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이유로 회사 그만 두고..
회사 그만 두기 전에는 피아노도 배우고 운전도 배우고 뜨게질도 배우고 계획에 부풀어 있다가
막상 그만 두니 그냥 무기력증에 빠져서 암것도 안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늦은 나이에 겨우 임신하서 초반에는 입덧 때문에 산송장처럼 지내다가
좀 살만해지자 태교도 할 겸 동네 피아노 학원에 이번 주부터 다니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 (초등학교) 체르니 30번에 15번 정도까지 세 번 정도 치다가 그 후론 완전히 학원이랑 이별하고
간간히 집에서 심심할 때 한번씩 치다가 고등학교 때 영영 안 치니 엄마가 피아노 팔아버렸어요.
그러니 거의 20년도 넘게 피아노 손도 안 대고 있다가 다시 치려니
처음엔 왼손 악보 낮은 음자리는 계명이 뭔지 아예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헤깔리더라구요.
근데 선생님이 그냥 동네 피아노 학원인데도 프랑스 유학까지 갔다온 분이신데다 대학 강의도 나가시는 분인데
어릴 때 띵똥띵똥 로보트처럼 악보 음정만 정확하게 치면 진도나가던 방식이랑은 완전히 다르게
정말 쉬운 곡도 그 맛을 살려서 치는 법을 가르쳐주니까 참 재밌고 좋아요.
포르테, 피아니시오, 리타르단도....뭐 이런 거 다 지키면서 연주하라고 하고,
아무튼 어릴 때는 배우지 못했던 여러 테크닉을 다 가르쳐주시니
잘 따라하지는 못해도 같은 곡을 선생님이 치는 거 보기만 해도 너무 신기해요.
어릴 때 이런 식으로 배웠더라면 그 지긋지긋했던 체르니 30번도 마치고
어쩌면 피아노의 즐거움을 잘 알 수 있었을 텐데 좋은 선생님을 그 때 못 만났던 게 참 아쉬워요.
암튼 끈기도 없고 배도 곧 불러올 테니 계속 치기는 힘들겠지만 나름 생활에 활력이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