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는 여성을 비하하지 않았다. 여성을 너무 동등하게 본 것이 문제이다.
나는 남편과 성적으로 동등한 관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 속의 나는 결코 성적으로 동등하지 못하다.
어떤 분이 질문 글에 ‘초콜렛복근과 가슴의 차이가 뭐냐.’ 라고 했는데, 초콜렛복근에는 열등감이 없고 가슴에는 열등감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 여성들에게는 성적 정체성에 있어서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있다.
그것은 이 땅에 오랜 세월 있어온 성적인 지배구조에 기인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씨받이, 첩, 성고문의 역사를 지나서 현재에는 아버지가 딸을 십여 년 간 성폭행, 교사가 학생을 성추행, 각양각색의 강간, 매춘, 도가니, 나영이, 장자연리스트, 성상납 연예인, 아나운서는 다 줘야 발언 등등. TV만 틀면 끝도 없는 성과 관련된 사건들.
이 사회적 사건들 속에 여자는 여전히 성적 도구, 피해자의 위치에 자리매김해있는 것이 현실이다. 피해의식은 망상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현실감각이다.
여성의 몸매를 두고 표현의 자유를 운운할만큼 우리사회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국가가 아니다.
남고생 아들래미가 쫙붙는 티에 스키니진을 입고다니면, ‘학생놈의 새끼가 공부는 안 하고…’라고 말한다. 여고생 딸래미가 가슴골이 드러나는 나시티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면 ‘기지배가 겁도 없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라고 한다.
모르는 여자가 가슴시위하면 발랄한 표현의 자유이다. 하지만 내 마누라나 다 큰 딸래미가 길에서 비키니 시위하겠다고 하면 집안이 발칵 뒤집힌다. 정봉주 역시 자신의 부인이 벗은 사진을 대중에게 돌린다면 빡 돌 것이다.
어찌하여 부인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주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남자들이 낯선 여자의 노출을 어떤 자세로 바라보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인이나 딸의 문제가 되는 순간, 남자들은 여자들만 느끼던 피해의식을 공동으로 느끼게 된다.
여성들은 인터넷에 걸그룹멤버가 너무 짧은 치마로 팬티가 살짝보이는 캡쳐화면을 보면 불쾌감이 느껴진다. 같은 여성으로서 내가 함께 농락당하는 묘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남성들은 짐승돌이 웃통을 벗어던져도 관심없다. 그것은 남성들의 육체가 성적으로 착취당한 역사적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놈의 복근은 그저 그놈 것일 뿐이다.
여성들이 느끼는 지나친 노출에 의한 불쾌감은 큰 가슴에 대한 질투가 아니라, 여성 스스로 자신을 성적 대상화 시키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다.
그러면 수영장에서의 비키니는 왜 괜찮은가?
그 노출은 ‘피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몸매자랑과 즐기기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피해의식을 자극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롭다는 남성을 즐겁게 해주기 스스로 벗은 사진을 보내는 행위나 정치적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몸을 사용하는 행위는 우리사회에서 오랜 세월 수단화되어온 여성의 몸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여자들에겐 불쾌감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의식은 혼자 만들어낸 못난 자괴감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현실과 우리의 역사가 만들어낸 집단 무의식이다. 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와의 관계의 역사이다.
남자들이 여자들 앞에서 성희롱이 되지 않도록 언행을 조심하는 것 또한 무의식적으로 이런 여성의 피해의식을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가 페니스 끝에 달린 둔감한 존재가 아니라 민감한 존재였다면, 이 미묘한 감정의 문제를 알았을 것이다. 이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무의식과 감정의 문제이다. 김어준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에 있어서 약자’라고 말했다. 잘 알고 있다. 다만 머리로만 알기 때문에 아쉬울 뿐이다. 사실 남자가 그걸 다 안다면 그것도 깜놀할 일이다.
나꼼수는 사과를 할 의무가 없다.
하지만 나꼼수가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불쾌했다니 미안해.’라고 사과한다면… 그것은 매우 배려적인 행위일 것이다. 남성은 잘못을 했을 때에만 사과하지만, 여성들은 잘못하지 않았어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 사과를 하곤 한다.
내가 우리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친구가 너에게 사과를 한다면 그것은 그 아이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야. 그 아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넓은 마음으로 사과하는 거야.’
그동안 나꼼수를 사랑해온 수많은 여성팬을 위해서 그들이 과연 기꺼이 그것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마초라고 부르는 김어준. 그에게 이런일로 사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에 50원 건다.
만약 그들이 사과를 한다면, 왠지 존경심이 생길 것 같다.
http://www.ddanzi.com/blog/archives/62679
이번 비키니 문제에 대해 여성들의 입장을 정말 잘 대변해주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