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 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잘 감이 안오네..
이렇게 메일을 보내는 것도 참 오랜만인거 같은데..함께 살 부딪히며 살면서도 이렇게 마음 속 말을 하는것이 어려운 일이라는걸 새삼 느껴..
요즘 당신은 어떻게 지내?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 어느때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거 같아..
활기차고 건강하고 즐거워..
근데 난..요즘 행복하지가 않아. 사실 많이 우울하고 슬퍼..
마음이 늘 지옥에서 천당을 왔다갔다 해..
사람들은 살면서 절대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가 하나씩은 다 있는거 같은데 ,
난 그 상자를 열어버린거 같아..비록 내가 당신을 용서하기로 했지만..그래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척 살고 있지만..
돌아보면 ..
나와 당신이 함께 산 10년의 세월..
난 그동안 누구보다 행복하고 남 부럽지 않도록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어.
근데,
그건 나의 허영이고 자만이었던거 같아..
허울 좋은 ..그냥 껍데기만 번드르르한 ..
모래성 같은거지..
지금 당신에게 나와 아이들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보면..
그냥 우린 예쁜 장식품일 뿐이지..
집 안 어느 한 장소에 두면 잘 어울리는..
근데
이 장식품들이 시간이 지나고 , 좀 오래된거 같고, 유행에도 뒤처진거 같아,
자꾸 먼지 쌓이고..
원래의 자리에서 멀어져 구석진 곳,
그 어느 곳에 그냥 밀어두고 싶은..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그런 장식품들..
밖에는 더 예쁘고 근사한 것들도 많고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는 장난감들이 넘쳐나는데..
뭐..
그냥 그렇게 두면 어때?
발이 달려서 도망갈 것도 다니고..그런 생각을 하겠지..
근데..
어느 날,
무심코 지나치다 먼지 뽀얗게 쌓인 그 장식품을 건드려 떨어뜨리게 되면..
그때 깨닳겠지..
어디서도 다시 살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는걸..
그땐 이미 너무 늦을텐데..
난 ..알아..
당신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는지..날..그리고 아이들을..
회사에서 매일 늦는 것도 결코 일이 많아서가 아닌것도 알아..
그건 예전 회사에서 부터 죽 그랬지..
그래..
집에 와서 아이들 소리 지르고 싸우고 울고..
내가 아이들 혼내고.. 지겹겠지..
오고 싶지 않을거야..쾌적하지 못하니까..
차라리 회사에서 일 없어도 인터넷 보고 ..운동하고..저녁 먹고 사람들 하고 술 한잔 하고..
그러고 집에 오면 애들은 어느새 잠들어 있고..
고요한 속에서 또 적당히 술 한잔 하다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늘 아빠한테 목마른 아이들이 달려들면
머리나 한번 쓰다듬어 주고..
당신은 참 좋겠다..
그렇게 도망갈 수 있어서..
알까?
우리 딸이 이번에 몇반이 되었는지..
짝꿍 이름은 뭔지..
막내는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아이들이 하루에 몇번이나 당신 이야기를 하고
혹시 오늘은 아빠가 일찍 오지 않나..기다리는지..
우리 ..
이제 10년이 되었어..
지금 한번쯤 돌아보고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였는지..
어떤 부모가 되어줄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그리고.
서로에게도..
난 당신의 진심이 듣고 싶어.
어떤 삶을 원하는지..그런 다음에 결정할 거야.. 내가 어떻게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