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이 감기에 걸려 골골하던 지난 주말이었어요.
일요일에 아빠는 회사 간다고 훌쩍 가버리고.
아프니까 외출은 꿈도 못 꿨죠.
그래도 아들이 제일 먼저 감기에 걸려서 제일 먼저 나아가는 중이었어요.
앉아있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이 아파서 평소엔 잘 보여주지 않는 TV를틀어주었는데
25개월 우리 아들,
“재미없어! 재미없어!” 하면서 몸을 뒤틀더군요.
하도 찡찡대길래 “맘마 먹을래?” 했더니식탁으로 달려가는 녀석.
옳거니!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불고기에 밥을 줬는데
아 글쎄 다 뱉어버리는 겁니다. 먹이는 족족.
“밥 먹는다며?” 하면서아무리 먹여봐도 먹진 않고
자기가 뱉어놓은 걸 손으로 문지르며 장난질하는 걸 보고
제가 그냥 폭발해버렸습니다.
“먹기 싫음 먹지마! 배고프대서밥 줬더니 장난질이나 하고 이게 뭐야!!!!
먹지마먹지마! 엄마가 너무너무 힘든데 좀 도와주면 안 되니?”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거칠게 밥을 다 치워버리고선
안방문을 꽝 닫고 잠궈버렸어요.
처음엔 영문을 몰라하던 아이가 문을 두드리며 울기 시작했죠. 엄마아아아아~~
침대에 누워있는데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요.
내 몸뚱이 아프고 힘들다고
겨우 세 살 아기에게 화를 내고 있는 엄마라는 작자의 한심한 인격이라니.
쟨 그냥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 뿐인데.
내가 어릴적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을 나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니 너무 괴로웠어요.
결국 문을 열었죠. 약 3분만에.
훌쩍훌쩍대며 엄마 팔에 폴싹 안기는 작은 몸.
토닥토닥해주었더니 금세 방긋 웃으며 장난을 칩니다. 작은 천사.
`엄마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미안미안…..’
그러고 있다가 한 시간쯤 지나서 밥을 먹였어요.
오물오물 잘 먹더군요.
예쁜 입에 밥을 쏙쏙 가져가는 아기의 얼굴을 매만지며 제가 따뜻하게 말했습니다.
죄책감이 컸거든요. 아기가 그 순간과 감정을 기억하면 어떻게 하나 싶기도 하고.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잘못했어.
엄마가아직 그릇이 작고 모자라서 잘못 없는 네게 화를 낸 거야.
넌 아무 잘못 없어.
엄마가진짜 미안.
앞으론다시 그러지 않을게, 미안미안…..”
이렇게 말하는 제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나, 한심한 엄마.
이런 작은 일들이 아기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데.
나 같은 애가 어쩌자고 아기를 낳았대?
아기에게 사과를 하면서 소리내어 엉엉 울었어요.
그런데 그때 아기가 날 바라보며 말합니다.
“엄마, 웃어”
우느라 처음엔 잘 못 들었는데 “응,뭐라구??”
“엄마, 웃어”
25개월 짜리 아기가 엄마한테 웃으랍니다. 엄마를 위로합니다.
괜찮으니까 웃으랍니다.
“엄마, 울지마”도 아니고 “엄마, 웃어.”라니.
EBS 다큐 보니까 남자아이들은 남의 감정에 대한 감응력이 약해서
엄마가 칼에 베인 척을 해도 걱정도 안 하고 잘만 놀던데 신기하기도 했어요.
“응? 엄마 웃어? 응, 알았어. 엄마 웃을게… 엄마 항상 웃을게….”
라고 말하는 전 울다가 웃다가 얼굴이 말이 아니었어요.
하루종일 감기로 끙끙 앓았던 고통과
아기에게 화를 내버린 죄책감과
조그만 입으로 엄마를 위로해준 세 살 아들에게 받은 감동이 뒤엉켜서
전 한동안 웃다울다를 반복하고 있었죠.
아마 누가 보면 미친 여자인 줄 알았을 거예요. ^^
그때서야 82에서 선배엄마님들이 말해주신 얘기가 생각났어요.
아이는 항상 제 2의 기회를 준다고.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늘 다시 시도하라고.
한 번 실수했지만 두 번 실수하지 않으면 되고,
두 번 실수해도 또 노력하면 되겠죠.
그러다보면 아기는 아이가 되어있을 거고 어느샌가 어른이 되겠죠.
좀 크면 얘기해주렵니다. 아들에게.
힘들고 외롭던 어느 날 네가 말해준 “엄마, 웃어.”라는 말,
그 말 때문에 엄마는 그 이후에 있던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물론 그 녀석은 기억 못하겠죠.
작은 입으로 엄마를 어떻게 울렸는지.
엄마가 그 말 한 마디를 붙잡고 얼마나 열심히 살게 되었는지.
네. 미래완료형으로 얘기했지만 그날 이후 그 말 한 마디가 절 깨워줍니다.
일하기 싫을 때나 녀석이 말썽 피우고 떼쓸 때도.
그리고 이 얘기 82에 꼭 하고싶었어요.
쪼그만 녀석이 내게 준 감동에 대해서요.
자식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된 순간에 대해서요.
선배엄마님들, 여러분도 이런 순간 다들 있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