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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전 전화공포증입니다.

막막 조회수 : 5,697
작성일 : 2012-03-07 17:57:32

전화를 싫어하긴 했어요.

 

어릴때부터

용건이 없으면 전화하지 않았고

전화를 하게 되면 5분을 넘기지 않았으며

수다전화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친구가 그런 전화라도 하면...듣기만 하던 저는 전화를 끊고 환자처럼 축 늘어져있는 편입니다.

 

네. 원래 전화를 싫어했습니다.

그래도

해야할 전화가 있음 했고

"전화를 할까말까"라는 행위를 의식한적도 없습니다.

 

 

이 회사에는 행정직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느날 팀에서 이런 오더가 내려오더라구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정부사업인데(할지 안할지 정해지지도 않았음)

만약 이 정부사업이 시작된다면

사업에 적극참여하겠다는 동의서를

전국 불특정다수의 회사에 전화해서 회사직인을 찍어 받아내라는 오더였습니다.

 

준 자료는 사업안내문과

전국 A분야의 사업체리스트 - 회사명 + 대표번호가 다였습니다.

 

대표번호로 전화해서

총무팀 있느냐, 없음 인사팀 있느냐, 없음 관리부 있으냐, 없음 비슷한 부서라도 있느냐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 부서가 있는지조차 알수없는 자료였습니다)

부서명-담당자이름-직위-연락처 알아내야했습니다.

 

알려줄리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기계음이면 시도할수도 없었습니다)

 

무슨일이냐길래 사업설명을 하면 너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저희 회사..정부지원사업하지만 인지도가 전혀 없습니다.

듣도보도 못한 회사입니다.

"XX라고 합니다. " " 네? 어디라구요?' "XX라고 하구요. 저희가 이번에.." "거기가 뭔데요?"

 

사업설명이 아니라

이 회사가 유령회사가 아님을 설명해야했습니다.

 

겨우겨우 부서와 연결되면

다시 시작입니다.

유령회사가 아님을 설명하고 사업설명을 하고..

중간까지라도 들어주면 고마웠습니다.

"이거 들어야하나요?" 짜증안내면 고마웠고

"이 번호 어떻게 아시고 전화거신거에요?" 하면 구구절절히 설명하면 됐고

"지금 뭐하는거에요?" 화내면 사과하면 됐고..

그리고...............................

 

네. 그래도 했습니다.

이게 비효율적이고, 맨땅의 헤딩인거 알고, 회사직인을 이런식으로 찍어줄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갓 들어온 신입이

오더를 내린 부장한테

그냥 일단 해봐라하는 과장한테 못하겠다 못했습니다.

내가 행정직인지 TM으로 들어온건지 헷갈렸지만 회사일이니깐 당연하게 했습니다.

 

백 몇통화를 했고,

동의서는 3-4백기업중에 8장 받았습니다. (말단 3명이 나눠서 했음)

 

사업은 흐지부지 되었고.

회사에서는 그냥 일상적인 전화업무였을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전화공포증을 얻었습니다.

 

전화를 꼭 걸어야하는 일에도

하기전에 꼭 해야하는것인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다른 방법을 열심히 강구하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머리속에 대화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한글에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전화버튼을 눌렀습니다.

네 하긴 했습니다.

두근두근하는 심장을 누르고, 무거워지는 머리를 감추고, 울컥하는 화를 참아내며 했습니다.

 

 

 

제 주업무는 이런 전화업무가 아닙니다.

만약 주업무라면 애초에 입사하지도 않았고 진작에 퇴사했을겁니다.

 

보통의 행정업무를 하고

이런 식의 전화업무는 일년에 1-2번입니다.

 

그리고 그 1-2번때문에 퇴사를 할까 고민중입니다.

전화버튼을 누르기 위해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까지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회사일은 잘하고 있습니다.

(작년 근평 총점이 제가 전체2위였습니다. 관리자컴퓨터 포맷해준던 직원이 전해주더군요)

하지만 일년에 1-2번 발생하는 이런 맨땅의 헤딩식의 전화업무가 떨어질때마다

너무도 괴롭고 힘이 들어요.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자꾸만 미루고 안하려고 하는 제 모습에

제가 가장 실망스럽고

남보기도 민망합니다.

그래도 도저히 전화기에 손이 가질 않습니다.

 

게다가

자꾸만 그 일들이 저에게 돌아옵니다.

제 담당업무가 아닐때조차 반드시 그 업무는 저에게 돌아옵니다.

 

싫다고 거절을 해보고 해봐도

회사일이라는게 거절하는것이 한계가 있는거 아실겁니다.

(거절하는 것 자체도 좀 어렵습니다. 회사니깐요)

 

왜 자꾸 나야? 라고 말하면

네가 여자니깐..

여자가 해야지 한마디라도 들어준다..

그걸 남자가 할순없잖아..

너 목소리가 예쁘니깐 더 잘들어줄거야...

넌 상냥하니깐...

 

일을 미루려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런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면..

내가 도대체 어떤걸 참아내면서 이 "짓"을 하는지 아냐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제가 힘들다 토로하자 다른 여직원도 그러더라구요.

"그래도 어차피 하는거 가벼운 마음으로 해요 ㅎㅎ

사실 다른 남직원은 사투리 쓰는데 그 사람이 할수 있겠어? ㅋㅋ

막말로 남자가 하는것보다 여자가 해주는게 듣는 사람도 기분 좋지...

XX씨는 목소리도 예쁘고 상냥하잖아~ 그냥 해봐~뭐어때서 그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의 마음은 일반적인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할수도 없고

저 스스로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님들도 그렇겠죠.

"회사일이 쉬운게 어딨냐"

"하고 싶은 일만 하는게 아니라, 하기 싫은 일도 해야지"

"사회생활 태반이 전화업무인데 못하면 관둬야지, 철이 안들었다..."

"노력하면 되는거지 전화가 어렵나..."

 

아마 회사에 전화공포증이라 이 업무는 못하겠다라고 하면

"정말 힘들면 다른 사람이 하자"가 아니라

"전화하기 싫어 그렇구나. 누군 하기 좋으냐 뭐 이런 태도가 다 있나"하겠죠.

 

그래서 퇴사하겠다고 하면 이유는 다른 핑계를대야겠죠.

저조차 전화하기 싫어 퇴사한다면......이해할수없었을겁니다.

 

 

하루종일 전화할 리스트만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뭐가 맞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담주 월요일이면 이번엔 분량이 너무 많아 고용한 TM이 오는데도

1000건중에 20-30건이라도 담당이 아닌 저에게 하라고 하는걸

왜 굳이 그래야하느냐 반박할때

저도 일을 미루는거라 제 자신이 민망합니다.

("그냥..더 좋지 않을까.." 그게 답변이었고...할말도 없더군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인건가요..

"그냥"하면 되는건데..제가 안되는건지...제가 부적응자인지...

머리속에 솜을 한가득 넣은거 같아요...

 

그걸 빼내서 써내려가다보니...정말 기네요..^^;;;;;

자게니깐...그냥 뱉어내듯 써내려간거같은데...너무 길다고 뭐라고 하진 마세요^^:;;안 그래도 민망하긴 하네요.ㅠㅠ

 

 

IP : 211.217.xxx.253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힘내요
    '12.3.7 6:03 PM (211.204.xxx.133)

    피할 수 없으면 즐기세요 - 라는 말도 경우가 있다는 거 알아요.

    긴 전화, 많은 전화 통화 힘들어 하는 저는 이해가 가요.

    글을 잘 쓰셔서 말도 조리있게 잘 하실테니 용기내서 잘 하세요.

  • 2. 길어서 대충 읽었는데
    '12.3.7 6:07 PM (121.135.xxx.41)

    공포증은 정신과가서 진단서받아 내시고 못한다하시던가요
    근데 진단서 금방 안나와요. 단번에 알수는 없으니깐...

  • 3. KoRn
    '12.3.7 6:07 PM (122.203.xxx.250)

    같은 전화공포증이 있어서 동감합니다.......그래서 전화올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도 있고 전화 한번 하려면 몇번을 망설였다고 하는지 모릅니다.......

  • 4. ㅠㅠ
    '12.3.7 6:08 PM (121.161.xxx.151)

    너무 힘드실 것 같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회사에선 좀 다른 방법을 강구하시면 좋을 텐데요.

  • 5. 토닥
    '12.3.7 6:14 PM (118.34.xxx.115)

    이해합니다. 전 거래처와 사무적인 통화하는데도 똑같은 소리 반복하는 것도 맥빠지고 잔뜩 톤 높여 친절하게 굴어야하는 제 역할이 지겨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원글님은 불특정다수의 회사에 무작위로 전화돌려 오더따는 업무를 맡았으니 스트레스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네요. 차라리 내가 TM업무였다면 때려쳐버리면 되는 건데 행정업무라고 뽑아놓고 일년에 몇번 없고, 몇 십통화 밖에 안되니 그거 왜 못해라는 시선..참말로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 듯! 제 친구도 원글님과 비슷해서 아예 전화통화 안해도 되고, 사람 상대 안해도 되는 단순 전산 입력 쪽으로 방향 틀더군요. 돈은 쪼끔 받더라도 그게 맘 편하다고.
    일단 세상에 못할게 없다, 단지 안할 뿐이다!라고 마인트 컨트롤하시고, 퇴직도 불사한다는 심정으로 전화업무에 관해 상사에게 시정 조치를 요구해보세요. 이전에도 수백통씩 했던 경험이 있으시고 업무평가에서도 2위를 받으셨으니 능력 없어서 못한다고 말하진 않을 거에요. 만약 진지하게 시정 요구를 했는데도 묵살한다면 이직을 고려해보시길 권합니다. 에고..어쨌든 힘내세요! 님과 같은 고민 가진 사람, 의외로 많습니다!!

  • 6. 저도
    '12.3.7 6:15 PM (14.200.xxx.86)

    전화하는 거 무지 싫어합니다. 퇴사 하시고 지금 쓰신 거 그대로 사유로 말하세요. 해야되는 일인데 안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일을 미루는 게 아니라 원래 자기 일이 아닌 거쟎아요. 자기 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만둬야죠. 그러다 병나요

  • 7. 나거티브
    '12.3.7 6:17 PM (118.46.xxx.91)

    힘드시겠어요.

    여자라서... 목소리가 상냥하니까... 라는 회사분위기는 참 그렇습니다.
    하지만 행정업무라도 경우에 따라 전화 통화 많이 해야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도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는 한참 수다 떨 때도 있지만,
    전화로 업무처리하는 건 상대가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힘들어요.

    방학에 전화설문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한달가까이 하루에 한 10시간씩 전화를 했던 건 같아요.
    나중엔 목이 아파서 약도 좀 먹을 정도였는데,
    목 아픈 건 둘째치고, 밤에 자려고 하면 머리 속에서 전화기에서 나는 기계소리며
    온갖 말이 둥둥 떠다녀서 괴롭더라구요.

    알바 여파로 한동안은 전화만 받으면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면서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변신해서
    친구들한테 놀림도 받았어요.

    그 다음엔 무슨 회원관리 같은 거(일도 있었고, 친목모임 총무 역할 등등)도 해봤는데,
    나이도 먹었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니 하긴 하는데.... 전화 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긴 해요.

    전화 거는 순간에는 스스로 전화거는 기계라고 생각하면서 하기도 해요.
    일부러 목소리 톤도 좀 높이고 평소와는 말투도 좀 바꾸고요.
    그러면 좀 덜 힘든 것 같거든요.

  • 8. 금데 전화공포증있는 사람이
    '12.3.7 6:20 PM (121.135.xxx.41)

    콜센터에서 일하라하면 미치겠구만요
    앵무세처럼 같은소리 반복해야하고

  • 9. 이직
    '12.3.7 6:21 PM (115.139.xxx.98)

    원글님..정말로 이직을 권합니다.
    전화 외에 다른 업무는 남들보다 뛰어나시잖아요.
    더이상 힘들지 마시고 얼릉 다른 자리 알아보세요. 남들이 이해 못하던 말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입니다.
    저도 전화 싫어요.
    전 진짜 금융권이나 보험 전화 너무 받기 싫어요.
    기왕 사는 인생 되도록 즐겁게 살아야죠.
    얼른 이직하세요.

  • 10.
    '12.3.7 9:59 PM (115.136.xxx.24)

    근데요,, 전화 안해도 되는 직업도 있긴 있나요,,?
    찾기 힘들 것 같은데,,

  • 11. ...
    '12.3.7 10:55 PM (118.176.xxx.19)

    에효..속상하시겠어요
    그런데 전화공포증 의외로 많습니다.
    직접 사람을 상대하는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수 있는 일이기도하구요
    구체적으로 사직서를 생각하실만큼 힘드시다면
    솔직히 말씀하시는게 좋을거같습니다.
    그래도 안되는 상황이라면 그때 사직하셔도 되지않을까싶은데요
    여하튼 상황이 님에게 유리하게 잘 타결되길 바랄께요

  • 12. 원글이
    '12.3.8 9:48 AM (211.217.xxx.253)

    감사합니다.

    회사일인데 그정도도 못참아내고 무슨 사회생활하냐..많이들 꾸짖어 주실줄 알았는데....이해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도, TM올때까지 어떡하든 버텨야지..하며 기다리고 있는 제모습이 싫기도 하고, 상황이 너무 짜증나기도 하고, 출근하는 버스에서 사직서를 낼까, 아프다고 병가를 낼까, 그냥 가서 소리쳐볼까..별별 생각을 다했네요. 현실적인 문제가 걸려있으니 함부로 행동할수도, 그렇다고 공포심을 감당한 능력도 없고...뭐가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위로해주신 분들 많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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