1,171
    99027 좀전에 영주중학교 자살학생 사건글이 왜 없어졌나요? 4 천우맘 2012/04/19 945
    99026 [펌글] 곤충이 사라졌다 3 。。 2012/04/19 1,308
    99025 아빠가 제사를 지내는 집안의 장손일 경우, 납골당에 모시는건 절.. 17 산소?납골당.. 2012/04/19 5,610
    99024 자동차 전면썬팅 해보신분들께 여쭤요~~ 3M, 루마? 야간 .. 4 태양이 시러.. 2012/04/19 22,334
    99023 글을 왜 제대로 못 읽죠 3 오늘 왜 이.. 2012/04/19 815
    99022 유방초음파 잘 보는 곳 좀 알려주세요.. 3 ... 2012/04/19 2,945
    99021 아기들 비타민 어떤걸로 먹이세요? 4 비타민 2012/04/19 1,071
    99020 여러분 라듸오반민특위(천안암편)들어보세요.. 1 ... 2012/04/19 693
    99019 쑥을 냉동보관할때 데치는 이유는 뭔가요? 6 주부0단 2012/04/19 3,567
    99018 4.19 혁명 52주년 기념 행사 잇따라 열려 2 세우실 2012/04/19 623
    99017 엄마가 당뇨가 좀 떨어지고 살도 빼서 너무 기뻐요 ㅠㅠ 2 ㅇㅇ 2012/04/19 1,661
    99016 담임 선생님의 멘붕(펌) 13 비록펌이지만.. 2012/04/19 2,772
    99015 시금치는 나물말고 뭐 해드세요? 17 시금치 2012/04/19 2,404
    99014 일본 국민들이 부럽습니다.... 33 용감한달자씨.. 2012/04/19 3,370
    99013 국제이사시 식품 운반에 대해 문의 드립니다 3 국제이사 2012/04/19 789
    99012 국민대 "문대성 절차 무시하긴 힘들다”... 최대6개월.. 14 ... 2012/04/19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