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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저장해둔 볼때마다 눈물나는 글-“가여운 내 새끼야, 에미를 용서해 다오”

새벽이니까 조회수 : 5,091
작성일 : 2012-03-02 02:37:27

2005년 10월 13일 (목) 20:00   도깨비뉴스

“가여운 내 새끼야, 에미를 용서해 다오”

[도깨비 뉴스]





“무남이는 에미가 미련해서 죽였어”

옛말에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더니 그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우리 무남이 죽은 지 60년이 넘었어. 내 나이 아흔 줄에 접어들었는데도 무남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

무남이는 생으로 죽였어. 에미가 미련해서 죽였어. 무남이가 태어난 지 일곱 달 되었을 때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지. 그때 서울 돈암동 살던 남동생 순일이가 장사 치르는 데 무남이 데리고 가면 병난다고 두고 가라고 했어. 우유 끓여 먹인다고. 그 비싼 우유까지 사 가지고 와서 데리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어린 무남이가 에미를 찾을까 봐 그냥 업고 왔어. 순일이가 “경황이 없어 젖 먹일 시간이나 있겠냐”며 우유를 내 가방에 넣어 줬어.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상제 노릇하랴, 일하랴 정신이 없었어. 무남이는 동네 애들이 하루종일 업고 다녔지. 애가 순해서 잘 울지도 않았어. 어쩌다 에미와 눈이 마주치면 에미한테 오겠다고 두 팔을 벌리곤 했지. 젖이 퉁퉁 불었는데도 먹일 시간이 없었어. 그런데 무남이가 우니까 애들이 우유를 찬물에 타서 먹인 게야. 그게 탈이 났나 봐. 똥질을 계속 해 댔어.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직후 시어머님이 앓아 누우셨어. 무남이가 아파도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없었지. 상중이라 병원 가는 게 흉이었거든. 약만 사다 먹였지. 그런데 시어머님이 한 달 만에 시아버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나셨어. 초상을 두 번 치르는 동안 무남이의 설사는 이질로 변했어. 애가 바짝 마르고 눈만 휑했지. 두 달을 앓았으니 왜 안 그렇겠어. 그제서야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늦었다고 했어.



▲홍영녀 할머니의 낡은 고무신▲


그땐 남의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주인집 여자가 자기 집에서 애가 죽는 것 싫다고 해서 날이 밝으면 무남이를 업고 밖으로 나가곤 했어. 하염없이 밭두렁을 걸어다니면 등에서 ‘가르릉 가르릉’ 가느다란 소리가 났어. 그러다 그 소리가 멈추면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라서 애를 돌려 안고 “무남아!”하고 부르면 힘겹게 눈을 뜨곤 했지. 옥수수밭 그늘에 애를 뉘어 놓고 죽기를 기다렸어.

집 밖으로 떠돈 지 사흘째 되던 날. 가엽디 가여운 무남이를 풀밭에 뉘어 놓고 “무남아!”하고 부르니까 글쎄 그 어린 것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어. 그날 저녁을 못 넘길 것 같아서 내가 시집 올 때 해 온 깨끼 치마를 뜯었어. 그걸로 무남이 수의를 짓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바늘귀를 꿸 수가 없었어.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서투른 솜씨로 옷을 다 지었지.



▲72년 된 모시적삼, 이 옷의 치마를 뜯어 무남이 수의를 만들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무남이에게 수의로 갈아입혔어. 그런데 수의가 너무 커서 무남이의 어깨가 훤히 드러나고 얇은 천이라서 그런지 속살이 다 비치지 뭐야. 수의 입은 무남이를 꼭 안고 있는데 첫 닭 울 때 숨이 넘어갔어. 소나기처럼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무남이를 넋 놓고 쳐다봤어. 속눈썹은 기다랗고, 보드라운 머리칼은 나슬나슬하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가진 우리 무남이….

나는 이 얘기를 할 적마다 울지 않고는 못 배겨. 게다가 그땐 이 에미가 얼마나 독하고 야박스러웠는지 몰라. 무남이 싸 안았던 포근한 융포대기나 그냥 둘걸. 물자가 너무 귀한 때라 융포대기 대신 헌 치마에 깃털같이 가벼워진 무남이를 감쌌어.

즈이 아버지가 주인 여자 깨기 전에 갖다 묻는다고 깜깜한데 무남이를 안고 나갔어. “어디다 묻었냐”고 물었더니 뒷산에 있는 상여집 근처에 묻었대. 그땐 왜정 때라 나도 부역을 나가게 됐어. 그런데 하필이면 일하러 간 곳이 뒷산이었어. 상여집 뒤에 새로 생긴듯한 작은 돌무덤이 봉긋하게 솟아있지 뭐야. 그걸 보고 난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어. 무남이 이름을 부르짖다 정신을 잃었지.

암만 생각해도 무남이는 생으로 죽였어. 제때 병원에만 갔어도 살았을 거야. 순일이 말만 들었어도…. 그 생각을 하면 내 한이 하늘에까지 뻗치는 것 같아. 죽으려고 그랬는지 그 녀석을 업고 나가면 다들 잘 생겼다고 했지. 순하긴 또 왜 그렇게 순했는지 몰라.

태어난 지 아홉 달 만에 죽은 우리 무남이. 찬바람 부는 이 즈음이 되면 깨끼옷 입은 무남이가 추울 것 같아서 가슴이 저리다 못해 애간장이 다 녹는 것 같아.

아, 가여운 내 새끼야. 이 에미를 용서해 다오.

‘내 아들 무남아’

아가야 가여운 내 아가야

에미 때문에 에미 때문에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열 손가락에 불붙여 하늘 향해 빌어 볼까

심장에서 흐른 피로 만리 장서 써 볼까

빌어 본들 무엇하리 울어 본들 무엇하리

아가야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피어나는 국화꽃이 바람에 줄기 채 쓰러졌다고 울지 말아라.

겨우내 밟혀 죽어 있던 풀줄기에서

봄비에 돋아나는 파란 새싹을 보지 않았니.

돌쩌귀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씨 한 알이

그 돌을 뚫고 자라 나온 것도 보았지.

뿌리가 있을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밝은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 눈물을 씻고

뜰 앞에 서 있는 꽃줄기를 보아라.

햇빛에 빛나는 꽃잎을 보아라.

아가야, 눈물을 씻어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어 보아라.

쥐암 쥐암 손짓 재롱을 부려 보아라

옹알 옹알 옹알이로 조잘대 보아라.

예쁜 나의 아가야.

우리 아기 피리를 불어주마

우리 아기 우지 마라

네가 울면 저녁별이 숨는다.
-----------------------------------------
요즘엔 블로그를 안합니다만 가끔 저장해놓은 글들을 보곤해요.
오늘도 뒤적거리다가 또 봤어요.
이상하게 이 글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요. 한 30번은 봤을거예요.
그때마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런 생각 들곤하죠.
처음 2005년 daum메인 뉴스에 나왔는데 이 글이 이틀 동안 걸렸는데 계속 보고 가슴이 먹먹했었어요.
마음이 삭막해질 때마다 이 글을 보곤해요 요즘도.

예전엔 이렇게 몰라서, 알아도 어쩔 수 없어  한맺힌 분도 많았다는거

우리 이제 알거 많이 아는 정보 홍수 시대에 사는데도

왜 이렇게 힘겹게 삭막하게 사나 하는 생각과 함께...

  

IP : 112.153.xxx.36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2.3.2 2:41 AM (114.201.xxx.138)

    태어난 지 아홉달 된 아기가 죽으며 눈물을 흘리다니......

  • 2. ..
    '12.3.2 2:43 AM (114.201.xxx.138)

    자식보다 부모를 우선시해야 도리인 시대를 산다는 건.

  • 3. 오오
    '12.3.2 2:49 AM (222.239.xxx.216)

    이런 얘기 들으면 답답해요..
    저도 저 시대에 태어나면 어쩔수없었겠지만 참 바보 같죠
    상중이라 안되고 뭐해서 안되고 뭐이리 안되는게 많은 시대인지..(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요)
    아프면 바로 병원 가야지..
    생으로 죽었다는 표현이 너무 가슴 아파요

  • 4. ,,,,,
    '12.3.2 2:49 AM (216.40.xxx.139)

    가슴이 아파 깨질거 같네요....너무 슬픈글인데..님 미워요.. 울게생겼네..

  • 5. ///
    '12.3.2 3:05 AM (211.49.xxx.81)

    이 새벽에 눈물, 콧물 줄줄 ㅜㅜ
    너무 가슴이 아프요..

  • 6. ...
    '12.3.2 3:24 AM (222.121.xxx.183)

    너무 무섭고 싫어요..

  • 7. 나비부인
    '12.3.2 4:22 AM (116.124.xxx.146)

    恨.
    부모가 죽으면 뒷산에 묻고
    아이가 죽으면 마음에 묻는다고.
    그 절절한 회한과 아픔,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네요.

    우리 아기 우지마라
    네가 울면 저녁별이 숨는다...


    저도 저장해놓고 가끔 읽어보아야 겠어요.

  • 8. ㅠㅠ
    '12.3.2 8:18 AM (58.145.xxx.127)

    오늘 엄청 바쁜데...

    눈물바람에 시야가 뿌옇습니다.

    에휴....

  • 9. 화가 나요.
    '12.3.2 8:44 AM (211.246.xxx.83)

    두번은 못읽을 글입니다.저에겐...
    시대상황을 공감 못하는 제탓이겠지만 무남이가 한없이 가여워서 화가 납니다.
    모성이 효성에게...

    요즘 분별없는 자식사랑이 차라리 안전하게 느껴지는 참 아픈 글입니다.

  • 10. ..
    '12.3.2 8:47 AM (222.112.xxx.157)

    어제 새벽에 깨서 이글을 봤는데 가슴이 먹먹한게 계속 생각이 났어요.. 넘 슬퍼요

  • 11. 아이고
    '12.3.2 10:32 AM (210.216.xxx.200)

    회사 출근해서 이거 봣다가 아침부터 눈물나고 계속 생각나서...
    괜히 봤어요. 그 할머니 슬프다고 해도 화나요. 왜 애를...그냥 데리고 계셨는지..

  • 12. 그땐 그랬지
    '12.11.2 11:22 AM (210.115.xxx.46)

    그 때가 1940년대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전쟁 분담까지하여 헐벗었던 시절.

    제 어머니도 밤낮없이 길쌈을 하다 첫딸을 잃었다고 항상 통탄하셨지요.
    요즘 보면 미련한 짓인데, 그땐 어쩔 수 없었나봐요.

    이 할머님은 참 대단하세요.
    70이 넘어 한글을 배워 이리 투박하면서도 섬세하게 써놓으신 것을 자녀들이 책으로 펴냈었대요.
    할머니만의 초판본은 절판되었고 작년인가 따님의 글과 같이 엮어서 다시 책이 나왔어요.
    돌아가셨지만 참 가슴저린 글을 남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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