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웃기지만, 저는 녹색창 '나는 가수다'를 검색 중, 나는... 을 쳤을 때 하위 검색어로 나온 '나는 꼼수다' 가 처음 나꼼수를 만난 계기였습니다. 아마 지인의 추천으로, 혹은 전부터 김어준을 관심있게 지켜보아서 등. 저 말고도 다른 많은 이유가 있으시겠죠.
처음 1화를 듣고, 중간에 꺼버렸어요. 욕설은 두째 치고, 아마추어처럼 마이크 성량 조절을 잘 못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듣기 싫었습니다. 물론 뒤에서 숨어 가카를 무지막지하게 폄훼하는 태도 역시 듣기 거북했고요. 그때까지는 저에게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필요가 있다는 조중동식 억압이 남아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봉주4화를 지난 지금, 저는 나꼼수에 대한 지금의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나꼼수와 같이한 그 시간 만큼 저는 이렇게 변해 있습니다.
봉주4화를 관통하는 시간의 변화 만큼. 토사구팽이라던가요? 작금의 4인방을 보면서 이 같은 사자성어가 언뜻언뜻 머릿속을 두드리면, 마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얇은 칼날이 제 심장을 훑고 지나는 아픔을 느낍니다.
과거 천재로 추앙받던 바이올린리스트가 한참 늙어 텅빈 골목에서 아이 몇을 관객삼아 연주하는 모습과 쓸쓸한 총수의 뒷모습이 오버랩 될 때
다시 종교방송으로 돌아간 김용민의 선량한 음성이 아무렇게나 탄 버스 속을 울리는 장면이 떠오르거나
삼류 일간지에서 모처럼 만에 서슬같은 기사의 맨 마지막 줄에서 -주진우 기자-를 발견 했을 때나.
어느 돼지갈비집에서 유난히 시끄러운 사장님이 '내가 예전엔 말이지~' 라며 깔때기를 들이댈 때.
저는 그들을 애잔하게 보지 않을 자신이 있을 지, 행여 그런 시선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자신이 있을 지 두렵습니다.
여러분, 나꼼수는 각하와 더불어 끝날 방송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방원이 창업 공신인 정도전을 베고
오히려 고려를 끝까지 지키고자 한, 정몽주를 높이 기린것은, 권력의 역설입니다.
이미 세운 조선에 고려를 배신한 정도전은 반역이고, 끝까지 고려를 수호한 정몽주는 시대의 충신으로 높여, 자신의 조선에서 그 신하들은 정몽주처럼 끝까지 충성 할것을 이방원은 원했습니다.
김어준은 그러한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가슴에 품은 그 입니다.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이 집권 여당이 되었을 때, 만약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가 계속 방송이 된다면, 그 여당은 지금의 야권처럼 김어준을 아군으로 생각할까요?
김어준은 벌써부터 그러한 토사구팽의 처지에 놓인 자신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나꼼수는 각하의 퇴임과 동시에 사라질 방송이며, 또 우리에게 어떠한 미래의 보장을 답해 주지 않습니다.
정말 각하만 없어지면 우리에게 밝은 세상이 오겠습니까? 아니죠. 이 빈공간을 진보, 혹은 진보라 자청하는 세력은 자신들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비단 진보 뿐 이겠습니까? 보수, 혹은 보수라 자청하는 세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김어준은 이 빈자리에 들어설 자가 '누구다' 라고 답을 할 능력도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누구는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김어준의 '아니다' 라는 그 누구에 대한 답은 처절하리만큼 단순합니다.
바로 "몰상식" 입니다.
청취자분들. 여러분은 나꼼수가 진보이기에 들었습니까? 혹은 보수이기에 들었습니까? 봉주4화를 관통하는 시간을 단순한 재미로 들었습니까? 아닙니다. 혹시 그렇다면 여러분은 잘못 골랐습니다.
BBK, CNK, 조중동, 재벌기업, 10.26부정선거, 오세훈, 나경원, 부산저축은행, 떡검 섹검, 썩은 사법부, 정봉주 구속, 도곡동 내곡동, 국고를 탕진한 자원외교, 그리고 연기자의 푸른 꿈을 단순 성적노리개로 전락시킨 배부른 돼지 등....
보수라는 위장막을 둘러 치고 온갖 부정과 비리, 동기 동문, 혈족 친족으로 뭉친 국가수탈 이라는, 그리고 그 중심에 한나라와 이명박 이라는 이 모든 몰상식에 대한 졸라, 씨바같은 거부입니다.
하여 나꼼수는 그리고 우리는
모든 몰상식을 거부 하고 상식을 추구하는 "상식추구집단"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보라는 위선으로 그 동안 우리를 교언영색한 자들은 어떻습니까?
콧대 높은 엘리트주의에 젖어, 공자왈 맹자왈.. 비행기타고 저 높은 상공에서 선민,서민,천민, 이래라 저래라.
보수라는 위장막을 쓴 그들과 무늬만 다를 뿐, 그 역시 방관 또는 공조한 '몰상식' 입니다.
11시 59분과 12시1분은 가장 먼 듯 하지만, 결국 12시 정각에 있는 서민의 관점에서는 11시간 차이가 아니라, 고작 2분의 차이가 날 뿐입니다.
최근 진중권 및, 진보언론, 세력이 갑자기 나꼼수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명박이라는 거악이 사라진 자리는 자신들의 차지라는 겁니다. 상상이상으로 커진 나꼼수의 세력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두려운 겁니다. 하여 천재 모짜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르처럼, 모짜르트를 흉내내어 대중들에게 작곡을 던져 보지만, 우리는 그의 선율이 싫습니다. 천재를 넘어보려 곡에 잡다한 기교를 넣어보지만, 그의 음악에는 상식이 없습니다. 모짜르트를 질투한 삼국. 그녀의 코피에도 역시 상식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은 결국 죽는다" 는 명제를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결국 죽는다는 것을 과학적 지식으로 입증 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괴담이 아니라, 졸라게 그럴 것으로 추정가능 한..
우리는 이것을 상식이라 부릅니다.
최초 4인방이 골방에 모여, 나는 꼼수다를 첫화를 낡은 마이크에 녹음하던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존경하는 정치인을 가슴에 묻고 피를 토하는 천재.
평생을 믿었던 신실의 신념에 배반당한 방송국 PD.
거대권력, 거대재벌, 거대언론과 동료의 멸시 속에 홀로 맞선 푸른 기자.
오직 열정으로 바꿔보리라, 이제는 '전' 이라는 그저 추억이 된 퇴물 정치인
그들의 목소리는 '상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토사구팽으로 사라져간 어느날, 이와 같이 몰상식이 떠나간 빈자리는
오직 우리의 힘으로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오직 상식이 채워지기를 우리 모두는 끝까지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