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 관련 재미난(?)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그리고 왜 한국교회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지도 언급할게요.
김홍도 목사와 전 같은 신학대학(감리교신학대학/122년역사) 신학과를 졸업했어요. 아마 두 사람이 신학대학에 들어간 목적은 비슷했을 것 같네요.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독실한 신앙심에 따라 불신자를 교회로 이끄는 목사가 되겠다는 사명감이겠지요. 그런데 한 사람은 13만명 신자를 거느리는 목사가 되었지만, 한 사람은 종교다원주의자(현재는 불교에 더 관심 많음)가 되었지요. 김홍도 목사에게 종교다원주의자는 빨갱이 보다 더 악질적인 사탄일거에요. 그러니 두 사람은 극단의 길로 갈리면서 졸업한 셈이네요.
그런데 재미난 사실이 하나 있어요. 제가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제대로 안하고 삐딱선을 타 종교다원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란 사실. 오히려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잘 소화해서 그에 맞는 길을 잘 걸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후후..
1학년 필수과목인 기독교교리 수업에서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었어요.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사랑하라고 가르침을 줄 때 아멘으로 답하면 3등 신학생, 어떻게 사랑해야 하지 방법론을 찾으면 2등 신학생, 왜 사랑해야 하지하고 근원을 의심하면 1등 신학생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농담이 아닌 진담이었고 이 수업시간에 들은 이야기는 저에게 엄청난 충격적인 것들로 제가 그동안 교회에서 들었던 성경이야기, 교리와 전혀 달랐어요. 예를 들어 이런 거죠. 홍해 바다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은 사실 갈대밭을 건넌 것이다. 아담과 이브이야기는 신화를 기반으로 한다. 예수의 부활은 초자연적으로 3일 만에 실제 부활한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헐헐...
전 모태신앙이었고 고3 1년 동안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 가서 기도한 후 집으로 간 아주 독실하면서 보수적인 모범생이었어요. 그랬던 제가 교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1등 신학생이 되었고 2학년 무렵 회의주의자가 되었죠. 회의주의자는 자신이 의심한다는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의심하지요. 그래서 거의 무신론자가 된 거나 다름없게 되었죠. 그때 괴로운 나날을 보낸 걸로 기억합니다. 교수님의 수업을 같이 들었지만 김홍도 목사처럼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입학하기전의 신앙을 그대로 간직한 채 3등 신학생의 길을 걸었던 학생들도 있었고, 저처럼 아 맞아~ 이것이 진리야 하며 희열을 느꼈지만 결국 내 안의 신념들을 하나씩 걷어내다 거의 남지 않은 밑바닥까지 내려가 버리는 이들로 나뉘어졌지요.
또 하나 재미난 사실은 저같은 지방출신은 학교 기숙사에 대부분 들어가는데 입학 전에 기숙사가 소돔과 고모라(성경속의 타락과 방탕한 도시의 대명사)라는 정보를 듣고 1학기동안 훨씬 비싼 사립기숙사를 들어갔지요. 왜 소돔과 고모라고 불렸냐면 신학대학 기숙사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제재 없이 24시간 개방되고 술과 담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선배들로부터 사탄의 유혹을 받아 빨갱이가 된다는 것 때문이에요. 그런데 1등 신학생이 되고 나서 2학기 때 바로 학교기숙사로 들어갔고 전 그들의 문화에 그대로 동화되었지요. 방탕자가 되었고, 무신론자가 되었고, 운동권이 되었지요.
여기까지 읽고 딱 느끼셨나요? 감신대는 일반 신학대학과 달리 학풍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매우 진보적인 학교였어요. 문익환 목사님의 한신대가 감신대와 비슷한 환경이었지만 한신대는 교단 자체가 진보적인 곳이었고 감신대의 모교단인 감리교는 일반적인 한국교회와 다를 바 없는 보수적인 곳인데도 불구하고 학교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주 의아한 일이지요.
이런 학교문화로 인해 입학하기 전에는 목사님과 같은 신앙으로, 그러나 1학년 때는 장로로, 2학년 때는 권사로, 3학년 때는 집사로, 4학년 때는 평신도로, 졸업할 때는 무신론자가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죠.
그런데 우스갯소리와 같은 일이 실제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일어나지는 않아요. 저와 같이 목사의 길을 포기하고 종교다원주의자가 되는 경우는 소수고 대부분 목사의 길을 가니까요. 다수가 목사의 길을 가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교회 현장에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거지요. 왜냐하면 학교는 현대성경해석학, 현대철학, 현대물리학을 수용한 21세기 현대신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현장인 교회의 신도들은 중세시대의 신앙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 그 엄청난 시간의 괴리를 좁힐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그대로 가르치면 당장 이단이라 쫓겨나기 때문에 현실과 타협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 종교계에서 파장이 있었던 20세기 종교재판이 있었어요. 피고인은 앞서 언급한 교수님과 총장을 지냈던 교수님이었고, 원고는 바로 김홍도 목사를 대표로 하는 감리교 교단의 교리수호대책위원회라는 곳이지요. 신앙검증 재판으로 두 교수님은 교수직과 목사직을 모두 박탈당했지요. 죄목은 바로 종교다원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씀을 하셔서 종교다원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두 분을 학교에서 교회에서 쫓아냈지요. 두 교수님은 용기있게 자신의 신념을 얘기했고 20세기에도 한국교회가 살 길을 모색한 죄밖에 없었어요. 중세적 신앙으로는 교회가 오히려 사회에 해가 될 수 있는 것을 알고 계신 거죠.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이야기에 김홍도 목사와 같은 삯군들은 자신들 밥그릇을 뺏길 것 같은 두려움에 칼날을 휘두른 것이죠. 그때 학생들과 교단의 대립이 아주 극렬했어요. 참으로 안타까웠던 아니 분노한 사건이었습니다.
두 교수님 같은 분들이 어린 양과 같은 신입생들의 신앙을 무참히 깨는 일을 하셨냐 하면 바로 이것 때문이죠. 네 스스로 소화하지 않는 신념들을 모조리 버리지 않으면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것. 이제껏 고3시절까지의 신앙은 교회에서 목사님이나 선생님들이 가르친 것을 합리적 의심 없이 아멘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건 본인 것이 아닌 즉, 세뇌의 학습에서 비롯된 신앙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신앙은 자발적인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흔들릴 수 있고 합리적 생각을 하는 현대인들을 전도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과학적이며 자발적 의심을 거쳐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자기화한 신앙을 쌓을 필요를 말하는 거예요.
한국교회 보수화의 근본 이유는 유일신앙과 문자주의적 성경해석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길기 때문에 나중에 기회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소신(학교에서 받은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과 타협(목사직을 유지한다는 것)간의 갈등의 문제는 신학생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시민운동가는 소신만으로도 운동이 가능하지만 정치인이 되어 정당에 들어가게 되면 소신을 누르고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정치적 타협이 불의와 결탁이라는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독불장군에서 벗어난 융통성과 소통이란 긍정적인 면도 있을 것입니다. 소신과 타협의 중용이 필요한데 그것이 어렵죠. 그런데 신학생들은 소신과 타협에서 무게추가 너무 한쪽으로 쏠린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너무 안타까운 현실을 생산해냅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는 현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