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변명이라고 해 볼까요.
네살 두살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아프네요.
작은애 나았다 싶으니 큰애가 호되게 아팠다가
큰애도 좀 나아가니 이제는 제 차례인지
몸살 + 콧물 + 고열 + 기침 종합 감기인가봅니다.
저희 남편은,
순조롭지 못한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해요.
예를 들면 요즘과 같이 아이들이 아프고 저까지 연달아 아픈 이런 상황에,
아이들 아픈 상태를 궁금해 한다거나 잠깐이라도 안아준다거나 하지 않구요,
저마저도 아플 땐, 제가 느끼기에 자기 밥도 제대로 못 챙겨주는 저의 이런 상황을 마뜩찮아 하는.. 그런 사람이지요.
다른 때는 점심 먹고 오후에 출근하는 사람인데, 애들이 아프거나 제가 아프거나,
암튼 누구라도 손길 조금이라도 도와줬으면 하는 상황에선 늘 오전에 줄행랑치듯 일찍 나가버려요.
그래서 제가 오후에 문자라도 보내서 밥은 먹었냐, 나 좀 도와주면 안되냐, 서운하다.. 이렇게 말하면
그래 내가 못났다, 늘 나는 생각도 짧고 나쁜놈이다, 이제 그만 좀 하자 - 이런 식으로 나오는 사람이지요.
6년 살다보니 그런 남편에게 적응했다기 보다는 포기를 하게 되어서
도움같은건 애시당초 바라지도 않고 그저 마음 속으로 원망하면서 어떻게든 저 혼자 이겨내보려 하지요.
그런데 이번엔 많이 힘드네요.
애들이 길게 아픈 것도 힘들었고, 네살 된 큰애 투정이 요즘 장난 아니라서
거기 장단맞춰 살펴주는 것도 힘들던 차에 몸까지 아프니,
애먼 아이들만 혼나네요.
큰애도 징징대다 혼나고, 이제 갓 10개월 된 작은애도 우는데 시끄럽다고 소리도 빽 질렀어요.
작은애가 책을 손대니 큰애가 발로 밟아서 작은애가 막 울길래 큰애 혼내면서
그래 어디 너도 밟혀봐라, 이렇게 밟으니까 좋냐? 하면서 애 손도 밟았어요.
간밤엔 큰애가 유독 저를 찾고, 겨우 재워놓으니 작은애가 새벽녘에 안아재워달라고 떼를 쓰며 울고
비몽사몽,, 그 와중에 남편은 거실에서 티비보면서 과자 뜯어먹고 있었는데요.
남편한테 가서 작은 애 좀 안고 있어달라 하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한 2-3분 안아서 얼래다 애 울음 안그친다고 저한테 오히려 더 짜증낼게 뻔해서 그냥 저 혼자 버텼지요.
애들이 불쌍하지요.
제가 오죽하면 달력에 빨간펜으로 '밟지 말자' 라고 써놨겠어요.
너무 머리가 아파 거실에 잠깐 누워있으니 작은애가 기어와서 기대고
그 꼴 또 못보는 큰애가 작은애 밀치고, 그래서 작은애 또 울고,
그러면 저는 또 큰애 밀치고, 결국엔 셋이서 같이 부여안고 울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에요. 이번엔 너무 길게 가네요.
내일은,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큰애한테도 오냐오냐 내새끼~ 하면서 웃는 얼굴 보이고 싶고,
작은애도 허리가 바스라질지언정 하루 종일 아기띠로 안고라도 있고 싶은데,
남편은 내일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서
자기 볼 일 다 보고, 샤워하고, 스킨로션바르고 향수 뿌리고 부리나케 나갈테지요.
그러면 저는 또 마음이 꼬여서 애들한테 고운 시선 못 보낼테구요.
제가 힘들다, 애 좀 같이 봐 달라, 했더니 남편이 대뜸 도우미 구하라네요.
도우미.. 당장 다음달에 갚아야 할 돈이 천만원인데, 도우미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도우미.
이제 곧 남편이 들어올 시간인데,
또 어찌나 인상쓰며 퇴근할지 그 생각에 저는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그냥 애들 자는 방에 들어가서 자는 척 하다가 자려구요.
남편은 남편이고, 애들은 애들인데.
남편한테 받은 설움을 왜 애들한테 푸는지.. 나쁜 엄마죠.
내일은 애들도 좀 덜 칭얼대고 제 감기도 좀 나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좀 다정하고 따뜻한 그런 엄마이고 싶구요,
엄마가 방긋방긋 웃어서 가정의 분위기가 화목하고 올바른 그런 집이었으면 좋겠어요.
늘 마음 뿐, 좋은 말은 늘 메모만 해 둘 뿐,
저는 영영.. 그런 사람은 되지 못할건가봐요.
애들한테 미안하고, 부끄럽고, 면목없고,
내일은.. 제발 좀.. 제 화를 안으로 안으로 잘 삭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