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요 며칠 나꼼수와 비키니, 그리고 그에 찬성하는 여성과 반대하는 여성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에 이리 귀를 열며 민감한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건 제 20대에 대한 이야기예요 여성주의 우리 시대에는 가장 민감한 이슈였고, 또 성희롱과 성담론에 대해
입을 열기 위해 싸우고 전투적이고 또 그만큼 미숙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만큼 미숙했기에 지금 그 때의 미숙함이 상처이든 상처 줬든 지금 나의 정체성을 자리잡는데
도움 됐다 생각하고요
김광석이 말하잖아요 20대는 유리 같은 세대라 자신을 비추기도 하지만 깨지기도 쉽고 그만큼 상처받는다고요
그 때, 성희롱을 하는 남성에게 당하는 여성의 고통을 전달하기 위해
가장 강조한게 '피해자 중심주의'였고 이것을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기 위해 많이 싸웠죠
피해자가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성희롱이다 라는 정의가 과연 어느 선에서 가능한가는
너무 다양한 사건에 하나로 적용하기에는 폭력적인 원칙이다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 때는 그게 필요했습니다
그게 폭력적이더라도 여성 입장에서는 분노할만한 성희롱이 사회 곳곳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당연하다 믿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여성이 불평등한 한국 사회에서' 는 당연한거다라기 보단
정말 절대적으로 당연한 원제인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지 않는 사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란 걸 깨닫았던
경험이 있었죠.
미국 대학에 아주 잠시 방문했던 시절,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있던 강의실 안에서 였습니다
진보적이라 인기 높던 한 교수가 있었는데, 그는 위트있는 표현으로 인기 있었죠.
그가 당시 대학 안에서 이뤄지던 대학안 노동자들의 파업을 어디까지 지지할 것인가에 대해
대학 본부 측에 대해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대학 안 노동자들의 파업을 탄압한다라고
비판했던 구절이 있다 생각합니다 당시 그 대학에서 그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대학 본부측을 점거하며 농성한 학생들의 과격 양상이 과연 학습권 침해인지 아닌지 학생들 사이에서
논쟁이 뜨거웠던 시기라, 민감한 핫 포테이토였죠.
그리고 그 교수는 거기에 대해 거침없이 대학 본부 측을 욕했고 그게 진보적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가 강의 중에 '대학 본부 측은 사과를 깨물기만 원했다'라는 다소 중의적인 의미로
자칫 해석하자면 성적인 뉘앙스의 표현을 했어요 사과를 깨물다던가 복숭아를 깨물다던가로
제가 지금은 영어를 다 까먹어서
정확한 원문을 옮기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미국 영국 속어로 여성의 단 맛을 보다라는 식의
섹슈얼한 코드의 중의적 의미가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한 백인계 여학생이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열매의 즙이 꽤나 달콤했겠죠.'라고
맞받아쳤어요. 이것도 중의적인 성농담이죠.
강의실 안에는 웃음이 일었는데 거기에는 분명 그 섹슈얼한 코드에 대한
농담을 이해했다라는 웃음이었어요. 교수도 함께 '그거지. 그 즙이 독일지도 모르고'라 맞장구 치며 웃었구요.
제가 지금 이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는건 이게 미국 대학가에서 큰 논란거리가 되며
한국에 들어올 때 이와 관련한 레포트를 꽤 길게 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 수업시간에
참관했던 사람이구요.
왜 논란이 됐냐면, 그 당시 수업을 듣던 인도계 여성이 이 수업을 공개적으로 여성을 모욕하고
자신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고 이것이 섹슈얼 하라스먼트가 아닌가에 대해 공개 문제화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특히 이 성희롱? 성적 괴롭힘 문제에 예민하기 때문에 곧 위원회가 소집되고
그 당시 학내 신문을 통해 다양한 논쟁이 오갔습니다
여기서 고려해야할 것은 일단 피해자 중심주의로
그 여성이 인도계 여성으로, 이런 성적 농담이 강의실 안에서 받아들여지는데 익숙해지지 않았다라는 걸
인정하고 그 여성의 입장을 가장 먼저 배려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 성적 농담을 한 그 교수와 백인계 여성과 그 농담에 같이 웃은 사람들 모두가
이 인도계 여성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가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기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죠. 그 정도의 농담이 그리 예민한가에 대해
받아들여지는 사람층은 다양했고 실제로 백인계 여성이 맞받아친 부분, 다른 여성들이 같이 웃은 부분.
단지 그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여성이 인도계로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에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럼 그 여성의 성적 수치감은 누구 책임인가.
인도라는 여성의 성적 발언이 금기시화 되고, 특히 미국 유학까지 올 정도로 카스트가 높았던 그녀는
성적 발언이 자기 앞에서 오간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어하는 게 아닌가.
그 여성의 수치감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여기에는 여성과 남성 포함- 이 그 수업을 통해 주고받았던
대화들의 유머스러운 맥락은 사라지며 부정되고 모독되야 하는가에 대한 반발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이 인도라는 특성상 미국 안에서는 제 3세계 여성의 수치감이 더 존중받아야하는건
그녀가 미국 사회에서 인종적, 문화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라는 의견이 여기 받아쳤고
그녀를 인도 여성이란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다해도 여기는 미국안의 대학이기에
특정한 누군가를 비하할 의도가 아니었다라면
그녀를 배려하는 것 자체가 그녀를 인도인이니 약자다라고 보는 인종주의적 오만이다란 질타까지
정말로 다양하게 쏟아져 내렸습니다
결과는 그 교수가 정중하게 사과하며 끝났습니다
물론 그 동안 그 교수는 논란의 중심에서 매우 괴로워했고요
그럼에도 가장 약한 사람의 수치심을 이해한다며 더 배려하겠다는 사과로 끝났습니다
그건 무릎 꿇음이나 잘못했다가 아니라
그 부분을 미리 인지 못했다라는 인정이었죠. 유감이다로요.쏘리죠.
그리고 그 논쟁이 끝난 듯 했지만 남아있는건
인도계 여성은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여자로 성적 담론 안에서 예민하고 수치스러워할 수 있으므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고 배려받아야할 약자이다
그러니 그녀 앞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각자 자기 말을 다시 한 번 검열해야 한다라는
애매모호한 결론만 남았습니다
제가 같은 아시아 여성으로 느낀건
그 논쟁에서 결국 약자를 배려해준다는 대의는 좋지만
실제로는 아시아 여성은 성적, 문화적으로 약자이다란 이미지만 남아 그게 앞으로 아시아 여성으로
미국 사회에 어우러지는데 장애가 될 것이다라고 느꼈죠
물론 이 논란을 지켜보며 레포트를 쓰며 제가 감탄했던건
피해자 중심주의란 명제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맥락으로 해석되며 이리 다양한 갈등이 나올 수 있다라는
그만큼 진지한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란 것과
어떤 의견이 나와도 막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할 말 다하는 분위기
그만큼의 다양한 입장에 대한 고려와 주장이 다 나온 후에
몇 주에 걸쳐 그 사안을 토론하는 과정의 진중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와요
어느 누구도 서로를 극단적인 용어- '넌 마초야' 넌 성적 차별주의자야
넌 성희롱자야 , 넌 인종 차별주의자야 라는 식의- 언어로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지켜야할 선이 있었죠
저는 이번 나꼼수 사태를 보며 조금 상황은 다르지만, 모두가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봅니다
지킬 선을 지키면서요
그리고 나꼼수가 이 사안을 그저 사과나 가볍게 넘기지 않았음에 감사합니다
분열이 무서운게 아니라, 이리 서로 생각할 시간이 논쟁한 시간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알바든, 중간 이간질이든, 혹은 서로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이 아니라요
이건 누구 편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저 나꼼수든 여성주의든 이번 사태에서 삿대질만 하는 방식에 갈기 갈기 모욕당하는게 슬퍼서 이리 글씁니다
저 역시 흥분해 삿대질 한 순간이 있었기에, 저 자신에게 쓰는 글이기도 하구요
그때 내가 미국 대학의 그 사건에서 배운건 뭐였는가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한참 옛날 90년대 이야기네요 그때 제가 느낀 문화충격이
아마 지금 제가 나꼼수 논란을 지켜보는데 더 민감하고 관심깊어하는 동력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