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경상도할머니
울엄마의 첫투표는 부정선거였다. 그 당사자였다.
겨우 스물한살이 되어 첫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지만,
투표가 뭔지 선거가 뭔지도 잘 모르고 옆집 아저씨에게 끌려 투표소로 갔단다.
옆집 아저씨가 기표소까지 따라 들어와 손잡아끌며 찍게 했다.
그게 얼마나 나쁜 짓이고 천인공노할 짓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어어하다
반항한번 못해보고 그렇게 찍고 나왔다.
그런데, 며칠후 그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엄마보다 더 어렸던 고등학생이
엄마가 살던 도시 앞바다에 시체로 떠 오른다.
엄마가 살던 도시는 마산이고, 그 사건이 3.15 부정선거이고, 그 학생이 김주열열사다.
그에 대해 엄마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말한 적이 없어 모른다.
다만, 엄마는 그 후 단한번 빠짐없이 선거때마다 투표를 했지만.
엄마가 선택한 사람이 당선되는 일이 없었다한다.
그러다 처음으로 엄마가 투표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분이 고김대중 대통령이다.
" 내가 찍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일도 일어나네. 설마 될 줄은 몰랐는데. 이런일도 있네."
너무 좋아하시고 신기해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거철이되면 생각난다.
엄마가 선택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된건 김정길씨가 초선의원으로 당선되던 86년 선거였지 싶다.
그때 엄마가 김정길씨를 찍어준 이유는 김정길씨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상대후보가 돈봉투를 줬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살던 동네는 온통 민정당지지자들이 있었다. 부산에서도 그야말로 골수 묻지마 조두파다.
밖에 나가서 누구 지지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듣기만 하던 한소심하는 울엄마.
덕분에 민정당 즉, 전두환이 당대회하던 자리도 끌려가서 당원가입도하고
체육복도 받아온다.
그렇게 끌려다녔으니 당시 민정당후보로 나온 사람은 자신의 표라고 생각했던지
선거날 새벽 아침밥을 하고 있는데 그 당대회 끌고갔던 아줌마가 찾아 와서 꼭 ***라며
봉투를 하나 주더란다. 열어보니 1만원이 들어 있더란다.
86년의 1만원이면 2012년엔 얼마의 가치이려나? 암튼 밥한그릇 수준은 결코 아니다.
어쨌든 그 봉투를 받는 순간 이사람은 절대 찍어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돈을 가장 안쓰던 김정길씨에게 투표를 했단다. 그때도 설마 그 사람이 될줄은 몰랐단다.
엄마외엔 아무도 투표하지 않을거 같으니까.
모든 사람은 다 민정당 지지자니까.
그 후로도 엄마가 선택하는 사람이 당선되는 기적은 노무현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외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엄마는 이번에도 투표하러 간다.
" 내가 투표하면 한표를 지겠지만, 내가 투표안하면 두표진다."
오늘 엄마가 하신 말이다.
울모녀는 떨어질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라도 무조건 투표하러 간다.
한표라도 더 받아야 누군가에겐 조금이라도 희망이 생길테고
선거기탁금도 돌려 받을테고, 선거비용도 보전될테니까.
누군가는 우리표에서 희망을 보고 다음에 또 후보로 나올 용기를 얻을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여론조사 지지율? 그런거 모른다.
기적이 일어나든 아니든 모른다. 어쨌든 투표한다.
투표를 하면 할수록 투표근은 단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