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 그러니깐 제가 우리나이로 5살 아니면 6살 때 일이예요.
너무 어린 나이지만 아직까지 그때 그 장면의 색깔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거든요.
저희 집은 안방이 있고 안방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어요.
거실에서 안방 문 열고 들어가면 안방.
그 안방이랑 연결된 다른 문을 열면 아주 작은 복도가 있고 그 복도 오른쪽엔 안방에 딸린 화장실.
그리고 그 복도 끝엔 아주 작은 방이 있었어요.
그 방으로 가려면 안방을 꼭 통해야만 했죠.
물론 그렇다고 그 방이 엄청난 밀실은 아니고 아마 지금 개념으론 드레스룸쯤 됐을거예요.
그 방에 창문이 있었는데 그 창문이 다용도실로 나있었거든요. 그러니 아주 밀폐된 방은 아니었죠.
그래도 제가 유치원생 때라 그런지 그 방이 왠지 무서웠어요. 저 혼자 속으로 그 방은 귀신이 사는 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그 방엔 절대 안들어가고.. 그런건 아녔어요.
저희 아버지는 의사셨는데 젊은 시절이라 그런가 그 당시 당직이 잦았거든요.
아버지가 당직인 날엔 엄마랑 저랑 언니랑 셋이서 그 끝방에 있는 작은 침대에서 같이 잤어요.
그런건 오히려 정겨운 기억으로 남아있죠.
아버지가 집에 오는 날엔 네 식구 모두 안방에서 이불깔고 잤어요.
안방에 누우면 그 작은방으로 향하는 방이 보이는 방향으로 누워서 잤어요.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온 식구가 안방에서 자다가 제가 한밤중에 잠깐 깼어요. (라고 저는 기억하고 있어요.)
근데 그 작은 방으로 향하는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어떤 긴 머리의 여자가 걸어들어와선 우리 식구가 자는 옆에 쪼그리고 앉았어요.
그리고 자는 우리 네 식구를 말없이 바라봤어요.
그 여자는 약간 마르고 키큰 여자였고 머리가 길었어요.
아무 표정없이 쪼그리고 앉아 자기 무릎에 턱을 괴고 우리를 내려다 봤는데요,
그 여자는 빨간색/흰색의 세로 줄무늬 바지를 입고 있었어요.
전 막연히 저 여자가 귀신이구나.. 생각하고 너무 무서워서 그냥 자는척 했어요.
실눈 뜨고 보면 그 여자가 멍하니 우릴 내려보고 있었어요.
저는 그게 꿈인지 실제인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스물아홉살인 지금도 저는 그 날 밤 우리집 안방의 정경을 정말 또렷하게 기억해요.
그 여자의 정체가 뭘지.. 가끔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