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는 미신과도 같아서 그것을 믿는 자는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북한에서 종교는 해방 이후부터 "모든 종교는 미신과도 같아서 그것을 믿는 자는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하려는 의욕이 없어지는 일종의 아편"으로 규정되었다. 1981년판 ‘현재조선말사전’에서 기독교는 “낡은 사회의 사회적 불평등과 착취를 가리우고 합리화하며 허황된 천당을 미끼로 하여 지배계급에게 순종할 것을 설교”, 교회는 “종교의 탈을 쓰고 인민들을 착취하도록 반동적 사상 독소를 퍼트리는 거점의 하나”, 성경은 “예수교의 허위적이며 기만적인 교리를 적은 책”으로 정의하고 있다.
종교를 버리지 않는 종교인들은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감금했다!
북한의 종교단체에서 밝히고 있는 1991년도 종교인의 수는 모두 합해야 5만 명이 안 된다. 이는 북한 전체 인구의 0.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들 종교인의 비율은 천도교 42%, 불교와 기독교가 각각 27.9%, 천주교가 2.2%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당국에 의해 통제되는 가짜 종교인들이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북한은 노골적인 종교말살정책을 실시했고, 종교를 버리지 않는 종교인들은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감금했다.
탈북인들에 따르면, 북한에도 종교가 있는 것처럼 선전하기 위해 허수아비 종교단체들을 만들고, 교회나 성당, 사찰을 지었지만, 실제로 북한주민들 가운데 "나는 기독교인이요", "나는 불교인이요"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제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에 나가는 교인들은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손님이 올 때마다 행사에 동원하기 위해 당에 의해 선정된 열성당원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남한의 종교단체를 끌어들이는 도구
1980년대에 이르러 해외교포 종교인들의 빈번한 방북으로 인해 서방진영으로부터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는 거센 비난을 받기 시작하자, 북한당국은 조금씩 '반(反)종교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이 완화정책은 다시 통일전선구축을 위해 남한의 종교단체를 끌어들이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봉수교회, 칠골교회: 봉수교회는 1988년 9월에 만경대구역 건국동에 세워졌고 칠골교회는 1992년 11월에 만경대구역 칠골1동에 세워졌으며 둘 다 그리스도교연맹이 운영한다. 1993년까지 국가 보안법 위반 등으로 6회에 걸쳐 투옥되었으며 1989년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으로 정부의 허가없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북한을 방문하여 연방제 방식의 통일에 합의했던 문익환 목사가 그해 3월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장충성당: 평양시 선교구역 장충동에 자리잡고 있다. 1988년 3월말에 착공하여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공되었다. 1988년 10월 2일 로마교황 특사일행이 방북해 성당축성식을 거행하고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평양신학원: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에서 교직자양성을 위해 세운 신학원이다. 만경대구역 건국동(봉수교회 옆)에 자리잡고 있다. 교육과정에 학생들은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등에 나가 실습도 하고 참관사업도 한다. 신학원을 졸업한 신자들은 전도사의 자격을 받고 그리스도교연맹의 교직자로 활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