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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내 나이 서른 여섯, 무슨 꿈을 가질까요..?

나안죽었어 조회수 : 3,094
작성일 : 2012-02-01 21:57:34

 

77년 뱀띠..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여섯 되었죠.

 

지방 국립대 불문과 졸업해서 공기업 입사해서 해외 파견으로 프랑스도 다녀왔어요.

여러가지 이유로 퇴사하고 부모님 계시는 고향, 지방 광역시로 내려와 영어 가르치는 일 하다가 결혼하고,

큰애 출산하면서 퇴직한게 벌써 3년 전이네요. 그새 둘째도 생겼어요. 이제 9개월이에요.

 

남편은 작은 학원을 경영합니다. 학원을 열면서 대출받은 부채가 있긴 하지만

일단 양가 부모님께 들어갈 돈 없고, 학원 운영이 웬만큼 되어서 말 그대로 그럭저럭 먹고 살만해요.

멋모르고 우왕좌왕하면서 큰애 키우고, 외동으로 키우긴 싫어 둘째 낳고 기르다보니 제 나이 서른 여섯이에요.

 

다음달 3월이면 이제서야 큰애를 어린이집에 보내요.

둘째가 아직 어리니 아직 한참은 제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만

큰애가 벌써 네살이 되고, 어린이집에 보낼 만큼 키우고 보니 한편으론 시간 참 빨리 흐르는구나 싶어요.

 

문화센터 시간표가 나오면 큰애 시간표 알아보기 급급했는데,

이번 봄 부터는 아이가 문화센터에 다닐 일이 없으니 제가 뭐 할만한거 있을까 살펴봤어요.

남편이 오후에 출근하니 둘째는 오전에 봐 줄 수 있어서 오전 동안 시간이 가능한데,

시간 맞춰 할 수 있는건 홈패션과 양재, 그 수업 하나 있더라구요.

요가라던가 댄스수업 같은 좀 활동적인게 있길 바랐는데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저 뭔가 저 혼자 가서 할 수 있다는게 좋아서 미싱이나 배워볼까..하고 등록하려다가 망설이고 있어요.

 

제 나이 서른 여섯.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원 정도 다니는 언니들이면 정말 다 큰 어른 같더니

정작 제가 대학 졸업해 보니 그때도 애 같았고, 그 무렵에.. 그렇다면 서른 중반쯤 되면

뭔가 자기 세계라는게 확실한, 정말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나다를까 제 나이가 이제 서른 여섯인데도.. 자기 세계는 무슨 자기 세계.. 어른은 무슨 어른..

아직도 한참 어린 아이같고. 저 스스로 일군 무엇도 없구요.

오늘은 왠지 그게 참 씁쓸하네요.

 

저보다 연배가 있는 언니들은 제 나이를 보면 그 나이면 뭐든지 하겠다! 하실지도 몰라요.

저 역시도, 이제 갓 스물 예닐곱 된 후배들이 뭘 해야될지 모르겠어요 하면

아이고 내가 네 나이면 뭐든지 도전해 보고, 연애도 맘껏하고 공부도 할거야!! 하니까요.

 

그런데 어느 상황에나 그렇듯,

저는 제 나이에 대한 확신도, 미래에 대한 분명한 희망도 없어요.

그저 남편 학원 잘 되서 집안 가계 잘 돌아가면 당장은 고민 없겠지..

남편 학원에 100% 영어 수업이 가능한 강사가 필요하면 그때는 내가 둘째 어느정도 키우고

같이 학원일을 해야 되겠지.. 영문과 전공이 아니라 좀 그런가.. 사이버 대학 영문학 학사라도 받아야 하나..

미래에 대한 꿈도 계획도 딱 그 정도에요.

 

저는 어릴 때 부터 그랬어요.

저 국민학교(그쵸.. 저는 국민학교 세대에요 ^^) 고학년 무렵에

저희 아빠가 제가 너무나 무기력하다며 걱정하셨는데, 그 무기력이 아직도 여전한 것 같네요.

사람 만나는거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낯가림이 있어서 두루두루 사귀지를 못하고,

책 읽는 것 좋아하지만 그걸 어떻게 활용하거나 연장하지는 못하고 그저 소일거리로 독서해요.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큰애도 작은애도 오롯이 제가 보듬고 키워오고 있지만

딱히 좋은 엄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부인도 아닌 것 같구요.

늘 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저는 그냥 둥둥 떠 다니는 사람 같았지요.

참 철 없지요.. 나이가 서른 여섯인데요.

 

오늘 밤은 문득, 제 나이가 낯설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의 강을 건너 이제 곧 마흔이 되고,

아이들이 자라 제 품을 떠나고 쉰살이 되고..

10년쯤 후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두려워지네요.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 제가 밖에 나가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긴 어려우니

집에서 할 수 있는 무슨 생산적인 일이 있을까요, 무슨 공부를 해 볼까요,

주변에 사려깊은 선배 언니들이라도 몇 분 계시면 제 마음 털어놓고 다독임이라도 받으며

충고도 듣고 싶은데 그러기엔 가까운 언니들도 없구요..

 

종종 .. 나는 왜 이렇게 외떨어져 있는걸까.. 나는 영영 이렇게 살아야 하는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왠지 오늘은 그 생각이 유독 짙어지는 밤이네요.

IP : 121.147.xxx.63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2.2.1 10:15 PM (121.189.xxx.139)

    저랑도똑같네요 77년생,지방국립대 일문과,전 사회경험거의없고 이제 큰애가 학교들어가고 둘째가 6살인데 올해처음으로 유치원을보내네요 이제 제법 제시간을가질것같은데 머리는 다 굳었고 뭘해야할지모르겠네요 ㅜ ㅜ

  • 2. 34
    '12.2.1 10:16 PM (124.54.xxx.64) - 삭제된댓글

    34세 저도 그래요...

    그래도 원글님은 영어되니 과외나 등등 길열기가 좋네요

  • 3. ..
    '12.2.1 10:22 PM (124.195.xxx.106)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던 사촌동생이 올해로 서른일곱 된다고 해서 놀란..저는 그보다 좀 더 먹은 나이예요.
    어제 우연히 KBS 여성공감이란 낮프로에 어떤 가정의학과 의사가 나와서 하는 말이
    요즘은 서른을 노총각이라고 여기지 않고 60을 노인으로 여기지 않듯이
    지금의 나이는 자기나이 * 0.8을 하면 보통 우리가 생각하던 예전의 나이개념이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렇담 아직 20대후반이시네요 ㅎ

    실제 나이보다 혈관나이,신체나이,감성나이를 젊게 유지하도록 노력하라고 하더군요.
    중장년기의 삶을 좀더 길게 가져가기 위해서요.

    당장의 생산적인 일 물론 좋지만 그러기 위해서 좀더 멀게 시야를 잡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꼭 그걸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으시니까요^^

  • 4. 댓글 다시 달아요
    '12.2.1 10:24 PM (14.47.xxx.149)

    저도 외동아기가 4살인 77이에요.
    그래도 나름 공부를해서 서울에 있는 상위권대학 상경계 졸업했는데 그뿐이네요.
    지금 어떤꿈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글쓰신것처럼 독서 또한 소일거리일뿐이네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겁만 나고 새로운것에대한 두려움만 커져서 항상 같은곳에만 있어요.

  • 5. ...
    '12.2.1 10:43 PM (112.158.xxx.111)

    책에서 읽은건데 인생을 하루로 측정하면요 예를들어 평균수명인 80살을 24시간이라고 계산을 해보는거에요.
    그러면 40살은 아직 낮 12시 밖에 안된 시간인거죠.
    우리가 낮 12시에 하루 시간 다 갔네~ 그러지는 않자나요.
    아직 12시면 할일이 충분히 많고 계획도 많이 세울 수 있고
    하고 싶은일 계획 세워서 힘차게 하세요~^^ 다른 분들이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시리라 믿고
    전 그냥 용기를 드리고 싶어서요~

  • 6. very_kiss
    '12.2.1 11:12 PM (125.176.xxx.67)

    님 글에 맘이 시큰해져요.. 똑같은 생각을 가끔 심각하게하는 77년생이네요. 그러게요 늘 막연한 미래나이에 현재보다 나은 모습을 꿈꾸며 살았는데..늘 실망하고 상심하네요. 저는 아직 가정도 이루지못해 더 그런거 같아요 지금부터 십년만 다르게 살아도 45에 내모습은 다를거 같지만 지금껏 그랫듯이 그때 내 모습 또한 변함없겠지 생각하면 답답하기만하네요.

  • 7. 제생각엔
    '12.2.2 12:48 AM (113.199.xxx.182)

    씨앗을 심으세요.

    지금은 아이들 곁을 지켜주시되
    아이들이 조금 자라서 엄마손이 당장 필요하지 않을때 펼칠수 있는 꿈을.
    그때가서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아주 많이 힘들수도 있으니
    지금 조금씩 조금씩.. 시작해보세요.

    그래서 저는 지금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저또한 석사마치고 대기업 다니다가, 유학꿈 접고 남편이랑 결혼해서
    원글님과 같은 이유로 전업으로 두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 5년쯤 후면,, 아이들도 차츰 커갈테고
    10년쯤 후면,, 엄마는 집에서 뭐하느냐고 할테죠.
    그때쯤엔 제 일을 하려고..

    아이들 재워놓고 책을 폅니다.

    우리 힘내요. 인생 길~대요.

  • 8. 임신중인 77 이네요
    '12.2.2 1:59 AM (203.226.xxx.102)

    저도 공부한답시고 대학원까지 다녔지만
    머크게 인생에 이룬게 없네요
    일도 관뒀구요 애가 나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고민이지만
    내인생은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는가
    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 이네요
    참 사는거 힘들고 고되다는 생각 들어요

  • 9. qksrk
    '12.2.2 10:06 AM (211.115.xxx.194)

    저도 백년만에 로긴합니다....제글인줄 알고 넘 방가워요..저도 지방국립대..어문학과....아이가 4살 ....님과 같은 고민을 애 낳고부터 하다가 젖데고 무슨일이든 다시해보자 해서 지금 일하는 중이에요.
    젖물리고 애 재우고 난 뒤 수많은 밤을 님과같은 고민을 햇어요....시간이 없어서 쪽지 남길께요 나중에.

  • 10. qksrk
    '12.2.2 10:07 AM (211.115.xxx.194)

    앗 쪽지가 안된다네요..;;혹시 멜주소 잇으신지요

  • 11. 나야나
    '12.2.2 10:41 AM (112.150.xxx.217)

    저두 지방국립대77년생..외동5살을 키우고 있네요..저도 계속 전업이다가..둘째는 포기하고 올해부터 직장 다닐려고 준비중입니다. 사는것이 다....거기서 거기죠..원글님은 어쨎던 남편분이 학원을 하시니까 영어쪽으로 나가시면 되겠네요. 저도 첨엔 미싱, 한식, 미용까지 다 해봤는데..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돈 아까웠던 것 같아요..차라리 자기 스킬 쌓는데 더 투자하고 악기나 미술에 더 투자할것 하는 후회가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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