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행사를 치르면 인간관계가 명료해진다죠.
결혼하면서 친구 관계가 다시 정리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결혼한 지 3년 반 정도 지났는데 아직도 생각하면 열이 후끈후끈 올라오네요.
친구 하나.
대학 때 베프 중 하나였어요. 제 모든 친구 통틀어 젤 먼저 결혼했죠. 어린 맘이여서 그랬는지 그 친구 결혼식날 괜히 눈물도 찔끔 흘렀네요. 결혼식은 물론, 돌, 집들이 등 다 챙겨줬어요. 그리고 그 친군 훌쩍 식구들과 미국으로 떠났어요. 제 결혼 땐 미국에 있었죠. 결혼한다고 하니 달랑 싸이 방명록에 '축하한다, 못가서 서운하다 엉엉.' 이런 내용의 말들로만 호들갑을 떨더군요. 전화 한통 없었다죠. 그 친구 성정을 알아서 이메일 청첩장이 없어서 일부러 청첩장 스캔해서 메일로 보내기까지 했는데 말이에요. 말이라도 '필요한거 없냐' '계좌번호라도 불러줘라', 하다못해 전화 한통 해줘야하는거 아닌가요? 전화요금도 아까웠나싶은 게 두고두고 얼척없더라고요. 그 뒤로 연락 끊었어요. 그 친구도 물론 그 뒤로 연락 없음. 그 친구 결혼식에 흘린 눈물이 가장 분해요.
친구 둘.
역시 대학 때 베프 중 하나였어요. 저보다 일찍 결혼해서 제가 결혼할 땐 애도 있었죠. 그 친구가 애 낳은 이후론 거의 못보다시피 했지만, 꽤 좋아하는 친구였어요. 청첩장도 물론 보냈고, 결혼식 전날 통화하면서 친구가 호들갑을 떨며 당연히 결혼식 참석한다 했죠. 결혼식 당일,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 못온다는 문자를 보냈더군요. 미안하다, 다음에 연락하겠다고. 그때도 좀 서운하긴 했어요.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하루 만에..., 라는 생각에. 그만큼 결혼식에 안 오면 서운할 친구였어요.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그 뒤로 결혼한 지 3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없어요. ㅡ.ㅡ 다른 대학 친구가 나 뒤로 결혼하면서 연락을 했대요. 내가 서운해하더란 얘길 했더니 나한테 너무 미안해서 연락도 못하겠다, 네 결혼식엔 꼭 가겠다 했다는데 그 친구 결혼식에도 아무 연락 없이 안 왔어요. ㅎㅎㅎ
친구 셋.
직장 다니면서 두 달 동안 결혼준비를 하느라 무척 바빴어요. 그래도 가급적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친한 사람들에겐 직접 청첩장을 줘야겠다싶어, 바쁜 와중에 점심먹자 해서 그 친구 회사 근처로 청첩장 주러 갔어요. 보자마자 '결혼턱'이라며 점심을 사라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사려고 했는데 먼저 선수치니 기분은 좀 그랬죠. 그래도 원래 짠돌이 친구라 그러려니 했어요. 그러고는 역시 호들갑을 떨며 결혼식에 꼭 가겠다, 결혼하면 집들이 해라. 꼭 '싼 와인'(몇 번을 강조함) 들고 놀러가겠다 하더군요. 드디어 결혼식날,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결혼식 끝나고 나니 이 친구가 안 온 게 생각난거에요. 워낙 바쁜 친구라 미처 얼굴을 못보고 갔나싶어서 방명록을 봤는데, 설마설마 햇는데 없더라고요. 너무 어이 없어서 연락도 안 하고 있었는데 두어 달이 지난 후에 메신저로 말을 걸더라고요. 결혼식에 못갔다, 회사 일 때문에 야근하다 당일 늦잠 자느라
못왔다, 하더라고요. 근데 저 결혼 평일 저녁에 했거든요? 더 실망스럽더라고요. 제가 받아쳤죠. 무슨 소리냐, 나 결혼 저녁에 했는데... 하니 당황해하면서 아무튼 그날 자기가 뭔 일이 있었던 것 같다고 둘러대더라고요. 그러니까 제 결혼식에 못온 것 자체를 잘 기억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다가 문득 생각나서 메신저로 말을 건거죠. 이 친구도 물론 저보다 먼저 결혼했고, 저는 참석했었죠. 만나면 말이 잘 통하고 배울 게 많다 생각한 친구였는데, 이후로 정이 딱 떨어졌어요.
제 결혼식에 관한 이 친구들의 애티튜드(!)를 보면서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고 얕잡아보이는 사람이었을까 회의까지 들더군요. 시간이 지난 지금도 분하고 씁쓸해요. 모두 기혼자라는 게 더 화나요. 미혼자라면 (아주 마음을 넓게 써서) 잘 모르고 실수할 수도 있고, 결혼식에 대한 의미를 모를 수도 있으려니 생각하겠는데... 이미 결혼한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니 인간성까지 의심돼요.
물론 반대로 결혼식으로 인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절 더 생각해준 친구들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고맙더라고요. 근데 이런 친구들은 대부분 남자들입디다. 남자들이 아무래도 관혼상제 행사에 더 넉넉한걸까싶고.
지금도 생각하면 열이 받는 얘기라 누군가에게 얘기하고싶어 여기에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