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뱀띠..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여섯 되었죠.
지방 국립대 불문과 졸업해서 공기업 입사해서 해외 파견으로 프랑스도 다녀왔어요.
여러가지 이유로 퇴사하고 부모님 계시는 고향, 지방 광역시로 내려와 영어 가르치는 일 하다가 결혼하고,
큰애 출산하면서 퇴직한게 벌써 3년 전이네요. 그새 둘째도 생겼어요. 이제 9개월이에요.
남편은 작은 학원을 경영합니다. 학원을 열면서 대출받은 부채가 있긴 하지만
일단 양가 부모님께 들어갈 돈 없고, 학원 운영이 웬만큼 되어서 말 그대로 그럭저럭 먹고 살만해요.
멋모르고 우왕좌왕하면서 큰애 키우고, 외동으로 키우긴 싫어 둘째 낳고 기르다보니 제 나이 서른 여섯이에요.
다음달 3월이면 이제서야 큰애를 어린이집에 보내요.
둘째가 아직 어리니 아직 한참은 제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만
큰애가 벌써 네살이 되고, 어린이집에 보낼 만큼 키우고 보니 한편으론 시간 참 빨리 흐르는구나 싶어요.
문화센터 시간표가 나오면 큰애 시간표 알아보기 급급했는데,
이번 봄 부터는 아이가 문화센터에 다닐 일이 없으니 제가 뭐 할만한거 있을까 살펴봤어요.
남편이 오후에 출근하니 둘째는 오전에 봐 줄 수 있어서 오전 동안 시간이 가능한데,
시간 맞춰 할 수 있는건 홈패션과 양재, 그 수업 하나 있더라구요.
요가라던가 댄스수업 같은 좀 활동적인게 있길 바랐는데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저 뭔가 저 혼자 가서 할 수 있다는게 좋아서 미싱이나 배워볼까..하고 등록하려다가 망설이고 있어요.
제 나이 서른 여섯.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원 정도 다니는 언니들이면 정말 다 큰 어른 같더니
정작 제가 대학 졸업해 보니 그때도 애 같았고, 그 무렵에.. 그렇다면 서른 중반쯤 되면
뭔가 자기 세계라는게 확실한, 정말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나다를까 제 나이가 이제 서른 여섯인데도.. 자기 세계는 무슨 자기 세계.. 어른은 무슨 어른..
아직도 한참 어린 아이같고. 저 스스로 일군 무엇도 없구요.
오늘은 왠지 그게 참 씁쓸하네요.
저보다 연배가 있는 언니들은 제 나이를 보면 그 나이면 뭐든지 하겠다! 하실지도 몰라요.
저 역시도, 이제 갓 스물 예닐곱 된 후배들이 뭘 해야될지 모르겠어요 하면
아이고 내가 네 나이면 뭐든지 도전해 보고, 연애도 맘껏하고 공부도 할거야!! 하니까요.
그런데 어느 상황에나 그렇듯,
저는 제 나이에 대한 확신도, 미래에 대한 분명한 희망도 없어요.
그저 남편 학원 잘 되서 집안 가계 잘 돌아가면 당장은 고민 없겠지..
남편 학원에 100% 영어 수업이 가능한 강사가 필요하면 그때는 내가 둘째 어느정도 키우고
같이 학원일을 해야 되겠지.. 영문과 전공이 아니라 좀 그런가.. 사이버 대학 영문학 학사라도 받아야 하나..
미래에 대한 꿈도 계획도 딱 그 정도에요.
저는 어릴 때 부터 그랬어요.
저 국민학교(그쵸.. 저는 국민학교 세대에요 ^^) 고학년 무렵에
저희 아빠가 제가 너무나 무기력하다며 걱정하셨는데, 그 무기력이 아직도 여전한 것 같네요.
사람 만나는거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낯가림이 있어서 두루두루 사귀지를 못하고,
책 읽는 것 좋아하지만 그걸 어떻게 활용하거나 연장하지는 못하고 그저 소일거리로 독서해요.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큰애도 작은애도 오롯이 제가 보듬고 키워오고 있지만
딱히 좋은 엄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부인도 아닌 것 같구요.
늘 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저는 그냥 둥둥 떠 다니는 사람 같았지요.
참 철 없지요.. 나이가 서른 여섯인데요.
오늘 밤은 문득, 제 나이가 낯설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의 강을 건너 이제 곧 마흔이 되고,
아이들이 자라 제 품을 떠나고 쉰살이 되고..
10년쯤 후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두려워지네요.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 제가 밖에 나가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긴 어려우니
집에서 할 수 있는 무슨 생산적인 일이 있을까요, 무슨 공부를 해 볼까요,
주변에 사려깊은 선배 언니들이라도 몇 분 계시면 제 마음 털어놓고 다독임이라도 받으며
충고도 듣고 싶은데 그러기엔 가까운 언니들도 없구요..
종종 .. 나는 왜 이렇게 외떨어져 있는걸까.. 나는 영영 이렇게 살아야 하는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왠지 오늘은 그 생각이 유독 짙어지는 밤이네요.