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매우 선량한 지인 두 명이 뜻하지 않은 송사에 휘말려 맘고생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어제 사뭇 불미스런 사건을 하나 겪었다. 구체적인 정황을 털어놓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될 것이 없기에 적지 않겠지만, 그런 저런 일들을 보고 겪으면서 내가 그동안 인생에 대해 취해온 태도랄까, 이런걸 좀 점검해보게 됐다.
지난 삼십여년간 나는, 오는 사람(일)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일) 잡지 않는다는 자세로 살아왔던 것 같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가늘고 길게, 끝끝내 버티다 보면 해뜰날도 있겠거니, 뭐 그런 소극적인 생각을 주로 해왔던 것 같다. 뭔가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그러지 않았다고 딱히 뭐 뾰죽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긴 했다. 부득불 욕심을 부린게 있다면 집안 기둥 뿌리 뽑아가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한 일 한 가지 뿐인데, 심지어 그러고 나니 아무런 여한이 없어져서 그뒤로는 인생을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있는 지경이다.
그냥,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되도록 친절한 마음을 잃지 않으며, 하는 일이 다소간 보람되고 큰 사고가 없기만을 바랐다. 숲속의 나무나 들판의 풀잎처럼 고요히 머물다 고요히 사라져도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숲속의 나무나 들판의 풀잎이라 해도 바람은 결코 빗겨가지 않는다. 분명히 용기를 내야할 때 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를 구해야 할 때 구하지 않으면 사악한 기운이 나를 침범하게 마련이다. 얼마 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아래와 같은 글귀를 보고 순간적으로 마음에 반성이 되었던 적이 있다.
가진게 많아도 겸손한 사람을 우러르고
가진게 없어도 기개있는 사람을 가까이한다.
곰곰히 지난 몇 년을 돌아보니, 나는 겸손했지만 가진게 없었기 때문에 그 겸손은 별 의미가 없었고, 무엇보다 나쁜 점은 기개조차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딴에는 대범하고 겸손하려 한 것이 (힘을 가진) 상대방에게는 비굴함으로 이해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조차 겸손과 비굴이 혼동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건, 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건 신경쓰지 않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지만,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기만하게 놔두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절반쯤은 내 탓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도록 방관한 셈이니까 말이다. 아닌 길을 가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역시 무책임하다. 애초 그 길을 가지 말았어야 하고, 일단 들어섰으면 최선을 다해 사고를 방지할 일이다. 그것은 전혀 구차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소극성을 탈피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마음을 다해 집중하며 살고 싶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기 마련이므로, 떠나간 것에 미련을 두기보다 다가올 것을 기대하며 스스로를 갈고 닦자. 중요한 것은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 그리고 살아 있는 영혼을 유지하는 일이고, 다른 것은 모두 그 다음이다. 가진게 없는데 기개마저 잃으면 정말 아무 것도 없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