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종 개구리 생태계
탈북한 뒤 한국 사회에서 10년 동안 살았다. 열 살짜리의 눈으로 보건대 대한민국이란 생태환경은 다음과 같다.
이 나라엔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를 자칭하는 세력이 있으나 내가 보기엔 그냥 진정한 개념과 거리가 먼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래서 편리상 노란 개구리와 파란 개구리로 가른다.
이 생태계에서 출세의 야심이 있다면 자기 종이 싫어하는 문제는 절대 떠들면 안 된다. 최소한 침묵이라도 지켜야 한다. 아니면 출세를 포기하든가.
도를 닦는 심정으로 금기를 철저히 지켜낸 사람들에겐 색깔의 선명성을 인정받아 상을 받을 자격이 차례진다.
임수경 씨를 보라. 그도 눈과 귀가 있는 이상 탈북자나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인권에 대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까지 금기를 잘 지켜왔고 민주당 비례대표로 거론되며 국회의원이라는 보상을 목전에 두게 됐다.
만약 그가 그만 ‘실수’로 탈북자들의 열악한 인권을 언급했더라면 절대 차례지지 않았을 상급이다.
물론 파란 개구리도 마찬가지다. FTA의 부작용이나 해고 노동자의 억울함에 눈과 귀를 열었다면 그 역시 아웃이다.
순종도 많은데 하필이면 얼룩얼룩 의심스러운 종을 가져다 쓸 일이야. 더구나 내가 순종임을 드러내기 위해, 하다못해 순종의 근친 정도는 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경쟁적으로 튀어 오르는 세상에서 말이다.
정계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자기 종의 금기 앞에선 입에 자물쇠를 채운 사람들이 아니던가. 열 살짜리도 보고 아는데, 이곳에서 태어나 수십 년 산 사람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한번 얼룩 개구리가 되면 이쪽저쪽에서 다 기피하니 야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갈 길이 아니다.
요새 희망버스, 촛불시위의 앞장에 섰던 사람들이 탈북자 인권엔 왜 침묵하냐는 비판이 많다. 그러나 나는 이해가 될 것 같다. 이건 말 한마디의 문제가 아닌 종을 가르는 문제이다.
유명인은 잃을 것이 특히 많다. 모범적인 순종으로 인정받기 위해 눈귀를 닫고 견뎌온 인고의 시간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 얼룩개구리가 되라고 하니. 가혹한 요구가 아닌가.
이곳 생태계에선 한번 얼룩 개구리가 되면 끝이다. 누구를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럼 양심적으로 나서야 할 때마다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다 나섰던 사람들이란 말인가.
내가 못하는 것을 남보고 하라고 하면 안 된다. 나도 북한 관련 글을 수없이 쓰고 대북방송을 수없이 하면서도 북한 주민들에게 투쟁에 나서란 소린 절대 안한다. 아니 못한다. 내가 못했으면서 남보고 목숨 걸라 하기엔 양심에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 나 같은 탈북자는 파란 개구리에 가까운 외래 잡종 개구리쯤으로 본다. 왜 노란종이 못 되냐 하면 그쪽 동네에선 탈북자란 단어 자체가 금기어에 가깝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파란종으로 인정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철학과 사랑이 없다고 비판하고 대북식량지원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나는 그야말로 대표적 얼룩 잡종이다.
이곳 생태환경은 얼룩종과 잡종이 살기엔 정말 척박하다. 얼룩종 동네도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진 파란 개구리 동네와 노란 개구리 동네 두 곳뿐이고 편의시설도 그 동네에만 있다.
그 동네에서 내쫓기면 산과 들에서 괴롭게 노숙해야 한다. 북쪽에 빨간 개구리 동네도 있지만 살 곳이 못된다.
생물학에서 순종교배와 근친교배는 퇴화의 길이며 적응력과 생명력이 더 강한 개체를 만들려면 이종교배가 필수라는 것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이곳 생태계에선 순종과 근친만이 숭배되니 진화의 법칙이 여기선 왜 거꾸로 일까. 퇴보하는 것인가?
by 주성하기자 2012/03/13 7:3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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